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받지 못하는 ‘미등록자’] 돈 못 받고 욕 듣는 게 일상…“가족 생계 큰 걱정”
필리핀 솔로몬, 석재공장 일해
퇴직금 등 5000만원 못 받아
어쩔 수 없이 신고했다 붙잡혀
방글라 로니, 유리공장서
일한 8년 내내 월급 80만원
비자없어 최저임금 無보장
필리핀 마리아, 가구공장 근무
꼬박 야근해도 월 100만원뿐
돈 못보내 동생 학교도 못 가

지난달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고자 수원시에 있는 노동청을 찾았던 필리핀 국적 미등록 이주노동자 비타빗 솔로몬(39)씨가 체포됐다. 미등록 신분은 외국인이 비자 만료에 따라 체류 자격 기간이 끝난 경우다. 그는 정당한 권리를 구제받으러 간 자리에서 체포됐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은 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부당한 대우를 겪고 권리 구제를 포기한 채 살아간다. 통계상에 잡힌 외국인들의 1인당 평균 임금체불 금액만 연간 300만원을 넘는다. 인천일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상·하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가족들이 어떻게 버틸지 걱정돼요."
지난달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원시 한 노동청을 찾았던 필리핀 국적의 비타빗 솔로몬(39)씨는 이렇게 말했다. 솔로몬씨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지 못한 게 6개월째라고 했다. 그는 예상했던 일이지만 현실은 참혹하다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인천일보가 지난달 28일 수원출입국외국인청 면회실에서 만난 솔로몬씨는 2014년에 입국했다며 입을 뗐다. 자국에 있는 6명의 가족 생계를 위해 왔다는 그는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압박감을 느끼는 게 일상이었다고 했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솔로몬씨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수 있는 월급날이면 웃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평균 250만원의 월급에서 180만원가량을 가족에게 보냈다. 잔업으로 많이 받는 달에는 더 보냈다. 그 외 나머지 돈은 자신의 생활비로 썼다. 그는 종종 월급날이 미뤄져 며칠 뒤에 받을 때도 있었지만, 이 기쁨으로 버텼다.
문제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다. 이때 솔로몬씨는 자신이 다니던 용인시 한 석재공장 인근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출입국에 신고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쫓겨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사장에게 사직서를 내며 퇴직금 등 5000여만원을 요구했다. 그런데 사장은 "줄 수 없다"고 했다. 사장은 "노동청에 신고하면 출입국에 넘기겠다"고 그를 협박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6개월을 보내며 돈도 한 푼 벌지 못했다. 그가 노동청에 어쩔 수 없이 신고한 이유다. 그는 "가족들이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너무 답답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국적의 로니(44·가명)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난 2002년 산업연수생 비자로 입국한 그는 자국에 있는 6명의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한국에 남는 길을 택했다. 당시 그의 가족은 형편이 워낙 어려워 하루에 밥 한 끼를 간신히 먹고 살 정도였다고 했다.
로니씨는 연수생 비자가 만료된 뒤인 지난 2004년 남양주시에 있는 유리 제조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10시간 이상씩 무겁고 긴 유리를 자르고 옮겼다. 그가 그렇게 지낸 시간은 8년. 그런데 그는 일했던 기간 내내, 처음 받았던 월급 80만원을 똑같이 받았다. 사장은 그에게 비자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았다.
그는 매달 그 적은 돈에서 30~40만원을 가족에게 보냈다. 남은 돈으론 단칸방에서 같이 지내던 동료들과 생활하며 썼다. 고된 일에 다친 그의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은 제때 치료조차 받지 못해 구부릴 수 없게 됐다.

로니씨는 시도 때도 없이 욕을 들었다고도 했다. 그가 더는 일할 수 없게 됐다고 느껴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얘기했을 땐 "집으로 돌아가고 싶냐"는 협박이 돌아왔다고 했다. 결국 그는 빈손으로 나왔다. 이후 그가 2012년부터 다닌 다른 유리 공장도 상황은 같았다. 그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했고 월급이 수시로 밀렸다.
필리핀에서 온 또 다른 피해자인 마리아(37·가명)씨는 지난해 2월부터 5월까지 경기지역 한 가구공장에서 매일 야근하며 일했지만, 겨우 100만원만 받았다. 그는 잔업한 수당은 물론 일부 월급까지 550만원을 못 받았다. 사장은 고객들에게 돈을 받지 못해 월급을 줄 수 없다며, 그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당연하게 주지 않았다. 그가 돈을 부치지 못하자 필리핀에 있는 동생 2명은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됐다. 마리아씨는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도움을 받아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 체불임금까지 확정받았지만, 1년째 받지 못하고 있다.
마리아씨는 "임금체불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며 "이 공장에서 임금체불을 당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더 있고 그들도 재판받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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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김혜진·고륜형·추정현 기자 choiinkou@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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