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도장줬다가 치악재 끌려가 학살…원주·춘천 보도연맹원 진실규명
진실화해위, 영암·함평·완도·해남·경주 민간인 희생사건도

“조카, 도장 좀 빌려주게.”
면서기의 그 한마디는 악마의 초대장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허OO씨(1921년생)는 “왜 그러냐”고 물었고, 면서기는 “그냥 쓸데가 있다”고만 했다. 사용처를 묻지 않고 도장을 준 게 화근이었다. 면서기가 이 도장을 찍어 허씨를 가입시킨 단체는 이승만 정부가 과거 좌익활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쉽게 통제·관리하기 위해 1949년 법률상 근거 없이 설립한 국민보도연맹이었다. 6·25 전쟁이 터진 직후 허씨는 경찰에 연행돼 산으로 끌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총살당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13일 오후 열린 제109차 전체위원회에서 ‘강원 원주·춘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허OO씨 등 3명에 대해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하고 국가의 공식 사과와 배·보상을 포함한 실효적이고 충분한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는 관련 법 제정을 권고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한국전쟁 발발 전후 강원 원주·춘천 지역에 거주하던 이들은 국민보도연맹원 가입 및 활동 등을 이유로 관할 경찰서 및 지서 경찰과 국군 등에 의해 소집 또는 연행되어 예비 검속된 뒤 원주시(당시 원주군) 판부면과 귀래면 등지에서 살해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군과 경찰은 보도연맹원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 속에 이들을 미리 연행·구금하고 상당수는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그 수는 전국 곳곳에서 최대 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원주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이승만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자국민 살해행위가 얼마나 졸속으로 진행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허씨의 손자(1971년생)와 이웃 주민들의 전문(전해들은 말) 진술을 종합하면, 허씨는 원주시 판부면 관설리(현 관설동)에 가족과 함께 살면서 금대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49년(추정) 어느 날 집에 찾아온 판부면 면서기 이OO에게 도장을 주는 바람에 보도연맹원으로 둔갑해 살해됐다. 참고인들은 “허씨가 좌익활동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설사 좌익활동을 했다 해도 죽임을 당할 이유는 없었다. 허씨는 상부에서 내려온 회원 가입 할당을 어떻게든 채우려 한 말단 공무원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허씨가 학살되기 전 경찰 한 명이 집에 와 “죄가 없으면 뒷산에라도 피해 있으라”고 했으나, 허씨는 “죄가 없다”며 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경찰이 “명단에 있으니 일단 같이 가자”면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허씨를 연행해서 갔고, 이후 돌아오지 못했다. 허씨는 판부면과 신림면의 경계인 치악재(당시 이름은 가리파재)에서 희생됐는데, 당시 이곳에 주검이 수두룩했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진실화해위는 국정원을 통해 열람·확인한 ‘6·25 처형자 명단’(1978)에서 허씨의 이름을 확인했다.

또 원주시 귀래면 용암리에 거주하던 고OO씨(1907년생, 농업)는 귀래면사무소 보도연맹 회의에 소집된 뒤 군경에 의해 양안치 고개에서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 고씨 아들(1946년생)의 전문 진술에 따르면, 고씨는 한국전쟁 이전 보도연맹원으로 활동하다 1950년 6월29일 귀래면사무소에 보도연맹 회의가 있다고 해서 갔다. 고씨는 이곳에서 다른 마을 주민과 함께 트럭에 태워 이송된 뒤 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가족들은 당시 상황이 무서워 주검을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귀래면 한 주민은 진실화해위에 “당시 귀래리에 있는 양안치 고개에서 희생된 민간인 시체를 한군데 모아 쓸어담았다는 소문을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주민은 “희생 장소인 양안치고개에서 죽은 사람들의 오바 등 옷을 가져다 입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춘천 근화동에 살다 1950년 6월 말께 마을 주민 보도연맹원들과 같이 춘천경찰서에 소집된 뒤 실종된 박OO씨(1912년생)의 피해 사실도 이번에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원주에서의 예비검속(혐의자를 미리 잡아놓는 일)은 전쟁 당일인 6월25일부터 시작됐고, 이는 같은 날 치안국 통첩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며 “경찰 사찰계가 초기 보도연맹원 등 소집과 연행 구금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1기 진실화해위의 ‘강원 원주·횡성·춘천 보도연맹’ 관련 대면 조사에 응한 참전 경찰은 “원주 보도연맹 처단은 홍천까지는 못하고 횡성부터 한 것 같다. 시간이 없어 원주는 판부면 금대리 가리파재에서 처형한 것은 틀림없다”, “인민군이 홍천까지 6월26일, 횡성·원주도 27일이나 28일쯤 들어왔으니 그때 처단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이날 이밖에도 전북 임실 군경에 의한 희생사건, 전남 영암·함평·완도·해남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경북 경주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경북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등 14건의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김건희, 검찰 불출석 통보…“문재인도 대면조사 안 해” 사유서 제출
- ‘어른’ 김장하,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 새긴 29자 그대로의 삶
- 김문수, 배현진에 “미스 가락시장” 성차별 발언…망언 ‘업데이트’
- 검찰, 칠순 ‘문재인 전 사돈’ 목욕탕까지 찾아가…보복기소의 전말
- 이재명, 3㎏ 방탄복·저격 방해 풍선…테러위협 제보에 총력 대응
- 전광훈 “천만명 가입 땐 백만원 연금” 광고, “가능성 없어” 거짓 아니다?
- 민주 “김문수 정치자금법 위반 고발…슈퍼챗 1억7천 수익 불법성”
- [단독] ‘건진법사’ 수사 검찰 “정치인 아니어도 정치자금법 처벌 가능”
- 구미 찾은 이재명 “박정희, 산업화 이끈 공도 있어…재명이가 남이가”
- ‘마이 웨이’ 김문수 “윤석열 탈당하란 건 옳지 않아”…절연 요구 일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