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68> 17세기 문인 하홍도가 지리산을 유람하고 읊은 시

조해훈 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2025. 5. 1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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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끝으로 모사 다 한다고 말하지 말게(莫言摹寫毫端盡·막언모사호단진)

두류산의 천만 봉우리를 두루 밟으니(跡遍頭流千萬峯·적편두류천만봉)/ 층층 구름 깊은 골짜기에 가슴 트이네.(層雲絶壑豁胸中·층운절학활흉중)/ 붓끝으로 모사 다 한다고 말하지 말게(莫言摹寫毫端盡·막언모사호단진)/ 절벽 눈 덮인 소나무 옛 모습 그대로네.(依舊蒼崖雪滿松·의구창애설만송)

위 시는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방장산(지리산)을 유람하고’(遊方丈·유방장)로, 그의 문집 ‘겸재집’(謙齋集) 권 1에 수록돼 있다.

그가 언제 지리산인 방장산(두류산)을 유람했는지는 알 수 없다. 첫 구에서 두류산 천만 봉을 두루 밟았다고 하는 걸로 볼 때 사실인 것 같다. 셋째 구에서는 붓으로 지리산을 다 그려낼 수 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 모습은 그려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리산의 생명성과 그 속에 든 가치는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홍도는 임진왜란 중에 경남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수일(河受一)에게 수학했다. 하수일은 조식의 제자인 하항(河沆)에게 배웠다. 하홍도는 광해군 말년 정치가 혼란스럽게 되자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사림산(士林山) 밑에 ‘모한재(慕寒齋)’를 지어 동생 하홍달과 함께 후학을 양성했다. 하홍도의 학문은 하철과 김명겸을 거쳐 김성운과 하세응에게 이어졌다. 그러므로 하홍도는 조식으로부터 하항과 하수일에게 내려온 남명학의 핵심을 이어 후대에 이어지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필자는 가끔 모한재를 찾는다.

며칠 전 그의 문집을 찍어낸 책판(冊板) 하나가 필자의 손에 들어왔다. 그의 문집 초간본은 1758년께 증손자 하대관과 종증손자 하대명이 6책으로 펴냈다. 하지만 ‘겸재집’이 간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홍도에 대한 노론의 비판이 높아 경상도관찰사 조엄이 서원에서 그를 출향(黜享)하고 문집을 불태우고 책판을 부쉈다. 하대관은 함경도 길주로 유배됐다. 후일 영남 사림들이 그의 후손 하성로를 도와 1912년 목판 판각을 완성해 중간본을 냈다. 필자가 입수한 ‘겸재집’ 양면 책판을 분석해 보니 중간본을 간행한 책판으로 추정됐다. ‘남명 이후 제일인자’로 불리는 그의 책판을 하동에서 고전 연구를 하는 필자가 입수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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