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사람은 누가 돌보나

서혜미 기자 2025. 5. 1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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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치매 노인·정신질환자·장애인 가족이 말하는 제도적 미비점…개인에게 책임 떠밀고 공적 인프라 없이 ‘통합지원법’ 설익은 출발
2025년 4월30일 경기도 용인시 집에 있는 송지은씨(오른쪽) 부부의 모습. 두 사람이 작업물을 함께 보고 있다. 류우종 기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2025년 5월5일 낮 12시30분께, 김희순(88·가명)씨가 식탁에 앉아 흥에 겨운 목소리로 한 소절씩 끊어서 노래를 불렀다. 부엌에서 점심을 준비하던 요양보호사 이가영(61·가명)씨와 딸 최지은(58·가명)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박자를 맞췄다. “엄마, 그 노래 말고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이거 해봐.” 최씨가 먼저 ‘내 나이가 어때서’의 후렴구를 부르자 김씨는 기다렸다는 듯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를 외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2026년 치매 환자 수는 100만 명

어린이날이자 석가탄신일이 겹친 이날, 서울 관악구에 있는 모녀의 집 식탁 위엔 점심으로 김밥이 올랐다. 김밥 속을 채운 건 잘게 다진 시금치, 신선초, 뽕잎나물, 엄나무순 등 푸릇푸릇한 제철 나물. 볶아서 수분을 날린 두부와 계란도 들어갔다. 콩과 흑미를 섞은 잡곡밥을 넣었는데, 보통 김밥에 들어가는 밥보다 비중은 적었다. 당뇨를 앓는 김씨를 위해 밥을 대폭 줄이고 채소와 단백질로 속을 가득 채운 ‘특제 김밥’이다. “1등, 우리 딸님이 1등!” 치매(인지저하증)를 앓는 김씨가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2025년 3월 발표한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3년 기준 치매 유병률은 9.25%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2025년 치매 환자 수는 약 97만 명, 2026년엔 100만 명, 2044년엔 2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치매 환자 100만’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모두 김씨처럼 밀도 높은 돌봄을 받으며 지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최씨가 어머니 김씨 돌봄을 위해 쓰는 비용은 한 달 300만원 이상이다. 그가 받는 월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보편적인 돌봄 가정에 적용하기 어려운 사례다. “저는 선택지 없이 무조건 요양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에 비해 조건이 좋은 편이죠. 다행히 제가 비혼이고, 월급이 있고 연금이 있어서 월급을 다 써도 되는 상황이니까요.”

2025년 5월5일, 최지은씨와 입주 요양보호사가 최씨 어머니의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서혜미 기자

한집에서 같이 살던 부모가 치매 판정을 받은 건 2013년께였다. 2017년부터 어머니가 길을 잃는 일이 잦아졌다. 넘어져 다치고, 인근 산에서 길을 잃어 이틀 넘게 찾지 못한 적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도 어머니처럼 새벽에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최씨는 건강보험공단의 방문요양서비스를 신청해 부모가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받은 장기요양보험 등급대로라면 부모는 각각 3시간씩 하루 6시간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추가 시간은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수급자나 가족이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부모의 상태는 나빠졌고, 최씨가 직장생활을 계속하려면 요양서비스 신청 시간을 늘려야만 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

‘부모님을 요양원으로 보내야 한다.’ 부모 돌봄을 전담하는 그를 안쓰럽게 여긴 최씨의 언니가 강력하게 주장했다. 내키진 않은 채로 주변에 좋다는 요양원을 수소문했다. 대기를 걸어놓고 요양원의 연락을 받고도 두 번 미뤘다. 세 번째 전화를 받았을 때 부부실이 있는 요양원으로 부모를 모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휴일 없이 365일 이어지는 돌봄

일주일쯤 지났을 때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본 부모의 모습이 좋지 않아 보였다. 특히 어머니는 영상통화를 할 때 최씨의 얼굴을 외면했다. 자신이 버려졌다고 여기는 듯했다. 한 달쯤 됐을 때 다시 집으로 부모를 모셔왔다. 요양원에 들어갈 땐 걸어갔던 두 분이 요양원에서 나올 땐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최씨는 “언니랑 지금까지도 ‘정말 잘했다. 안 그랬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최씨가 빈틈없이 부모를 돌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24시간 돌봄을 맡아줄 입주 요양보호사를 찾는 일부터가 난관이었다. 방문요양센터에 전화해 ‘어떻게 하면 좋은 분을 모실 수 있느냐, 뭘 해야 하느냐’고 읍소하기도 했다. 다행히 2021년 9월부터 지금의 입주 요양보호사 이가영씨와 지내게 됐다. 이듬해엔 코로나19에 걸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산전수전을 함께 겪은 이씨에 대해 최씨는 “약간 전우 같은 느낌도 들고, 자매 같은 느낌도 든다. 엄마의 상태나 엄마에 관한 건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 돌봄에 매진했던 지난 10여 년은 “해를 거듭할수록 허들이 추가되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2~3시간 간격으로 깨서 화장실에 가는 어머니의 생활 습관에 맞춰 ‘쪽잠에 특화된 몸’이 됐다. 당뇨와 심혈관 질환 등이 있고,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는 부모를 병원에 모시고 갈 일이 많아지면서 허들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방문 진료 등 사회적으로 제도는 있지만 막상 이용하려고 알아보면 최씨 가족에게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가 너무 편찮으셨을 때 방문 의사를 찾아보려고 다섯 군데에 전화했지만, 결국 연결이 안 됐어요. 좋은 제도들이 있는 듯 보이지만 막상 이용은 할 수 없었습니다.” 최씨의 말이다.

병원이 직장인의 상황을 고려해서 진료 일정을 잡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최씨는 “병원에 들렀다가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데 대기가 늘어지면 발을 동동 구르게 되고, 근태가 나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이 돌봄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있지만, 노인 돌봄은 육아만큼 세심하게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는 “직장에서 누가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적으로 (돌봄이) 보장되지 않으니 눈치 보이는 상황이 자꾸 생긴다”고 했다.

휴일 없이 365일 이어지는 돌봄은 보호자와 요양보호사의 부담을 점점 무겁게 쌓아갔다. 돌보는 사람도 나이가 들고, 아프다. 50대 후반인 최씨는 오십견 증상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통증에 시달렸다. 60대에 접어든 요양보호사 이씨도 병원에 가는 일이 늘어 최씨의 걱정이 크다. ‘노노 케어’(노인이 노인을 돌보는)의 현실이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재가거주 노인 5045명과 주돌봄제공자 4092명을 대상으로 2023년 실시한 ‘한국 장기요양 노인 코호트’ 조사 결과를 보면, ‘노노 케어’를 체감할 수 있다. 주돌봄제공자의 평균연령대는 66살이고, 55~64살이 30.3%(1241명), 65~74살이 22.5%(922명), 75살 이상이 28.2%(1155명) 등 장노년이 절대다수였다. 마찬가지로 2023년 기준, 요양보호사의 평균 연령대도 61.7살이다.

계륵 같은 장애인활동지원 제도

한국의 돌봄 체계는 ‘돌보는 사람’을 지원하는 일에 인색하다. 노인이나 장애인 등 돌봄 대상자를 위한 서비스는 형식적으로나마 마련된 것과 달리, 이들을 실제로 돌보는 가족과 요양보호사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최씨는 “(휴일 없이 가족을 돌보는) 나 같은 사람한테도 뭔가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도 제도적으로 돌봄 시간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며 “같이 사는 요양보호사도 24시간 일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쉬거나 운동할 수 있게 다른 사람이 와서 어머니 말벗을 해주는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23년 송지은씨와 남편이 만든 아티스트 듀오 ‘라움콘’이 2023년 만든《1+1=1 (1).5》. 남편이 편마비로 지팡이를 쓰게 되며 우산을 쓸 수 없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우비. 라움콘 제공.

돌보는 사람이 아플 때 돌봄이 멈출 수 있다는 현실은 극심한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예술가 송지은(43)씨는 2018년 10월 뇌출혈로 남편이 뇌병변 장애인이 된 뒤 홀로 돌봄을 전담하고 있다. 처음에는 재활병원에서 2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 재활병원에서 퇴원한 뒤 후유증에서 점차 회복해 움직이는 남편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이전과 ‘다른 몸’을 살며 느끼는 것들을 남편과 함께 창작 활동으로 풀어가며 회복기를 거치기도 했다. 남편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의 일종인 베르니케 실어증이 생겼다. ‘양치질’을 ‘라움콘’이라고 발음하는 등 없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게 증상 중 하나다. 부부는 이 단어에 착안해 ‘라움콘’이라는 아티스트 듀오를 구성해 작품을 만들거나, 다른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전시회를 연다.

2022년 가을께, 남편은 일상생활 적응을 거쳐 다니던 직장에 복직했다. 주 3일 하루 5시간씩 일하기로 했다. 한쪽 마비가 있는 남편이 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송씨가 이른 새벽(5시45분) 집을 나서는 이유다. 아침 7시 전후로 회사에 도착해 남편을 사무실로 올려보내고, 남편의 일을 돕는 근로지원인이 도착하는 오전 8시까지 인근을 빠른 속도로 산책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작업, 약속, 병원·은행 등 개인적인 업무를 본다. 용인과 서울을 오가는 장거리 출퇴근을 도와줄 활동지원사를 구하기도 어렵다. 설령 구한다고 한들 출퇴근길에 이용할 장애인 콜택시를 찾기란 더더욱 ‘하늘의 별 따기’다. 그는 장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들을 두고 “있어도 ‘계륵’ 같다”고 표현했다.

2025년 4월30일 오후, 회사에서 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남편과 함께 송지은씨가 퇴근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년 전쯤 불안이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송씨가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을 무렵이었다. 당장 자신이 아니면 남편의 출퇴근을 챙길 사람이 없었다. 시부모는 고령인데다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내가 돌봄자인데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막막함이 예기불안(미래의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떠올렸을 때 불안감이 증가하는 형태의 불안 증상)으로, 그리고 공황으로 이어졌다. 갑상샘 절제 수술을 받은 송씨는 5일간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 이틀을 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남편의 출퇴근을 위해 자동차 운전대를 잡아야만 했다. ‘내가 잘못되면 이 사람은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저희 되게 유쾌하게 재밌게 잘 지내요. 그런데 저는 요즘 제가 아플 때가 제일 무서워요. 남편이 아프면 본인이 병가를 내겠지만 내가 아프면 어떡하지? 남편은 멀쩡한데 출근을 못하니까 생계에 지장이 생기잖아요. 이런 걸 경험하고 어떤 제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게 됐죠. 법적으로 회사에서 장애인 직원의 돌봄자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예외를 인정해준다거나. 그런 게 없으면 제가 아예 아프면 안 되는 거잖아요.”

‘엄마를 돌보는 일이 거대한 파도 같았다’

두 사람은 돌봄 대상과 돌봄 제공자의 삶이 ‘불행’의 동의어가 되지 않으려면 사회의 역할이 지금보다 커져야 한다고 본다. 부부는 작업에 대해 ‘라이프스타일 실험’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다른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실험이라는 의미에서다. 송씨는 “‘재활’(Rehabilitation)이라는 영단어는 ‘다시 거주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며 “남편에게 늘 ‘당신이 예전과 다른 몸으로 두 번의 삶을 산다는 건 대단한 경험이다. 예술가로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많이 배운다’고 말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일상을 지속해나가려면 무엇보다 사회가 돌봄자도 돌봐야 한다는 인식을 지니고 제도로 그런 인식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송씨는 “지금은 젊으니까 괜찮다고 해도 10년 뒤에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겠다”며 “우리 모두 나이가 들고 몸이 연약해지면 돌봄이 필요하다. 누구나 다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라면 개인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 고민해줘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돌보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사회에서 질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까지 덧씌워지면 그 고통은 더욱 커진다.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를 앓는 어머니를 둔 이희진(32·가명)씨의 이야기다. 이씨는 7살 무렵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산부인과 간호사로 일했던 이씨의 어머니는 딸을 낳고도 제대로 품에 안지 못했다고 한다. 병원에서 새 생명과 안타까운 죽음 사이를 목격하면서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낳은 아이마저 잘못될까 두려워한 것이다. 어머니는 특히 삶 속에서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앓았다. 유독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사회적으로 큰 재난이 발생해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크게 아팠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어머니의 증상은 악화했다. 이씨는 9살이 되던 해부터 3살 터울이던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정신과 진료에 동행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면 친척들의 돌봄을 받으며 자랐다. 이씨는 “엄마를 돌보는 일이 ‘언제 나를 삼킬지 모르는 거대한 파도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대기업에서 일하며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렸던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고, 몇 번의 자영업을 거쳐 택시 운전기사가 됐다. 그사이 집안의 경제상황도 계속 나빠졌다. 네 식구가 넉넉히 살 수 있었던 집은 점점 작아졌고, 10평 남짓한 공간으로 쪼그라들었다.

송씨 부부의 벽에 붙은 종이. 오른쪽 마비가 있는 송씨의 남편이 왼손으로 직접 쓴 글씨가 적혀 있다. 류우종 기자.

9살부터 어머니 마음병 돌봤는데…

이씨는 성장하면서 비슷한 고통을 받는 주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됐고, 어머니의 질병이 개인의 고통에 국한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자살 시도를 했던 같은 반 친구를 만났고, 지하철에서 몇 차례 자살 현장을 보게 된 이후 이웃과 우리 사회의 아픔이 보였다. 어머니의 감정 너울을 바라보던 이씨의 시선이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계기가 됐고, 대학에서 심리상담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했다. 결혼 후에는 고향집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사했다. 비슷한 시기에 어머니의 정신질환이 호전돼 가족들은 보통 가족처럼 평범하게 사는 꿈을 꿨다.

그런데 군대에 입대한 이씨의 동생에게 어머니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서 어렵게 찾아온 평화는 산산이 부서졌다.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영리해서 공부도 곧잘 했다. 그래서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에 진학한 뒤 군대에 입대했는데 2017년 군대에서 집으로 연락이 왔다. 동생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혼잣말하는 증상을 보인다는 거였다. 군대에서 나와 병원에 입원했던 동생은 증상이 호전돼 퇴원했지만,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다시 질환이 악화했다. 입퇴원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서서히 사회성이 떨어져갔다. 동네에서는 ‘정신질환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영민했던 아들의 질병이 자신의 탓이라 믿는 어머니도 다시 증상이 악화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누워 지낸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증상이 나타난 뒤인 2019년께야 장애인으로 등록해 장애등급을 받았다. 정신장애라는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장애등급을 신청하지 않았지만, 30년 가까이 이어진 질병으로 가계 상황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떠밀리듯 자신의 장애를 공증했다. 정부의 작은 지원이라도 받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씨는 자신이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동생의 질병이 생겼다고 자책했다. 자책을 계속하며 고통받다가 이씨는 ‘어쩌면 이 고통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며, 사회구조적인 이유 때문일 수 있다’고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9살부터(동생은 6살부터) 엄마의 정신과 진료에 동행하고, 엄마의 마음병을 돌봤는데 왜 우리 남매에 대한 심리 정서적 지원이나 사회적 돌봄은 없었을까’ ‘당시에도 놀이치료와 미술치료 등 아이들을 위한 여러 치료와 심리 상담 서비스가 있었는데 우리 남매가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정신질환자 자녀에 대한 돌봄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돌봄 공백과 사회적 낙인 뒤에 숨겨져 있는 아이들은 괜찮은 걸까’ ‘이런 아픔의 대물림을 끊으려면 어떻게 할까’. 이런 질문들을 안고 이씨는 한겨레21이 제안한 인터뷰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저는 제가 이 돌봄을 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보니 ‘주어진’ 가족이 아팠고 어쩔 수 없이 돌봄을 해야 했습니다. 사회적 낙인과 주변 시선이 두려워 전전긍긍하며 살았지만 다른 정신질환자 가족들은 제가 겪었던 어려움을 똑같이 경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혹 겪을 수밖에 없다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요.” 이씨가 말했다.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 지원해야

이씨는 돌봄이 필요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를 보살피는 ‘가족 통합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한 사람이 아프면 가족 모두가 함께 아프고, 사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현재 돌봄 정책과 정신건강 정책은 개인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특히 정신질환자의 자녀들이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고 성장하고 있는지 예방적 관점에서 살피고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하고, 유전적 원인만 강조되는 한국에선 질병이 발생하는 사회·환경적인 원인을 간과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과 가족의 문제로만 덮어두는 것이다. 2003년 이후 2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이러한 경향성과 무관하지 않다.

돌봄을 개인 또는 가족의 일로 미루고 돌봄 제공자를 정책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한국과 달리, 국외에선 돌봄 제공자의 권리와 지원을 보장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0년 가족이나 친구 등 돌봄 제공자의 기여를 인정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법안인 ‘돌봄자 인정법’(Carer Recognition Act)을 제정하고, 2011년에는 ‘국가 돌봄자 전략’(National Carer Strategy)을 수립해 돌봄자가 지역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거나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구체화했다. 이 밖에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돌봄 제공자 플랫폼(Carer Gateway)을 통해 돌봄자에 대한 심리 상담, 교육, 단기 대체 돌봄 서비스 등을 제공하면서 이들의 회복과 휴식을 돕는다.

한국은 2026년 3월부터 ‘돌봄통합지원법’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 법은 지금처럼 보건의료, 요양, 사회복지 등 각종 서비스가 분절적으로 제공돼 돌봄 사각지대와 비효율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돌봄과 복지를 정의하는 법률마다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통합해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지역에서 맞춤형 통합돌봄 서비스를 받게 돕는다는 목표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한국에서 복지 서비스를 받으려면 항상 자격을 입증하기 위해 심사를 받고 등급을 매기는 과정이 수반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중앙정부의 편의에 따라 운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범사업을 할 때는 노인과 장애인, 정신장애인 등 서비스 폭이 넓었는데, 윤석열 정부에서 노인과 장애인으로만 한정된 부분도 한계로 지적된다. 앞서 살펴본 세 가족이 절실하게 말하는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의 돌봄’에 대한 제도나 정책도 전혀 담기지 않았다.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와 동생을 돌보는 이희진(32·가명)씨가 그린 그림. 이씨는 “두 개의 극 사이에서 나의 중심, 안전지대, 초록을 지어가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희진씨 제공

지역사회 공공성도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내년 시행을 앞둔 통합돌봄지원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지역사회의 공공성 강화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원필 건강돌봄시민행동 운영위원장은 “지역의 돌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공적 인프라 없이는 (통합돌봄지원이) 작동하기 어렵다”며 “돌봄과 관련한 각종 필수 영역들이 민간 시장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의료는 공공성이 강한 보건소의 기능을 개편하거나 사회서비스를 통합해서 전달하는 사회서비스원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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