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대통령은 인사할 때 눈치보는데...트럼프는 마음대로

이규화 2025. 5. 13. 15: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에 부적절한 책 비치했다며 현 관장 경질
자신의 개인 변호사 출신 법무차관을 겸직 발령
한국이라면 언론여론의 비판 거세 엄두 못낼 것
엽관제 전통 美, 대통령에게 폭넓은 임면권 용인
작년 5월 14일, 뉴욕 맨해튼 법원 앞에서 토드 블랜치 변호사와 함께 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 AP=연합뉴스

최근 미국 의회도서관장을 해고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 자리에 본인의 개인 변호사 출신 법무부 차관을 겸직으로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토드 블랜치 법무부 차관을 의회도서관장 직무대행으로 지명했다. 블랜치 차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 재도전하던 시절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의혹' 사건, '대선 패배 뒤집기 사건' 등 형사사건의 변호를 이끌었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엔 법무부 차관에 발탁된 인물이다.

법무차관과 의회도서관장을 겸임하게 된 블랜치 지명자는 도서관 부관장 직무대행과 산하 기관인 저작권청장 직무대행 등 2명을 직접 인선했다. 이에 대해 의회도서관 구성원들은 물리력까지 동원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도서관장 지명을 대하는 한국인은 의아심을 갖게 된다. 첫째 의회도서관장이면 의회 소속으로 한국처럼 국회의장이 임명하지 않느냐는 의문이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이 저렇게 인사 '전횡'을 해도 작은 저항이나 비판은 있을망정 결국 수용돼 넘어간다는 점이다. 셋째 의회도서관장이 대통령이 직접 인사를 챙길만큼, 또 공화·민주 양당이 입싸움을 벌릴 만큼, 더구나 언론의 화제가 될 만큼 그리 중요한 자리냐는 궁금증이다.

먼저 셋째 질문부터 답하자면 '매우 중요한 자리'라는 답이 나온다. 미 의회도서관은 1억7800만 건의 소장품을 가진 미국은 물론 세계 최대 규모 도서관이다. 일반 도서뿐 아니라 구텐베르크 성경, 미국 독립선언문 초안 등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유물과 고서적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직원 수가 수천 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이다. 산하에 저작권 관련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저작권청장도 두고 있다.

일단 미국의 제도에 따르면 의회도서관장 임면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다만 입법부 산하인 의회도서관장을 지명하려면 의회의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가 필수적이고 상원 인준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이번 인사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이 내놓는 반응은 아직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는데도 대통령이 지명해 부당하다는 것이다.

NYT에 따르면 이날 오전 블랜치 직무대행이 지명한 부관장, 저작권청장 직무대행 지명자 등 2명이 의회도서관에 도착하자 도서관 구성원들이 이들의 건물 진입을 막아섰다. 이어 도서관 측 법률고문은 이 2명에게 사무실 진입을 허용할 수 없으니 현장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2명은 도서관 구성원의 요구대로 일단 별다른 충돌 없이 자리를 떠났다고 NYT는 전했다.

앞서 8일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던 전임 칼라 헤이든 관장을 전격 경질한 바 있다. 백악관은 헤이든 전 관장의 해임에 대해 "아이들에게 부적절한 책을 비치했다"고 언급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도서관장 지명이 행정부의 입법부 권한 침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원 행정위원회 민주당 간사이자 의회도서관 상·하원 합동위원회 소속인 조지프 D. 모렐 의원은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권력에 굶주려 입법부를 공격했다"고 비난했다.

모렐 의원은 의회도서관 상·하원 합동위에 함께 소속된 민주당 알렉스 파딜라 상원의원과 낸 공동성명에서 "트럼프가 법무부, 즉 행정부 소속 인사를 입법부 산하 기관에 책임자로 보낸 것은 극도로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의회는 헌법 제1조에 따라 의회도서관의 정치 중립성을 지키고, 백악관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입법부를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헌법 제1조는 입법부인 의회의 설치 근거 조항이다.

모렐 하원의원은 또한 같은 당 소속의 다른 의원들과 함께 의회 도서관이 정부효율부(DOGE)나 혹은 다른 행정부처에 승인되지 않은 정보를 제공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NYT는 덧붙였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직 임면이 매우 논쟁적임에도 큰 저항없이 지나가는 것이 한국적 상황과는 매우 대조적임을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직은 대략 3000개 내외라는 설이 있다. 미국 뉴욕대 폴 라이트 교수의 집계다. 한국은 정확히 집계된 적은 없지만 대통령의 직간접적 영향력이 미치는 자리를 포함해 7000~1만 개 사이로 추산한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 모두 주요 공직은 의회의 청문회와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특히 대통령이 공직을 임명할 때 언론과 여론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자리는 물론 공공기관의 자리도 마찬가지다. 비공개로 은근슬쩍 임명하는 경우가 있지만, 만약 공개돼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면 뭇매를 맞게 된다. 이에 비해 미국은 제도로 규정된 자리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데에 비교적 너른 '아량'을 베푼다.

이 같은 차이는 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의 배경에서 온다. 선출직 자리를 놓고 경쟁해 이긴 사람은 선거를 도운 사람을 공직에 임용하는 것을 수용한다. 정치적 지지자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용인되는 것이다. 엽관제는 대통령제의 미국 근대 민주제에서 비롯됐고 현재까지 큰탈 없이 이어오고 있다. 그 같은 배경이 없는 한국은 제도적으로 허용되었더라도 공직에 측근을 앉히는 것이 떳떳하지 않은 일로 받아들인다. 여론과 언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