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전기차 산업의 역설…발암물질 오염된 섬마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4시간 가량 떨어진 말루쿠 제도. 1,000개에 이르는 섬 가운데 오비 섬이 있다. 오비 섬에서 만난 마을 주민 누르하야티 주마디는 할아버지가 돌보던 캐슈나무 숲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을 인근 개천에서 자라나던 캐슈나무들. 할아버지는 나무를 가꿀 때 식수를 가져가지 않고 개천물을 그대로 마셨다고 한다.
오늘날 그 개천은 적갈색 퇴적물로 걸쭉해졌다. 마을 인근의 거대한 니켈 광산에서 검붉은 황토가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대기업 하리타 그룹이 소유한 이 광산은 주마디의 작은 목조 집이 있는 카와시 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광산 둘레에 자리한 제련소 굴뚝에서는 오늘도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주마디는 하리타의 니켈 광산이 운영된 이래 “고름과 피가 섞인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하리타는 2010년부터 오비 섬에서 니켈을 채굴하고 있다. 다른 마을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개천물을 마시고 있는 그는 위경련과 설사에 고통받는다고 한다.
취재진이 인터뷰한 카와시 마을 주민 11명 중 3명은 개천물로 목욕하고, 식수로 마시며, 요리에 사용한다고 증언했다. 나머지 8명은 식수로 마시지 않지만, 목욕과 요리에는 사용한다고 답했다.
전직 하리타 직원이었던 주민 만 노호는 “돈이 있는 사람들은 생수를 사지만, 저 같은 사람들은 그 물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노호는 개천물의 맛과 색깔이 이상한데다, 그 물을 마시는 네 자녀가 끊임없는 복통으로 고통받고 있다고도 말했다.
노호를 포함해 인터뷰에 응한 주민 중 누구도 하리타나 인도네시아 당국으로부터 수질 오염에 대한 설명이나 경고는 듣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마디는 “(설사 등 증상이) 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물은 매일 마시고 있다”고 밝혔다.
인니 천연자원 대기업, 장기간 수질오염 의혹
하리타는 팜유, 석탄, 목재 등 다양한 천연자원을 생산하는 인도네시아의 대기업이다. 세계적으로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니켈의 주요 생산업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010년대 후반 들어 기후위기 이슈로 전기차 수요가 늘자 전기차용 배터리와 그 원료인 니켈 수요는 크게 증가했다.
인도네시아는 니켈 매장량 기준 전 세계 1위 국가다. 전 세계 니켈 공급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하리타는 전 세계 니켈 공급량의 약 6%를 담당할 정도로 규모가 큰 업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니켈 산업 육성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2020년부터 니켈을 국가 전략 광물로 지정한 데 이어 니켈 원광의 수출을 금지했다. 중국 배터리 소재 기업들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니켈 광산과 제련 기업에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니켈 공급망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 추세와 맞물려 하리타가 운영하는 오비 섬 사업장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니켈 광산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이 회사의 광산 사업은 인근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2년 2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오비 섬에 있는 하리타의 니켈 사업장에서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카와시 마을의 식수를 조사한 결과, 독성 화학물질인 ‘6가크롬’ 수치가 법적 기준치를 웃돌았다고 보도했다. 6가크롬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힝클리 지하수 오염’ 사건으로 유명해진 유독성 물질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소개된 바 있다. 6가크롬은 인간의 간과 신장을 손상시키고 치아를 부식시키며 피부를 자극하고 암을 유발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6가크롬의 위험성이 알려졌는데, 당시 산업용 폐수를 무단 방류한 일부 철강·도금업체가 적발돼 형사 처벌을 받기도 했다.
하리타는 가디언이 제기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인도네시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자사의 니켈 광산이 환경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리타의 내부 논의 내용은 대외적으로 밝혀온 입장과 달랐다. ‘국제협업취재팀’이 하리타의 내부 문서를 입수해 검토한 결과, 오비 섬의 오염 실태는 알려진 것보다 심각한 상태로, 결론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전 세계 친환경 산업을 지탱하면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협업취재팀, 하리타 내부 문서 통해 10여년 간 ‘수질오염 은폐’ 사실 확인
뉴스타파와 OCCRP(조직범죄와 부패 보도 프로젝트), 영국 일간지 가디언, 독일 방송사 도이체벨레, 환경매체 ‘게코 프로젝트’는 이번 취재를 위해 국제협업취재팀(이하 취재팀)을 구성했다. 취재팀은 미국의 비영리 투명성 단체인 ‘분산 비밀 거부’ (Distributed Denial of Secrets)로부터 약 500GB에 달하는 하리타 내부 문서를 제공받았다. 여기에는 하리타가 시행한 자체 수질검사 결과와 6가크롬 검출로 하리타의 환경 위험 관리가 실패하고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 스프레드시트, 프레젠테이션 문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앞서 분산 비밀 거부는 한 해커그룹이 랜섬웨어 공격을 통해 확보한 하리타 그룹의 데이터 캐시를 넘겨 받아 이 자료를 확보했다. 해당 자료엔 2011년부터 2023년까지 생성된 하리타 그룹 내부 문서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OCCRP는 이 자료를 취재팀 기자들과 안전한 방법으로 공유했다. 취재팀은 유출 문서 내용이 공익에 부합하고 엄격한 윤리 및 편집 기준을 준수한다고 판단해 보도를 결정했다.
“하리타 자체 수질검사 결과…기준치 초과, 환경법 위반 증거”
취재팀은 독성학, 지질화학, 수질 등 유관 분야 전문가 5명에게도 일부 자료를 공유했다. 이들에게는 하리타가 자체 조사했던 ‘수질검사 데이터’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5명 모두 오비 섬에서 검출된 6가크롬 수치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를 초과해 공중 보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결론 내렸다.
특히 라오드 샤리프는 취재팀이 확보한 내부 문서가 행정소송과 민사소송, 심지어 형사소송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부패근절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법률 전문가로 인도네시아에서 대법원 수석 환경법 강사를 맡고 있다. 샤리프는 “(현지) 활동가들과 기자들이 오랫동안 니켈 광산에서 발생한 수질 오염 문제를 지적해왔다”며 “이 내부 데이터는 (하리타가) 인도네시아 환경법을 위반했음을 입증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유출된 자료에는 하리타가 당국에 어떤 데이터를 제출했는지, 이에 대해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까진 적혀 있지 않았다.
취재팀은 법적 기준치를 웃도는 수질 오염 사실이 기록된 하리타 내부 자료에 대해 인도네시아 환경부의 입장을 물었다. 하지만 보도 시점까지 답변을 듣지 못했다. 하리타 그룹의 니켈 광업 자회사인 PT. TBP에도 해명을 요청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또 유출된 내부 이메일에서 언급된 하리타 그룹의 임원들(토니 굴톰 등)에게도 연락했지만 그들은 응답하지 않았다.
하리타 측은 취재팀의 거듭된 질의에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왜곡된 정보를 노출하고 있다. 하리타 홈페이지에는 자신들이 환경 규정을 준수하고 있고 카와시 마을 개천물이 마셔도 안전하다고 강조하는 보도자료와 동영상 등이 게시돼 있다. 그러나 법적기준치를 초과하는 6가크롬에 대한 설명이나 경고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비 섬, 하리타 광산 가동 이후 6가크롬 수치 급상승
오비 섬은 한때 전 세계 향신료가 오가는 무역로의 중간 기착지였다. 육두구와 정향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2010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인도네시아의 억만장자 림 하리얀토 위자야 사르워노 일가가 소유한 하리타 그룹이 들어오면서부터다.
하리타 핵심 자회사 PT. TBP(PT Trimegah Bangun Persada)는 2010년 광산 자회사를 세운 뒤 오비 섬에서 니켈 채굴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카와시 마을 주변엔 니켈 가공 공장과 석탄발전소가 건립됐다. 섬 서쪽 해안에 위치한 이들 시설엔 곧 노동자들이 몰렸다.
니켈 채굴은 자연을 파괴하는 과정이다. 노천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숲과 토양을 깎아내야 하고, 니켈 채광으로 발생하는 ‘지표수’는 납과 카드뮴과 같은 독성 화학 물질이 포함돼 있어 주변 수원을 오염시킨다. 무엇보다 채굴된 니켈 원광은 열 처리를 거쳐 물과 니켈로 분리되는데, 이 과정에서 고열에 노출된 크롬 물질은 더 독성이 강한 6가크롬으로 변한다. 6가크롬 등 크롬 물질은 인도네시아 법령에 따라 엄격히 관리하도록 돼 있다.
인도네시아는 화학 기업이 폐수와 지하수를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당국에 보고하여 피해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법이 정한 기준은 식수의 경우 50ppb(1000톤당 50g)를 초과해서는 안 되고, 폐수의 경우는 100ppb를 초과할 수 없다. 만약, 기준치 이상의 크롬 물질이 검출되면 해당 기업은 당국의 조사를 받고, 조사 결과에 따라 벌금이나 사업장 폐쇄, 형사 고발과 같은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하리타 내부 문서를 보면, 2012년 기준 하리타 광산에서 흘러나온 폐수의 6가크롬 농도는 법적 기준치를 많게는 3배 이상 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광산 인근 두 지점에서 채취한 폐수 샘플의 6가크롬 농도는 각각 350ppb와 130ppb로, 모두 기준치인 100ppb를 상회했다.
하리타, 수질 오염 완화 조치 실패… 임원들 알면서도 묵인
이에 하리타는 2013년까지 오염된 폐수를 가두는 크롬 저감 조치를 시행했다. 유출을 막기 위해 인공 침전지를 만들거나 폐수에 직접 황산철을 주입하고 습지를 활용해 오염 물질을 흡착하는 방법도 시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6가크롬 수치는 지속적으로 법적 기준치를 넘겼다. 이렇게 내부 수질검사 결과에서 문제가 확인됐음에도 회사 최고위 경영진은 이를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 10월, 하리타의 보건·안전·환경 책임자인 토니 굴톰 이사는 회사 최고운영책임자인 숀 림 등 임원 4명에게 메일을 보냈다. 6가크롬 수치를 유발하는 근원지를 파악하고, 폐수 유출을 관리하기 위해 내부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토니 굴톰은 이로부터 10년 가까이 회사 임원들을 상대로 ‘법적 기준치를 초과하는 6가크롬과 수질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는 하리타 직원들의 내부 보고에 따른 조치였다. 2014년 2월 하리타의 지역 환경관리자는 굴톰 등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오비 섬의 수질오염 사실을 알렸다. 당시 그는 “샘플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6가크롬이 검출되고 있다”며 “환경부 공무원에게 ‘현재 상황이 좋지 않으니 지금은 이 정보를 지역사회에 전달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보고했다.
2년 뒤인 2016년 10월에는 굴톰이 내부 준법감시팀 직원에게 이메일을 썼다. 굴톰은 지질 전문가가 쓴 보고서를 공유하며 “6가크롬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하는 이유”라고 적었다. 당시 굴톰이 첨부한 보고서에는 카와시 지역 광산에서 크롬이 검출됐고, 니켈 채굴 과정에서 더 독성이 강한 6가크롬 형태로 변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겼다. 뿐만 아니라, 6가크롬의 노출에 따른 인체에 미칠 부작용도 언급됐다.
니켈 제련소 가동되며 수질오염 더욱 악화
그런데 하리타 임원들은 지속되는 수질오염 문제에 대한 내부 문제제기를 묵인한 채 사업 확장에만 몰두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하리타는 니켈을 가공하는 건식 제련소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 직후인 2017년 4월, 카와시 마을 인근 강변에서 검출된 6가크롬 수치는 더 증가했다. 당시 굴톰은 해당 수질검사 결과를 동료들에게 전달하면서 “활발한 채굴과 공장에서의 폐수 유입이 수치 증가의 원인”이라고 썼다.
나아가 하리타는 ‘고압 산 침출’(HPAL)이라는 습식제련 기술을 활용한 제련소도 건립했다. HPAL는 니켈 함유량이 적은 저급 라테라이트 원광을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고순도 재료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이 제련소는 중국 대기업인 리젠드(Lygend Resources and Technology)와 하리타가 2018년 합작해 설립한 생산 시설이다. HPAL 제련소에는 리젠드가 10억 달러(한화로 약 1조 원)를 투자했고, 하리타는 원자재 제공을 담당했다.
이에 따라 오비 섬 안의 ‘하리타 산업 단지’는 더욱 거대해졌다. 마을 주민들은 그만큼 산업 단지가 배출하는 ‘유해 물질’과 가까워졌다. 2018년 위성사진 기준, 카와시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산업 구조물은 약 1.6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HPAL 제련소가 가동을 시작한 2021년에는 마을 식수원인 개천과 불과 200m 떨어진 곳까지 구조물이 들어섰다.
이 무렵 PT. TBP의 환경 담당 임원이었던 굴톰은 제련소를 관리하는 ‘할마헤라 페르사다 리젠드’(PT Halmahera Persada Lygend, 이하 PT HPL)의 이사로 재직했다. PT. HPL은 하리타가 중국과 합작한 습식제련소가 마을의 수질 오염문제를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21년 한 하리타 임원은 이메일에서 “과거에는 슬래그(찌꺼기) 비축 지역, 광산 야적장 지역 때문에 6가크롬 수치가 높았는데, 현재는 HPAL 제련소의 영향이 높다”고 적었다.
그 이듬해인 2022년 2월 19일, 가디언은 “카와시 개천의 6가크롬 수치가 법적 한도를 초과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하리타가 PT. TBP를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려던 시기에 나왔다. 그러나 오비 섬의 수질 오염 의혹은 상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023년 4월 하리타는 IPO에 성공해 약 6억 6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9천억 원에 가까운 자금을 조달했다. 인니 주식시장 역대 두번째 규모였다.
상장에 앞서 하리타는 가디언 기사를 전면 부인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해당 개천에서 실시한 수질검사 결과, 6가크롬이 법적 기준에 부합하는 5~40ppb만 검출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회사 내부적으로 회람한 수질 검사 데이터는 하리타의 기존 해명과 완전히 배치됐다.
가디언의 기사가 나오기 이틀 전인 2022년 2월 17일 카와시 개천에서 측정한 6가크롬 수치는 128ppb로 식수 기준치(50ppb)의 두 배가 넘고, 폐수 기준치(100ppb)보다 높았다. 또한 2022년 작성된 하리타의 ‘환경보고서’에는 매달 초 측정한 6가크롬 수치가 지속적으로 기준치를 위반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수질오염으로 생산된 니켈, 한국에도 공급
유출된 내부 문서에는 하리타가 제조한 니켈 제품(페로니켈, MHP 등)의 납품사도 적혀 있다. 전 세계 전구체 점유율 빅5 기업으로 꼽히는 중국 CNGR, 화유코발트, GEM, 이스프링 등이다.
이는 하리타가 중국 업체인 리젠드와 합작법인을 세우고 고순도의 니켈을 생산한 결과로 풀이된다. 오비 섬에서 생산된 니켈의 품질이 향상되면서 배터리 소재 업체와의 공급 계약이 이어진 것이다. 전구체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이렇게 하리타로부터 니켈 제품을 납품받은 중국 배터리 소재 업체들은 전구체와 양극재 등을 생산해 배터리 제조업체에 납품했다. 이 같은 공정을 거쳐 완성된 배터리는 다시 테슬라, BMW, 포드,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전기차 기업에 공급됐다.
한국도 이 공급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배터리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한국은 니켈 원재료와 배터리 소재 수급을 인니와 중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배터리 소재인 전구체의 대중국 수입 비중은 2023년 기준, 97.5%에 달했다.
이렇듯 하리타의 니켈 제품을 쓰는 중국의 CNGR, 화유, GEM 등과 거래하는 국내 배터리 업체는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 나아가 오비 섬에서 채굴된 니켈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취재팀은 오비 섬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니켈의 공급망을 추적했다. 취재팀이 확보한 하리타 내부 문서와 수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포스코와 에코프로GEM(현 에코프로머티리얼스)는 하리타 계열사들이 생산한 니켈 소재를 국내로 공급받아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납품 시기는 6가크롬으로 인한 수질오염이 증폭됐던 2019~2023년 사이다. 이 시기는 중국의 투자로 오비 섬에 습식제련소가 생기는 등 글로벌 니켈 공급이 확대되던 때다.
포스코, 하리타 자회사 통해 니켈 제품 받아… “리젠드와 소량 계약”
포스코는 2019년 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하리타 자회사 PT. MSP로부터 최소 13차례에 걸쳐 10만 톤이 넘는 니켈 제품(페로니켈)을 포항에서 납품받았다.
이 기록에 대해 포스코는 하리타 계열사와 직접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리젠드와의 계약을 통해 소량의 니켈 제품을 공급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직접 거래가 아닌 관계로 하리타 광산의 채굴 과정에 대해 파악한 바 없으며, 2024년부터는 니켈을 공급받은 사실도 없고 향후에도 공급받을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포스코의 해명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포스코는 자신들이 납품받은 니켈 제품(페로니켈)의 경우, “6가크롬이 유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리젠드를 통해 구매한 니켈은 잔여물(슬래그)에 수분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6가크롬이 유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포스코의 이 같은 주장은 취재팀이 확보한 하리타 내부 문서를 통해 반박될 수 있다. 앞서 밝혔듯 오비 섬에선 2012년부터 다량의 6가크롬이 검출됐다. 광산 주변 측정지에서 검출된 6가크롬량은 지속적으로 법적 기준치보다 높았다.
포스코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들은 더 있다. 하리타 사례와 같이 습식제련이 아닌 건식제련에서도 6가크롬이 생성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 현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6가크롬은 고온, 산화로 인한 화학 반응 등 다양한 요인으로도 생성되고, 이를 저감하기 위한 연구가 정부를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에서 진행한 2023년 ‘수생 식물을 이용한 니켈 광산 폐수 중 6가크롬 정화’ 연구)
특히 하리타 내부 문서에 따르면, 하리타는 제련 방식과 무관하게 노천 광산 등에서 6가크롬이 유출된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결국 하리타가 채굴·가공한 니켈 제품을 구매한 기업들은 어떤 형태로든 6가크롬 유출에 관여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심지어 하리타 내부 문서에 따르면, 포스코는 2022년 10월 중국 리젠드와 합작 투자 형태로 오비 섬 등에 신규 제련시설을 설립하고, 니켈 제품(MHP)을 공급받는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양측의 사정으로 최종 계약은 무산됐지만, 포스코가 오비 섬에도 니켈 공급망을 세우려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에코프로, ‘6가크롬’ 니켈 제품 7600톤 반입… 묵묵부답
에코프로GEM은 하리타 자회사 PT. HPL로부터 2022년 2월 최소 7600톤의 니켈 제품(MHP)을 포항으로 들여왔다. 에코프로는 중국의 전구체 제조사인 GEM과 합작 생산시설을 세우고 지난 10여년 간 양국에서 배터리 소재를 생산했다. GEM은 하리타 계열사에서 니켈 제품을 납품받고 있는 대표적인 업체다.
에코프로 역시 하리타가 채굴·가공한 니켈 제품을 직접 반입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에코프로는 오비 섬 수질오염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의에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에코프로 측은 지난달 18일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만 답했다.
그런데 에코프로는 이로부터 10여일 뒤 공개한 2024년 책임광물보고서(25년 4월 30일)에서 인도네시아 진출을 예고했다. 에코프로는 “하이 니켈 밸류체인 강화를 위해 인도네시아로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며 “3자 기관을 포함해 현장 실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리타 내부 문서에는 구매자가 누구인지 규명되지 않은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등장한다. 2018년부터 2024년 1월까지 오비 섬에서 생산돼 리젠드, 글렌코어 등 유통업체 이름으로 포항항과 광양항을 통해 반입된 니켈 제품은 페로니켈 7만 2000톤과 MHP 1만 2000톤이다. 에코프로 외에도 오비 섬의 수질 오염과 무관하지 않은 국내 기업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인니 환경 리스크’, 구매자인 한국 기업들은 “ESG 경영” 말뿐
현재 포스코와 에코프로는 스스로 ESG 경영방침을 천명하며, 니켈 공급망에 포함된 해외 제련소 등에 대한 실사를 자체적으로 또는 전문 업체를 통해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비 섬 사례에서 보듯 하리타 광산과 직접 거래하지 않는다면, 실사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어 그 허점이 적지 않다. 배터리 소재 업체가 마음만 먹으면, 우회적인 방법으로 얼마든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니켈의 최종 납품처인 배터리 제조사나 완성차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취재팀은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삼성SDI, SK온, LG에너지솔루션에도 하리타가 자사 공급망에 포함되는지, 하리타가 간접 공급사라면 오비 섬에서의 수질오염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이들 회사 중 일부는 에코프로로부터 전구체나 양극재 등 소재 물량을 공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3사는 ‘직접 협력사인 국내 및 중국 소재 업체로부터 하리타와의 계약 또는 거래 사실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3사는 “광물조달 관행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 노력에 동참”하고 “협력사들이 자사의 책임있는 광물 조달 규범을 따르도록 정기적인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실제 삼성SDI, SK온, LG에너지솔루션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사의 책임광물 조달정책을 홍보하고 있다. 인권 및 환경을 보호하면서 윤리적으로 채취된 광물을 납품받아 사용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매년 발간되는 ESG보고서에서는 협력사 업체명이나 실사 결과가 정확히 공개되지 않는다. 또, 실사를 하더라도 직접 계약 관계가 있는 1차 협력사를 상대로만 진행하고, 하리타와 같은 원재료 추출·가공 업체에는 해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완성차 기업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국의 배터리 회사들이 제조한 전기차용 배터리는 현대차를 비롯해 GM, 폭스바겐, BMW, 르노 등 주요 완성차 기업에 공급된다. 이중, 현대차와 르노는 취재팀에 “하리타 측과의 공급 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하리타와의 거래 관계를 인정한 유일한 업체는 메르세데스-벤츠다. 벤츠는 “하리타에서 니켈을 공급받는 중국 소재 업체로부터 배터리를 구매한 바 있다”고 밝혔다. 벤츠는 오비 섬에 있는 하리타-리젠드 합작사 PT. HPL이 간접 협력사임을 인정했다. 아울러 벤츠는 “오비 섬의 수질오염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보도가 2022년 나온 후 전문 업체를 통해 실사를 실시했고, 현재는 직접적으로 구매 관계에 있지 않다”고 취재팀에 밝혔다. 이외 완성차 기업들은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유럽은 공급망 실사 법제화 추진… 한국 기업들도 대비 시급
인니 광산에서 채굴된 니켈 원광이 전기차 배터리가 되기까지의 ‘글로벌 공급망 사슬’은 여러 단계로 구성되며, 그중 완성차 기업은 가장 먼 곳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메르세데스-벤츠가 원료인 니켈의 광산 문제와 수질오염 문제까지 관리하는 배경에는 바로 공급망 규제가 있다.
독일은 지난 2023년부터 대기업을 대상으로 ‘공급망 실사법’을 시행 중이다. 이 법은 공급망 안에 있는 모든 협력사를 대상으로 사업장 실사를 진행하고, 인프라를 지원해 윤리적인 생산시스템을 도입하도록 규정한다. 노동자 및 인근 주민의 인권 침해, 환경오염 등을 방지할 시스템도 의무적으로 마련하도록 강제한다. 법을 어기면 전체 매출의 최대 2%에 이르는 과징금까지 내야 한다. 2024년 기준 약 2,900개 기업이 이 규제의 대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이 협력사의 실사 의무를 강제한 ‘공급망 관리 규제’는 유럽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은 비슷한 취지의 ‘공급망 실사 지침’을 2027년부터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EU 27개 회원국은 내년 7월까지 이 지침을 자국법에 반영해야 한다. 미국도 2021년부터 공급망 규제의 일환인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 내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 반입을 금지하기 위한 조치다.
박소영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EU 공급망 실사지침은 광산, 1차 협력사, 2차 협력사 등 공급망 전체에 대한 실사로 확대될 전망이라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업스트림 공급망 압박이 더욱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도 “EU 지침은 유럽으로 수출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모두 해당된다”며, 유럽 현지 법인을 설립한 한국의 모기업도 공급망 실사 의무를 지게 되므로 조속한 대응체계 구축을 촉구했다.
이렇듯 원자재 협력사를 상대로 공급망 상위에 있는 기업이 인권·환경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은 인도적 차원을 넘어 국제 교역의 ‘기준’으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23년 국회에서는 ‘종업원 500명, 매출액 2,000억 원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공급망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21대 국회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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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김지윤 jiyoon@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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