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탄식이 없는 자

<사기(史記)>에서, 한고조 유방으로 진시황의 뒤를 잇지 않고 굳이 그 사이에 ‘항우본기’를 넣은 것은 사마천의 독특한 역사 서술 방식 때문이다. 같은 시기를 다룬 반고의 <한서>에서 항우를 본기는커녕 세가도 아닌 열전에 포함한 것과 대비된다. 본기에 올렸다고 해서 항우를 높이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사마천이 ‘항우본기’ 서술에 그 어떤 편보다도 공력을 더 들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산을 뽑는 힘과 세상을 덮는 기세를 지녔다는 영웅 항우. 그 강렬하면서 비극적인 서사에 걸맞게 사마천의 붓끝 역시 장대하고 아름답다. 현장을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세세한 배경과 대화의 묘사 속에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심리가 살아 움직인다. 의도적으로 반복 배치한 글자와 앞뒤에서 조응하는 구절에 치밀한 복선 구조까지, 뜯어볼수록 놀랍다.
겹치는 시기의 ‘고조본기’와 함께 읽으면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볼 수 있고 한쪽에서 언급만 하고 넘어간 부분이 다른 쪽에서 상세히 조명돼 퍼즐 맞추듯 흥미를 돋우기도 한다.
항우와 유방이 부딪치는 장면들에서는 물론이고, 비슷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별개로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둘의 대비되는 성향이 포착된다. 거사를 일으키기 전 어느 날, 진시황의 성대한 행차를 보면서 한 말에서도 그렇다.
항우는 대뜸 “저 자리, 내가 대신 차지할 수 있겠구나!”라고 큰소리쳤다. 같은 상황에서 유방은 감개무량한 듯 크게 탄식하며 혼잣말을 내뱉는다. “아아! 대장부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데!”
어떤 자리에 대한 선망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건강한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항우와 유방의 말에 담긴 뜻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항우에게는 유방과 같은 탄식이 없었다.
탄식은 성찰과 숙고에서 나온다. 한때 가장 많은 것을 가졌던 용맹한 영웅 항우는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오만으로 인해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반면 약점 많고 야비한 면까지 있던 유방은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남의 힘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끝내 야망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성찰과 숙고의 자세라는 작은 차이가 만들어낸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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