[무나공간] 고성 ‘버금상점’

김현미 2025. 5. 13. 21:4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시간을 의미 있게 쓰는 법을 고민한다. 그렇다고 일분일초를 늘 의미 있게 산다는 건 아니다. 시간이 주어졌을 때 단순히 흘려보내기보다는 그 안에서 무엇이라도 얻으려는 욕심을 부리는 정도다. 이 마음가짐은 특히 어떤 곳을 방문할 때 발현되는데, 이를테면 사진 찍기 좋은 화려하고 예쁜 카페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작고 평범한 공간으로 발길을 돌리게 한다.

고성 버금상점을 방문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어디에선가 ‘바다 환경을 지키고 작품도 만드는 일석이조 활동을 펼친다’는 이곳 이야기를 듣고는 망설임 없이 연락을 취했다.

육아 동지였던 동갑내기
바다 지키고 작품 만드는
‘비치코밍’ 사업 파트너로
현재 군청 인근서 공간 운영

풍화된 유리조각 작품 눈길
국내 ‘씨글라스’ 알리기 열심
“환경 위한 활동 변질돼 걱정
많은 사람들 실천 위해 노력”

‘비치코밍(beachcombing)’, 즉 바닷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그것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이곳에선 바닷가에서 주워 온 색색의 유리 조각과 각종 해양 쓰레기들이 집안을 화사하게 만들어줄 액자와 기념품,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 등 탐나는 물건들로 탈바꿈한다.
버금상점 김목연(오른쪽) 대표와 서인애 이사가 씨글라스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버금상점 김목연(오른쪽) 대표와 서인애 이사가 씨글라스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버금상점에 들어서면 공간 곳곳을 장식한 씨글라스(Sea glass, 바다에 버려진 유리가 깨지고 풍화되어 형성된 유리 조각) 작품들이 눈에 띈다. 크기도 모양도 꼭 일부러 만들어낸 것처럼 영롱해서 ‘이게 쓰레기였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단순히 기린 그림인가 하고 다가가면 왠지 맥주였을 것 같은 갈색 유리 조각들로 만든 무늬를 발견하고, 작은 그림이 아기자기하게 예뻐 다가가면 손톱보다 작은 씨글라스가 눈에 들어온다. 수정이라고 해도 믿을 반짝이는 썬 캐처도, 풍경도 모두 바닷가 쓰레기로 만들었다곤 믿을 수 없다.

이곳에서 쓸모없어지게 된 것들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두 사람, 85년생 동갑내기 김목연 대표와 서인애 이사다. 둘의 인연은 조금 특별하다. 아이를 키우는 육아 동지로 만나 사업체를 함께 운영하는 파트너가 된 경우다. 오래간 이어오던 인연으로 환경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는 알고 있던 차, 가족들끼리 함께 갔던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에서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의 관광두레사업을 제안받은 것이 지금의 버금상점이 됐다.

고성이 고향도 아니고, 사업을 해본 적도 없는 둘의 만남은 결과적으로 운명이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고성으로 온 김목연 대표의 전직은 MD(merchandiser, 상품 기획자)였고, 결혼하며 고성에 정착한 서인애 이사의 전직은 의류 디자인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김 대표가 경영을, 서 이사가 작품을 맡으며 탄탄한 팀워크를 이루고 있다.
낚시할 때 쓰는 찌, 에기 등으로 만든 작품.

낚시할 때 쓰는 찌, 에기 등으로 만든 작품.

버금상점은 현재 고성군청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2021년 시작 이후 여러 공간을 전전했다. 카페 한편에서 시작해 또 다른 카페 구석, 서로의 집, 나무공방 사장님의 외근 시간까지 활용하며 끊임없이 자리를 옮겼다. 최근까지는 8년간 비어 있던 송정마을회관을 빌려 2년간 사용하기도 했다. 이 또한 일종의 공간 업사이클링이었다.

“처음에는 씨글라스 체험키트를 만들었어요. 티코스터(컵받침)하고 볼펜, 그다음에 그립톡을 만들 수 있는 걸로요. 만들어 보니 전국 학교나 센터, 지자체에서 구매 문의가 많았어요. 그래서 홈페이지랑 쇼핑몰을 바로 개설했었죠.”

버금상점의 시작은 분명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호응이 좋을수록 이들의 고민은 깊어갔다. 김 대표는 “고민을 많이 했다. 이런 걸 만들면서도, 오히려 이게 쓰레기이지 않을까 싶어서. 어쨌든 이게 나중에 쓰임이 끝나버리면 또 쓰레기가 되지 않나”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제품 출시를 강행한 이유는 ‘알리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었다.

“이거(씨글라스)를 모르는 사람도 세상에 정말 많잖아요. 씨글라스라고 부른다는 것도요. 외국에는 관련 작품이나 상품들이 많거든요. 그걸 집에서 활용하는 사람들도 진짜 많은데, 국내엔 모르는 사람이 있으니 우리는 이걸 알리는 것 자체에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죠.”
버금상점 내부.

버금상점 내부.
서인애 이사 작품.

서인애 이사 작품.

이들은 처음 버금상점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물음표투성이었다고 회상한다.

“저희가 시민을 모집해 하는 비치코밍 체험을 2022년도부터 작년까지 총 10회, 한 번 할 때 50~100명 인원으로 10회 정도를 했으니 한 1000명 정도 했거든요. 근데 아직도 이걸 아는 사람은 몇 없어요.”

그래도 상점이 비치코밍을 시작했던 5년 전에 비해서야 알려지기도, 또 다른 단체에서 비치코밍을 기획해 시행하기도 했으니 그들의 도전은 지역에, 그리고 환경에 큰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은 뿌듯함보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요즘에는 이런 어떤 활동만 기획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정말 환경을 위해서 비치코밍을 기획하는 게 아니고, 그냥 유행처럼 행위를 찍어내는 거죠. 그런 건 오히려 생태계를 해칠 수도 있어 걱정이에요.”

수년 전 버금상점이 의도했던 것이 ‘바다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요’, ‘우리 함께 쓰레기를 주워요’, ‘쓰레기는 또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어요’의 연장선이었다면, 축제의 하나로 기획되는 씨글라스 체험의 경우 단순히 예쁘기 때문에 오히려 쓰레기를 만드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사실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씨글라스는 한 3~4가지 색깔뿐이거든요. 민트색, 초록색, 갈색. 희귀한 게 나온다면 빨간색 정도죠. 근데 중국 시장에서는 색깔별로 흔해요. 몇천 원이면 꽤 많은 양의 씨글라스가 온다더라고요. 수거한 게 아니라 기계에 넣어 일부러 만드는 거죠.”
바다에 버려진 유리가 깨지고 풍화되어 형성된 유리 조각.

바다에 버려진 유리가 깨지고 풍화되어 형성된 유리 조각.

씨글라스를 알리고 싶은데, 알려질수록 의미가 변질되는 현실을 맞닥뜨린다.

이들은 일주일에 많게는 3~4번 바다를 가는데, 제품 주문이 쏟아지면 그냥 바다에 산다고 봐야 한다. 바다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비치코밍부터 시작인데, 여기서 중요한 건 작품에 필요한 걸 찾는 게 아니라 환경 정화를 하기 위해 줍는 것들이 소재가 된다는 것이다. 작품에 어울릴 법한 것들은 세척을 거친다. 그리고 말리는 작업이 이어진다. 그런 다음 티코스터에 어울리는 것, 작품에 쓸 것들을 골라낸다.

물고기를 잡는 찌가 생각보다 정말 바닷가에 많다고 했다. 그나마 찌는 바닷가에 있을법한 물건이라면, 바닷가엔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희한한 쓰레기들도 가득하다. 둘에게 의외의 쓰레기를 물었다.

“아, 나뭇가지 신기한 거 주웠다 이랬었는데요. 뼈였어요.” “크록스 장식인 지비츠도 많아요. 그거로 인한 미세플라스틱 엄청 많을 거예요.”

둘의 비치코밍은 2021년부터였으니 이제는 쓰레기가 모자라진 않을까 걱정하니 “씨가 안 말라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라는 즉답이 온다. 실제로 주변 지인들이 ‘너희들 때문에 씨가 마른 거 아니냐’지만 쓰레기는 늘 새로 생겨 있다고.

분명 이들이 들려주는 건 진지하게 들어야 할 환경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버금상점은 이 이야기를 무겁게 전하고 싶지 않다.

“작년에는 스노클링 옷 입고 바다 들어가서 영상도 만들었어요. 고성 바다 안에 어떤 쓰레기들이 있는지 보여주려고요. 좀 코믹스럽게 재미있게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어요. 환경이라는 게 되게 소재가 무겁잖아요. 저희는 조금 가볍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하려 해요.”

버금상점의 ‘버금’은 으뜸 바로 아래, 2등의 의미를 지니는 우리말. 새것을 으뜸이라면 우리가 업사이클링한 물건들도 그에 버금간다, 그에 준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으뜸’이란 기본이나 근본이 되는 뜻도 지닌다. 두 사람의 버금상점이 나아가는 길은 곧 으뜸보다 으뜸이 아닐까.

글= 김현미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Copyright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