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유기 막자”…‘1308 전화’로 128명 엄마 품에 보냈다

동경민·백진우 인턴기자 2025. 5. 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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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임산부 상담전화(1308)’로 1395명 상담…128명은 ‘원가정 양육’
입양 보내려다 마음 돌리기도…“상담사 통해 양육 지원 제도 알게 돼”

(시사저널=동경민·백진우 인턴기자)

©ChatGPT 생성 이미지

출산한 아이 둘을 살해한 뒤 냉동칸에 보관한 '수원 냉장고 영아 살인사건'을 계기로 도입된 '위기임산부 상담전화(1308)'가 개통된 지 7개월 만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제적·심리적 이유로 낙태나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행된 제도가 수많은 아이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위기임산부 상담전화가 개통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위기임산부 1395명이 상담을 받았다. 위기임산부란 경제적·신체적·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임산부를 말한다. 이들은 1308에 전화를 하면 24시간 언제든지 공적상담기관으로 지정된 전국 16개 지역상담기관으로부터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올해 출산한 미혼모 박정아씨(가명·34)도 그중 한 명이다. 박씨는 아이를 지우자는 남자친구와 연락을 끊고 미혼모가 됐다.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하던 그는 위기임산부 상담전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씨는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상담원이 정신적·육체적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챙겨줬다"면서 "(다른 미혼모도) 1308에 전화해 상담을 받으면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임산부 상담전화는 양육에 자신이 없어 아이를 입양 보내려던 임산부의 마음도 돌렸다. 상담사와의 심층상담을 통해 128명의 위기임산부는 스스로 아이를 키우는 '원가정 양육'을 택했다. 김아영씨(가명)는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해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김씨는 병원에서 가명으로 출산하고 이후 아이를 입양 보내는 '보호출산'을 신청했지만, 막상 태어난 아이 얼굴을 보니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간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해보라는 상담사의 말에 그는 생각을 바꿨다. 그사이 양육 지원에 대한 다양한 제도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결국 김씨는 보호출산 신청을 철회하고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결정했다.

서울시 위기임신 상담전화 서비스를 담당하는 '애란원'의 이숙영 원장은 "보호출산을 선택하고 아이 입양 보내기를 마음먹었더라도 태어난 아이 얼굴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는 산모들이 있다"며 "숙려기간 동안 전문 상담가가 산모를 대상으로 아이를 키웠을 때 받을 수 있는 혜택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고 되도록 아이를 키우자고 설득한다"고 설명했다.

위기임산부 상담번호 1308 홍보 포스터 ⓒ보건복지부

김미애 의원 "어디에도 말 못 하고 불안해하는 임산부에게 심리적 안정"

한편, 위기임산부 상담전화 서비스는 '위기임신보호출산제'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위기임신보호출산제는 위기임산부가 원가정 양육을 할 수 있도록 임신·출산 및 양육 지원 제도 안내 등 상담을 진행하고, 불가피한 경우 의료기관에서 가명으로 진료를 받고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태어난 아동은 출생 등록 및 보호조치 되어 국가의 책임하에 보호하게 된다.

제도는 시행 초기부터 '합법적 유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호출산은 최후의 불가피한 수단일 뿐 위기임산부와 아동을 보호하는 시스템에 주목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 미혼모 지원 상담 기관의 상담사는 "(사람들이) 보호출산 하나만 단편적으로 보는데 제도 시행으로 위기임산부들을 전문적으로 상담하고 보호하는 우리 같은 기관이 생겼다"며 "갑작스러운 임신에 달리 도움 구할 곳을 찾지 못해 헤매던 많은 위기임산부가 상담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위기임신보호출산법)을 대표 발의한 김미애 의원은 "보호출산보다 원가족 양육을 택한 위기임산부가 많다는 건 유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틀렸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보호출산을 선택한 위기임산부는 73명으로 집계된다. 같은 기간 원가정 양육을 선택한 임산부는 128명으로 보호출산을 선택한 수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이들 중 17명은 보호출산을 신청했다가 상담사와의 상담을 통해 철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보호출산은 마지막 수단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어디에도 말을 못 하고 혼자 불안에 떠는 위기임산부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라며 "한발 더 나아가 위기임산부가 출산 후 직접 양육까지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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