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크루즈 시대, 조연에서 주연으로”...제주 강정 준모항 첫 출항

박성우 기자 2025. 5. 13. 09:2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행취재] 기항지 넘어 출발지로 도약, 크루즈관광 전환점 맞이
韓관광객 배려 돋보인 맞춤형 상품...지역경제 신성장 동력 기대
중국 상해 현지에서 마련된 한국인관광객 첫 입항 축하 행사. ⓒ제주의소리

크루즈는 미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으로 꼽힌다. 관광, 숙박, 쇼핑 등의 기능을 바다 위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산업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되고 있다. 특히 한 척의 크루즈가 운항하기 위해 투입돼야 하는 인력이나 식·기자재를 비롯해 수 천여명의 관광객이 드나듦은 지역경제 파급 효과를 실감케 하고 있다.

지난 1일 13만5000톤급 초대형 크루즈선 아도라 매직시티 호가 제주 강정항을 출발했다. 이 항차는 단순한 운항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제주가 단순 '기항지'에서 '준모항'으로 전환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제주의소리]는 강정 준모항 첫 출항의 여정을 담았다.

그동안 제주에는 수백 차례의 크루즈가 정박해 왔지만, 그저 잠시 머무는 경유지에 불과했다. 새롭게 시작된 '준모항(準母港)'이란 모항의 요건을 갖추진 못했지만, 여행을 시작하는 승객의 승·하선이 이뤄지는 거점 항구를 뜻한다. 중국 상해를 출발하는 크루즈가 일정 비율의 객실을 비워놓고, 빈 객실만큼 서귀포 강정항에서 새로운 손님을 태우는 방식이다.

크루즈 산업에 있어 준모항은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승객의 탑승과 하선이 이뤄지며 출입국, 숙박, 교통, 물류 등 지역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극대화된다.
제주 첫 준모항 시대를 연 13만5000톤급 초대형 크루즈선 '아도라 매직시티'호. ⓒ제주의소리
제주 첫 준모항 시대를 연 13만5000톤급 초대형 크루즈선 '아도라 매직시티'호 내부 시설. ⓒ제주의소리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세계적으로 크루즈 관광 수요가 급증했지만, 우리나라 관광객이 크루즈를 즐기기 위해선 대부분 해외 항구까지 항공편으로 이동해야 했다. '플라이 앤 크루즈(Fly&Cruise)'라 불리는 관광 형태는 부담을 가중시키기 마련이었다. 제주가 준모항으로서의 기능을 갖추면서 크루즈 여행을 즐기려는 제주도민의 편의가 한층 강화됨은 물론, 타 지역에 거주하는 내국인 관광객의 접근성도 원활해질 수 있다.

출발 당일, 하늘은 변덕스러웠다. 갑작스런 돌풍과 폭우가 항만을 덮쳤고, 일부 탑승객은 배멀미를 걱정하기도 했다. 파고 속에서 온전한 몸상태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불안이었지만 곧 모든 걱정은 기우로 바뀌었다.

높이 13층 건물에 해당하는 크루즈선은 철제 성채처럼 고요했다. 부드러운 진동과 함께 선박은 천천히 항구를 벗어났고, 대부분의 승객은 출항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배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발코니 밖으로는 선박의 속도감과 함께 부서지는 파도가 청량감을 더했다. 갑판에 나서자 제주 바다의 푸른 곡선이 눈에 들어왔고, 발 밑으로는 거대한 엔진이 만들어내는 추진력이 느껴졌다.

크루즈는 단지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크루즈 여행은 배 안에서 지내는 시간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숙식은 물론 다양한 즐길거리를 만나볼 수 있었다. 면세점과 같은 쇼핑 시설은 물론, 사우나, 스파, 야외수영장, 헬스장, 노래연습장, 농구장, 러닝트랙, 어린이놀이터 등의 시설이 곳곳에 마련돼 있었다. 
제주 첫 준모항 시대를 연 13만5000톤급 초대형 크루즈선 '아도라 매직시티'호에서 펼쳐진 공연. ⓒ제주의소리
제주 첫 준모항 시대를 연 13만5000톤급 초대형 크루즈선 '아도라 매직시티'호 객실 전경. ⓒ제주의소리
'아도라 매직시티' 호 선사가 제공한 환영 행사. 선내 업무를 총괄하는 시니어 선원들이 한데 모여 환영 인사를 건네왔다. ⓒ제주의소리

늦은 오후에는 매일 구성이 바뀌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테너쇼, 뮤지컬, 마술쇼 등 5박 6일간의 일정 동안 펼쳐진 퍼포먼스는 겹치는 법이 없었다. 일행 중 누군가는 "공연을 즐기는 것 만으로도 본전은 찾은 것 같다"는 호평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첫 항해를 맞이한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한국 관광객 일행이 배에 탑승함과 동시에 다채로운 간식거리와 웰컴 드링크가 제공됐다. 상해에서 탑승하는 VIP 고객들에게만 제공된 서비스였다는 귀띔이 전해졌다. 항해, 객실, F&B 등 각 분야를 총괄하는 시니어 선원들이 직접 한 자리에 모여 환영 인사를 건네왔다. 이 또한 일반적이지 않은 깜짝 행사였다.

선사 측은 혹여 중국인 관광객과의 마찰이 우려될 새라 식사 공간 역시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별도로 마련해뒀다. 푸른 바다가 탁 트인 시야의 테이블을 내어주고, 끼니마다 흰쌀밥과 김치를 차려준 것은 작지만 세심한 배려였다. 기존 메뉴에 더해 김치전이나 칼칼한 오징어국 등 한국인 특화 메뉴를 추가한 것 역시 돋보였다.

기항지에 도착해서는 최우선적으로 하선하는 혜택을 제공했다. 선사 측은 앞으로도 한국인 관광객에 한해 이 같은 서비스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해 왔다.

무엇보다 승객들이 한 목소리로 만족감을 드러낸 것은 크루들의 '친절함'이었다. 언어의 벽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선원들은 여유롭고 나긋한 미소로 무장돼 있었다.

크루즈의 가장 큰 메리트는 다양한 기항지에 있다. 강정항을 출항한 선박은 5박 6일간 일본 후쿠오카, 가고시마, 중국 상해를 거쳐 다시 제주로 돌아오는 일정을 소화했다. 5일 남짓한 시간 동안 한·중·일 세 나라의 문화를 가장 편하게 만나볼 수 있는 셈이다. 

이 노선은 아시아권에서 가장 각광받는 코스로 꼽힌다. 실제 크루즈 승객 대부분은 중화권 관광객이면서도, 동남아, 아랍권 등지의 손님이 어우러져 있었다.
제주 첫 준모항 시대를 연 13만5000톤급 초대형 크루즈선 '아도라 매직시티'호 내부 시설. ⓒ제주의소리
제주 첫 준모항 시대를 연 13만5000톤급 초대형 크루즈선 '아도라 매직시티'호. ⓒ제주의소리
제주 첫 준모항 시대를 연 13만5000톤급 초대형 크루즈선 '아도라 매직시티'호 내부 시설. ⓒ제주의소리

크루즈가 아닌 일반적인 여행이었다면 항공기에 탑승하기 위한 수고와 비행시간, 숙소 이동시간이 고려돼야 했을 일정이다. 특히 숙소를 옮겨다니기 위해 부지런히 짐을 싸매고 풀어야 하는 수고를 생략할수 있다는 점도 크루즈가 지닌 고유의 매력이다. 선실에 한 번 짐을 풀어놓으면 5일간 최적의 룸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아들과 아버지까지 3대가 함께 여행하며 부러움을 산 이진구(58)씨는 "가족들끼리 이런 시간을 가질 기회가 없었는데, 잘 선택한 것 같다"며 "여행이 여유롭고, 답답하지 않았고, 음식도 상당히 괜찮았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너무 친절해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고 만족했다. 이씨의 부친인 이길래(84)씨도 "비행기 여행보다 훨씬 편하고 가격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어쩔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다 편하고 친절하게 해줘 이 이상 좋을게 있을까 싶다"고 칭찬했다.

동료 작가들과 함께 참여한 이현령(53)씨는 "짧은 시간 동안 각 나라의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어서 인상이 깊었다"며 "잠자는 곳이 바뀌지 않고, 짐을 싸서 옮겨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크루즈의 큰 장점인 것 같다. 특히 제주에서 출발해 제주로 돌아온다는 점이 매력적인 여행"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다. 크루즈 여행이 지닌 고유의 특성 때문이지만, 공해상에 접어들 시 통신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어려움은 피할 길이 없었다. 선사 측에서 공해상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 데이터를 판매했지만, 가격이 높게 책정돼 있어 쉽게 손이 가진 않았다.

또 중국 발 크루즈다보니 선내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언어는 중국어와 영어였다. TV 채널도 중화권 프로그램이 채워져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내에서의 소통은 해외여행을 경험해 본 정도의 언어능력과 기지라면 큰 어려움은 없겠으나, 편하게 자국어로 소통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보고 있노라면 일순 '대한민국 국적 크루즈'의 꿈을 떠올리기도 했다.

부부가 함께 참여한 양형모·최은옥씨는 "배가 웅장하고, 내부에도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어서 참 좋았는데, 아무래도 중국인 승객보다 한국인 승객이 소수인 점 때문에 언어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다"며 "그래도 여러 부분에서 편의를 제공해준 점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이 든다. 충분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여행인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선사 역시 이러한 고충에 공감을 표하며 개선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아직 첫 출항에 불과한 만큼 앞으로 한국인 관광객의 다양한 의견을 충실히 수용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13만5000톤급 초대형 크루즈 '아도라 매직시티' 호. ⓒ제주의소리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 항구에 정박한 '아도라 매직시티' 호. ⓒ제주의소리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 항구에 정박한 '아도라 매직시티' 호. ⓒ제주의소리

선사 측과의 직접적인 교감으로 '강정 준모항'의 산파 역할을 한 김의근 제주관광학회 회장은 "준모항 출항을 통해 제주가 모항으로 가는 디딤돌 역할과 경험을 축적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라며 "제주는 기항지로서는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크루즈가 방문하는 곳이다. 앞으로 강정항과 제주 신항만을 통해 크루즈 베이스포트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제주는 이미 1000만 내국인 관광객과 300만 외국인 관광객이 출입하는 국제적 관광지"라며 "크루즈의 관문으로, 단순 육지부 내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외국의 관광객들이 크루즈를 타기 위해 제주로 찾아오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크루즈 수요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항로 노선도 개발되며 더 좋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제주의소리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