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국민의힘 김문수후보 부인은 전남출신...호남 인연과 5.18입장은?

국민의힘 김문수(73) 대선 후보는 양단형 인물이다. 보수에서 진보로, 노동운동가에서 노동부장관으로, 경상도 남편에 전라도 부인에 이르기 까지 양 끝단의 스펙트럼이 광폭이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입장도 본인이 속했던 시기와 진영에 따라 달라졌다.
# 김 후보와 호남의 인연은
김문수 후보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몰두했으며, 이후 서울, 인천을 기반으로 현장 노동운동을 전개했다. 그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 주위에는 호남 동지들이 상당했다. 이 때 만났던 동지가 부인 설난영 여사다.
설 여사는 전남 고흥 태생으로 순천여고를 졸업했다. 여고 졸업 후 동생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대입 재수를 하던 중 1977년 구로공단 세진전자에 입사했다. 세진전자 노조 여성부장, 노조 위원장을 거치면서 당찬 여성 노동운동가로 성장했다.
이 무렵 구로공단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이던 김 후보를 만났다. 김 후보가 시국사건으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 도망 다닐 때 설 위원장이 자신의 자취방에 숨겨주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들은 1981년 9월26일 서울 관악구 봉천중앙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른다. 경찰은 이들의 결혼식이 노동시위를 위한 위장 결혼으로 보고, 전투경찰 버스 4대를 출동시키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녀는 웨딩드레스 대신에 원피스에 면사포만 쓰고 혼례를 올렸다. 설씨는 남편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나설 즈음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호남의 절절한 아픔을 알고 있다"며 동서화합, 좌우대립 극복을 주문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박관현 열사와 간접적 인연도 있다. 김 후보는 1986년 5월 3일 직선제 개헌투쟁(인천 5.3투쟁)을 하다 수감돼 목포 교도소를 거쳐 1988년 3월 광주교도소에 갇힌다.
당시 그가 수감됐던 독방은 1982년 박관현 열사가 50일간 단식투쟁을 하다 숨졌던 곳으로, 본인도 그곳에서 10여개 월을 지냈다. 이 인연으로 김 후보는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 시절에 5·18묘지를 매년 찾았다.
지난 2009년 참배 때는 박 열사의 누나인 박행순씨를 만나 "수감 당시 교도관들로부터 박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30살의 꽃다운 나이에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다 숨진 박관현을 잊을 수 없다"는 위로의 말을 전한 바 있다.
2011년 경기지사 재임시에는 직접 광주교도소 방문해 자신이 갇혔던 박 열사 독방을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언론기사를 보면, 광주 교도관들은 '교도소에 있는 책은 거의 다 봤을 정도로 학구열이 불탄 사람, 운동시간에 가장 앞장서서 땀흘린 수감자, 교도소 원예반에서 꽃을 다듬던 청년' 등으로 기억했다.
80년대 인천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광주 A씨는 "김문수 선배는 노동운동의 선구자였으며, 그가 전향 하지 않았다면 큰 족적을 남겼을 것"이라면서 "노동현장에서 투쟁단체를 만들 때 꼭 직함 같은 것을 요구해 난감한 경우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김 후보가 정치권에 들어갈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정당에도 노크를 했지만, 당시 김 대통령 주변 인사들과 의견이 맞지 않았다"고 전했다.

# 김 후보의 우파 입당과 달라진 5·18
김문수 후보와 광주의 인연은 그가 1994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파열음이 난다.
김 후보는 지난 2006년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5·18은 살아남은 자가 슬픔을 느끼고 부끄러워하는 미완의 역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극우세력과 연대하면서 전두환씨에 대한 두둔성 발언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김 후보가 "전두환의 5.18 책임은 있지만 나라를 안정시킨 면도 있다"고 말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5·18 진압이 나라안정이었다는 논리는 신군부의 주장과 동일하다. 이는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보는 시각으로 폭도-과격시위-진압-나라 안정이라는 논리적 궤를 이룬다.
김후보는 지난 2019년 한 보수 매체와 인터뷰에서 5·18 추모관 석판에 김문수 이름이 새겨진 것에 대해 질문을 받고 "나는 5·18 유공자가 아니다. 추모관 석판 이름은 동명이인"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5·18 당시 삼청교육대 수배를 피해 도망 중이어서 5·18과 직접 관련은 없었다는 것.

김 후보는 특히 5·18에 극우적 혐오 발언을 늘어놓는 전광훈 목사를 치켜세운다. 전 목사는 "5·18은 북한군과 전문적 선동꾼에 의해 발생한 폭동"이라고 주장한다. 김 후보는 지난 4월 예비경선 토론회에서 전 목사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목사"라고 평가했다.
호남지역과 개인적, 역사적 인연을 가진 김 후보가 오는 5·18 45주년 기념식에 참석, 5·18민주화운동의 헌법전문 명기를 약속할 지 주목된다.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