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골든타임 얼마 안 남아…미·중 사이 진퇴양난 빠질 수도”

박민희 기자 2025. 5. 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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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이병철 삼성전자 전 부사장
이병철 삼성전자 전 부사장이 4월27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미-중 갈등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 중 하나는 이병철(60) 삼성전자 전 부사장이다. 그는 중국에서 2005년부터 2020년까지 근무하면서, 광활한 옥수수 밭이던 곳에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을 짓는 현지 실무를 총괄했다. 2022년 12월 퇴직 뒤에는 이런 경험을 살려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엔 ‘지정학적 리스크 하 기업외교’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4월27일 ‘한겨레’와 만난 그는 직접 경험한 중국 기술굴기와 한국 반도체·첨단기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한국 반도체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차기 정부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종합적인 대책을 추진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미·중 대립 전부터 자립 집요하게 추진한 중국

― 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약진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정부의 장기 계획과 추진력을 빼놓을 수 없다. 2015년 ‘중국제조 2025’가 나오자마자 중국삼성 동료들과 이를 분석했다.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정한 10가지 분야 각각에 대해 필요 기술, 극복 과제 등이 매우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이보다 앞서 2006~2007년 무렵부터 ‘자주 창신’(기술 자립을 뜻함)이라는 말이 자주 들렸다. 미·중 경쟁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중국 정부는 기술 자립과 첨단산업 육성을 장기적 안목에서 집요하게 추진해왔다.”

― 중국이 이토록 빠르게 기술을 발전시키고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감했나.

“베이징 등 중국 곳곳의 대학 앞에 갈 때마다 창업센터, 인큐베이션, 벤처기업 타운이 생기는 것을 봤다. 한해 1200만명 대졸자 가운데 500만명 이상이 이공계 인재다. 관료의 전문성도 뛰어났다. 2014년에 시안에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하고, 삼성전자 경영진이 중국 공업정보화부(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 먀오웨이 장관과 만났다. 실무 디테일(세부사항)까지 모두 다 파악하고 있는 걸 알고 모두 깜짝 놀랐다. 관료의 전문성과 공산당의 일관된 전략, 대규모 인재 풀, 국가적 자금 지원과 민간 기술기업의 시너지를 보면서 중국의 기술 굴기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했다고 봐야하나

“분야별로 조금씩 다르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분야는 한국에 거의 근접했다. 반면, D램 분야는 한국 기업에 비해서 한두 세대 정도 뒤져 있지만 많이 쫓아왔다고 본다. 파운드리도 7나노급 수준까지 추격했다. 팹리스는 한국은 물론 선진국 수준에 근접했다. 비런테크놀로지(壁仞科技)나 화웨이의 하이실리콘은 엔비디아에 견줄만 하다. 중국 기업 대부분 미국 제재 대상인 탓에 추격 속도가 조금 늦춰졌지만 결국은 시간 문제다.”

― 중국 반도체 기업은 몇개나 되나

“2023년 기준 약 23만9천개다. 2022년에 4만8천개가 새로 등록했고, 2023년에 약 7만개가 새로 생겼다. 한해 폐업하는 약 1만1천곳 정도를 감안해도 1년에 4만~6만개의 반도체 관련 기업이 새로 생긴다. 한국은 반도체협회에 등록된 기업이 500개도 안된다. 중국은 방대한 반도체 생태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챔피언급 기업들을 계속 배출하고 있다.”

■ 미·중 갈등 속 진퇴양난에 빠진 삼성 시안 공장

― 삼성전자 반도체 시안 공장 상황은?

“세 가지 리스크를 안고 있다. 우선 2022년 10월7일 미국은 ‘일정 수준 이상의 반도체 장비는 중국에 납품하지 못하게’ 하는 제재를 내놨다. 이 제재는 ‘기술 신냉전’의 분수령으로 불릴 만큼 여파가 컸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미국 정부로부터 처음에는 1년간 제재 유예를, 2023년에는 VEU(검증된 최종 사용자) 자격을 받아 장비를 들여갈 수는 있다. 문제는 이 자격이 언제든 사라질 위험이 있고, 기존 장비의 유지·보수·교체 같은 제한적인 장비만 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족쇄는 더 강화될 지 모른다. 두 번째는 미국 칩스법에는 미국에 공장을 짓고 보조금을 받으면 ‘우려 국가’(중국)에서 향후 10년간 5% 이상 생산 능력을 확장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반도체 산업은 규모의 경제여서 끊임없이 확장하고 새 장비도 투입해야 한다. 첨단장비 도입이 어려운 ‘비정상’ 상태가 계속되면 가동률도 떨어지고 수익성도 악화될 우려가 있다.”

― 세번째 리스크는?

“중국의 ‘역외 차단법’이다. 이 법에는 외부에서 중국에 부당한 제재를 했을 때 기업들은 상무부에 보고해 지침에 따라야 하고,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중국 정부가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중국이 첨단 반도체의 완전한 국산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한국 반도체 기업이 미국 제재를 따라도 이 법을 적용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중국의 기술 수준이 계속 높아져 한국 반도체가 더이상 필요없게 되면, 한국 기업은 미국의 제재를 따른다는 이유로 이 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이 미·중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시안 공장은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 시안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결정하고 건설하는 동안 중국 정부의 태도는?

“당시 시안은 10억달러 이상 규모의 외국인 투자를 받은 경험도 없었다. 광활한 옥수수 밭에 공장을 지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시안시 정부는 매우 적극적으로 지원을 약속했고,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했다. 중앙정부 비준과 환경평가 등 모든 과정을 시안시 정부가 나서 6개월 만에 끝냈다. 우리는 빨라도 1~2년을 예상했던 터였다. 시안시 정부는 ‘삼성 프로젝트 지원반’을 공식 조직으로 만들고, 현장 지원반을 건설 현장에 상주시켰다. 필요한 공정을 지을 건설사가 없을 땐 시 정부가 직접 장비를 들여와서 건설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2012년 9월 중국 섬서성 시안에서 삼성반도체 공장 착공식이 열리고 있다. 시안/박민희 기자

새 정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만들어야

―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시진핑 주석의 초대로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서열 6위이자 중앙과학기술위원회를 이끄는 딩쉐샹 상무위원은 삼성전자 시안 공장을 둘러봤다. 중국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외국 기업들이 중국과 함께 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2019년 리커창 총리 방문 이후 6년 만에 딩쉐샹 상무위원이 시안 공장을 방문해 상호 윈윈하자고 했다. 중요한 메시지다. 한국 기업들은 전세계 시장의 절반인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리스크를 관리하고 틈새를 찾아 중국에서 시장을 확대하고 협력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어렵다고 포기하면 힘들여 유지해온 것들도 다 잃게 된다.”

― 기업 홀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 새 정부와 기업이 어떤 협력을 해야할까.

“경제가 국가 안보와 연결되는 경제안보 시대가 와 버렸다. 한국은 한 단계 더 올라가느냐 이대로 주저앉고 마느냐는 결정적 전환점에 서 있다. ‘국가 대항전’ 시대에 기업 홀로 살아남기 어렵다. 기업들이 복합적 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은 2023년 공산당 산하에 과학기술위원회를 설치해 과학기술과 첨단 산업에 대해 종합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 미국은 백악관 산하에 과학기술정책실(OSTP)을 두고 있다. 한국은 각 부처가 따로 움직이다보니 종합적 계획도, 실행력도 담보하기 어렵다. 차기 정부가 미·중국처럼 강력한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를 설립한 뒤 종합적 대응 방안을 마련·추진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글·사진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2012년 9월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 착공을 축하하는 시안 정부의 광고판이 시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시안/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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