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공약’ 프롤로그 뒤 본편을 기다리며 [뉴스룸에서]

김경락 기자 2025. 5. 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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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거리에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김경락 | 경제산업부장

“단기 경기 관리는 하지 않겠다.”

2017년 10월 한겨레와 인터뷰한 당시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부경대 교수)이 한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인 저성장 늪에 허우적대며 시시때때로 단기 부양책을 쏟아낸 전임 정부의 경제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는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 컨트롤타워의 다짐이었다. 수출 주도에서 내수 중심으로 ‘경제 구조’를 바꿔나가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한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두시간여에 걸친 인터뷰를 하면서 홍 수석의 이 말이 호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당해 보이긴 한데 지켜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모든 정부가 ‘구조 개혁’ ‘질적 성장’ ‘공정 성장’을 강조했으나 단기 경기 지표의 출렁임에 쓸려 들어갔다. 매달 혹은 분기별로 나오는 경기 지표는 긴 시계에선 작은 소음에 불과하나 여론을 움직이고 정책 추진 동력을 갉아먹으며 급기야 대통령의 불안을 자극했다. 아니나 다를까, 홍 수석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의 경제 사령탑도 ‘주간’ 집값 동향과 ‘분기별’ 가계 동향에 일희일비했으며, 통계 조작 시비에 휘말렸다.

새 정권 출범이 임박한 오늘날 단기 경기 관리의 중요성은 다시금 커지고 있다. 1분기 역성장 충격은 단기 지표에 대한 국민의 민감도를 높였다. 무역 질서 대전환을 예고한 ‘관세 전쟁’ 탓에 기업과 가계 등 경제 주체는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 속에 앞날을 가늠하지 못한다. 미국과의 통상 협상은 위태로운 칼날 위에 놓여 있다. 모두 단기 지표를 크게 흔들 수 있는 사안들이다. 새 정부가 출범 초기 내놓는 청사진은 ‘3분기’ 성장률이 발표되는 오는 10월 잽을 맞으며 흔들리고 2025년 연간 성장률이 발표될 내년 초엔 강펀치를 맞을 수 있다. 경기 관리는 그래서 중요하다.

경기 관리를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 매몰되어서도 안 된다. ‘정책 정치학’이란 관점에서 볼 때 단기 경기의 등락에 휘둘리는 대통령은 으레 경제 관료를 찾는다. 관료를 누구보다 경원시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금융위기로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자 정권 밖으로 내몰았던 경제 관료를 잇달아 등용했다. 문재인 정부도 집권 초기엔 개혁적 학자를 중용했으나 점차 관료에게 손을 내밀었다. 특히 어느 정권이든 집권 중후반기로 갈수록 경제 관료 의존도가 커졌다. 그 이유는 경제 관료는 단기 경기 관리 기술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가려운 부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관료에게 가까이 갈수록 개혁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1.5%로 추정한 결과를 내놨다. 대선이 임박한 이때 국책연구원의 맏형 격인 이곳이 잠재성장률 추정값을 내놓은 이유는 쉽게 짐작된다. 역대 정부가 단기 경기 관리에만 집착하며 구조 개혁을 뒷전으로 밀어놓은 결과가 ‘추세적인’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을 테다. 잠재성장률은 한두해 노력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대통령 임기 내 지속적으로 꾸준히 추진해야 상승할 수 있다.

구조 개혁은 재정(세금과 예산)과 제도(입법), 정책금융 등 정부가 쥐고 있는 세가지 열쇠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때 성공할 수 있다. 개혁에는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어서 정부의 섬세한 정치력도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구조 개혁이 실패한 건 재정 전략이 없었고 섬세한 정치력은커녕 우격다짐식이었기 때문이다.

21대 대선이 본격화했다. 각 당 후보들은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10대 공약을 내놓고 기자들을 대상으로 공약 설명회도 열었다. 그간 여러 공약이 현실 타당성과 실효성을 따져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목차 수준으로만 제시된 터라 10대 공약이 담긴 문서파일을 열 때 기대감이 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단기 경기 관리와 구조 개혁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꿈을 가진 대선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내란이 새 지도자의 시간과 혼을 빼놓았기 때문이리라. 앞으로 20여일 남은 대선 기간 각 당의 후보들은 좀 더 정성껏 공약을 내놓고 국민들에게 설명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공약 이행을 위한) 재정 추계는 집권하게 되면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겠다”(진성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는 반칙이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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