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손자 사망’ 급발진, 자동차기업 손 들어준 법원…운전자 패소

박수혁 기자 2025. 5. 1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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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액셀 밟았을 가능성”
도현군 아버지, 즉각 항소 뜻
13일 오후 강원 강릉시 난곡동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고 이도현 군 아버지 이상훈씨가 재판을 마친 뒤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릉에서 발생한 일명 ‘손자 사망 급발진 사고’ 책임을 둘러싼 민사소송에서 법원이 제조사 쪽의 손을 들어줬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재판장 박상준)는 이도현(사망 당시 12살)군 가족이 케이지(KG)모빌리티(옛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9억2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강릉 급발진 사고 현장 모습. 강릉소방서 제공

재판부는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했으며, 급가속시 자동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AEB)이 작동하지 않아 이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도현이 가족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전자제어장치 결함 주장에 관해 ‘사고 전 마지막 5초 동안 가속페달 변위량이 100%였다’는 사고기록장치(EDR) 기록의 신뢰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고기록장치의 사고 전 운행기록이 저장되는 과정에 비춰보면 원고 쪽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설령 사고기록장치 결함으로 잘못된 주행 명령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그런 오류가 가속페달 신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 차량과 같은 연식의 차량으로 실도로 주행 재연 시험한 결과 사고기록장치 기록상의 속도와 차이가 시속 8∼14㎞로 크지 않고, 모닝 차량과의 추돌이 티볼리 차량 성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또 실제 상황을 재연한 실험상의 한계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가속페달이 아닌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도현이 가족의 브레이크등 점등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티볼리 차량이 굉음을 내며 급가속 주행을 시작한 뒤부터 최종 충돌 시점까지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았으며, 점등 방식에 대해서도 전자제어장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제조사 쪽 주장을 인용했다.

또 처음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했을 상황에 대해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대로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굉음 발생 직전 주행(D)→중립(N), 추돌 직전 중립(N)→주행(D)로 조작했음’이 맞다고 판단했다.

도현이 가족은 음향분석 감정인이 ‘변속레버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분석한 점을 근거로 변속레버는 줄곧 주행(D)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음향분석 감정 결과 발견된 ‘다소 상이한 음향’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모닝 차량 추돌 전 굉음성 엔진구동음이 발생하기 직전 뭔가 ‘철컥’하는 듯한 다소 상이한 음향이 들린다. 음향 발생 시점, 엔진회전수와 속도 변화 등에 비춰보면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양쪽 주장을 모두 살핀 재판부는 “운전자(도현군 할머니)가 가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오인해 제동페달 대신 가속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여 이 사고가 전자제어장치 결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판결 선고 직후 도현군 아버지 이상훈씨는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씨는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 오늘 판결은 진실보다 기업의 논리를, 피해자보다 제조사의 면피를 선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정에 오기 전 도현이가 묻힌 곳에 가서 승소문을 건네주고 왔다. 절대 이대로 무너지지 않고, 절대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겠다. 최선을 다해 입증 책임을 다해온 결과들이 단 한 가지도 인용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재판 결과에 굴복할 수 없다”고 오열했다.

이씨는 “도현이는 이미 하늘에서 보고 있을 것이며, 같이 울고 슬퍼할 것 같다. 다시 전력으로 항소해서 제조물책임법 개정을 위한 도화선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도현이 가족과 제조사 쪽은 핵심 쟁점인 ‘페달 오조작’ 여부를 두고 지난 2년6개월 동안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도현이 가족은 “약 30초 동안 지속된 이 사건 급발진 과정에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는 건 불가능하다. 전자제어장치 소프트웨어 결함에 의한 전형적인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했다.

반면 제조사 쪽은 ‘풀 액셀’을 밟았다고 기록한 사고기록장치(EDR)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등을 근거로 페달 오조작이라고 반박했다.

재판에서는 사고기록장치 신뢰성 감정부터 블랙박스 영상 음향분석 감정, 국내 첫 사고 현장 도로 주행 재연시험에 더해 전자제어장치 소프트웨어 전문가의 최초 법정 증언까지 이어졌다.

앞서 경찰은 ‘기계적 결함은 없고, 페달 오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도현군의 할머니 ㄱ(사고 당시 68살)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ㄱ씨는 2022년 12월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손자 이도현군을 태우고 승용차를 몰던 중 급발진 의심 사고로 도현 군을 잃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됐다.

할머니와 도현이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자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에서 ㄱ씨에 대한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가 빗발쳤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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