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끝내 사과를 받지 못하고, 또 한분이 떠났다”…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별세[세상&]
조문객들 “강인하고 배려심 깊으셨던 분”
또다른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발걸음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12일 오전 경기도 용인 쉴낙원 경기장례식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이곳엔 복도 끝부터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이 할머니는 지난 11일 오후 성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7세.
침묵과 슬픔으로 덮인 분위기 속에서도 이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한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 할머니를 8년 가량 곁에서 챙겨왔다는 김모(72) 씨는 눈물을 머금은 채 “우리 할머니는 의지가 참 강하시고 남을 먼저 배려해주시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이 걱정할까봐 아파도 아프다고 말씀 한 번 하지 않으셨던 분”이라며 “이젠 힘겹고 무거웠던 마음 두고 좋은 곳 편히 가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빈소 앞 이 할머니의 사진을 몇분간 응시하던 조문객 A씨도 고인을 ‘따뜻하면서도 강인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A씨는 “할머니의 삶이 곧 우리나라의 역사”라면서 “할머니께서는 정말 어린 나이 때부터 고생하셨고 그 아픔을 딛고서 오랜 세월 걸어오셨다. 그 길을 우리 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이 할머니는 14살에 중국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3년간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에도 중국에 머물다가 58년 만인 2000년에 어렵게 고국으로 돌아왔다.
또다른 조문객 B씨는 “할머니께서 살아계실 적 너무 험난하고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다. 할머니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려온다”면서 “위안부 진상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한 할머니의 시간들이 빛 바래지 않도록 후손인 우리들이 움직여야 한다”고 전했다.
일본군 위안부 참상을 알리기 위해 이 할머니는 2002년 미국 브라운대 증언집회를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일본과 호주 등을 거의 매년 방문했다. 2013년에는 미국과 독일, 일본 3개국 12개 도시를 오가는 ‘인권대장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이날 빈소 앞 복도는 ‘극락왕생 하소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 이 할머니를 애도하는 문구가 적힌 조의 화환들로 채워졌다. 이중에는 또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화환도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영정사진 앞에서 묵념한 뒤 “언니, 편안한 마음으로 가세요. 못다한 건 용수가 다 할게요”라고 말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온라인 상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정의기억연대는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누워 계실 때도 수요시위에 나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며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국 대학생 연합동아리 ‘평화나비네트워크’는 추모 성명을 통해 “우리의 기억투쟁 속에서 이 할머니의 삶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며 이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반드시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부끄러울 일이 있는가. 일본이 부끄럽지”라는 생전 이 할머니의 말을 인용하며 “이옥선 할머니의 발자취와 목소리를 대학생들이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6명으로 줄었다. 생존자 평균연령은 95.6세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은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떠나보내게 되어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여가부는 피해자들께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면밀히 살펴 지원하는 한편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 할머니의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이다. 고인의 뜻에 따라 유해는 인천 바다에 뿌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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