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방송·미디어 기술의 미래를 엿보다

지난 4월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방송 기술 전시회 'NAB 쇼'는 방송과 미디어 산업의 현재를 조망하고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글로벌 기업들이 최신 기술과 서비스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AI 및 클라우드 기술, 방송 제작·편집 장비, 방송 음향·카메라·조명 장비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비록 팬데믹 이전 수준인 10만명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NAB 쇼는 여전히 세계 최대 방송 기술 전시회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특히 올해 전체 참관객의 53%가 처음으로 전시회를 방문한 것은 방송 산업에 새로운 인력과 세대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NAB 쇼는 기술적 측면에서 매우 다채로운 변화의 흐름을 담고 있었다. 전시 주제는 △인공지능(AI+) △클라우드(Cloud) △AI 기반 IP 워크플로우 △몰입형 미디어(Immersive Media) △차세대 방송(ATSC 3.0 Ext.) 등이다.
AI와 클라우드는 방송 제작의 근본을 바꾸고 있다. AI를 활용한 콘텐츠 생성, 자동 편집, 화질 복원 등은 제작 편의성과 효율성을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클라우드 기반의 콘텐츠 제작과 전송, 원격 협업 환경은 방송 제작 현장의 물리적 제약을 허물고 있으며, 클라우드 기반 통합 솔루션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AI 기반 IP 워크플로우의 확대도 눈에 띈다. 자동화된 콘텐츠 관리, 실시간 데이터 분석, 가상 스튜디오와 AR/XR 기반 제작 기술은 기존 방송 제작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몰입형 미디어 기술의 발전 역시 주목할 만하다. 8K 양안 3D 카메라와 17K 고해상도 시네마 카메라 등은 시청자에게 초실감형 경험을 제공하며, 방송 콘텐츠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방송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경험' 중심으로, 평면 미디어에서 입체공간 미디어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차세대 방송 표준인 ATSC 3.0의 확산이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상용화가 진행 중인 ATSC 3.0은 필자의 연구진이 주도한 계층분할다중화(LDM) 및 다중송수신안테나(MIMO) 기술이 확장 표준에 반영되며, 브라질 등 신흥국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방송·미디어 산업은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으로 진화하고 축적되는 특성을 지닌 산업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전략적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ATSC 3.0 표준화와 상용화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 지원, 연구기관의 원천기술 개발, 그리고 민간기업의 기술 상용화 노력이 어우러져 세계시장에서 기술적 신뢰를 쌓아왔다. 과거에는 방송사들이 대부분 외산장비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상당수의 국내 방송사가 국산 장비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이러한 성과는 보수적인 방송·미디어 산업에서도 한국 기술의 글로벌 확산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다. 향후 초실감 입체공간 미디어 서비스 등 차세대 기술 분야에서도 한국이 선도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있다.
방송 기술은 단순한 콘텐츠 유통 수단을 넘어 문화, 산업,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는 기반 인프라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다. NAB 쇼는 이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자리였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차원을 넘어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민간의 기술 개발 노력과 더불어 정부의 정책적 지원, 산학연 협력, 인재 양성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나아가, 한국이 보유한 기술력과 국제 경쟁력을 바탕으로 공공과 민간, 학계가 함께하는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고, NAB 쇼와 같은 세계 무대에서의 주도권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방송·미디어 산업의 발전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서 문화적 다양성과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술을 넘어 콘텐츠와 사람, 그리고 사회 전반을 연결하는 새로운 방송 패러다임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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