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고요한 몸짓… 끊임없이 뛰는 생의 맥박을 느끼다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작가와 나무 사이 오간 무언의 대화
치유·회복의 순간 비밀스럽게 다가와
그림 속 이름 모를 나무와 눈 맞추면
바라볼수록 색채 등 향 더 또렷해져
나무를 영적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
북미 원주민의 자연관 떠오르기도
유난히 길고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녹음이 온 대지를 뒤덮은 5월이 되었다.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기후 위기의 시대. 그래서인지 계절의 변화가 유독 급작스럽게 느껴진다. 도무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계절도, 절기가 다가오면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빼꼼 내밀고 새로운 풍경을 찬란하게 펼쳐낸다. 자연은 틀리는 법 없이 언제나 완벽하다.

호크마 김은 나무의 고요한 몸짓과 흐름에 감각을 기울이며 생명과 존재의 본질을 사유한다.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뉴질랜드의 기울어진 나무들, 길을 걷다 마주친 거대한 버드나무의 흔들림,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제주의 이름 모를 나무, ‘온몸으로 별을 쏟아내는’ 단풍나무 등 세상의 모든 나무 속에서 그는 세상을 본다.
나무와의 여정은 짙은 고민과 아픔을 품고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한 나무 앞에서 시작됐다. “나는 그냥 늘 여기에 있어.” 어떤 조건도, 생각도 덧붙이지 않고 생명으로 존재하는 나무의 삶의 방식이 갈라진 마음의 틈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서로에게 별종일지도 모를 나무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다른 무엇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명을 지닌 존재들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하기에 존재하는 그 자체가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나무는 말없이 전했다.
◆치유의 숲
6월 15일까지 금성문화재단 KCS 서울에서 진행되는 호크마 김의 개인전 ‘Eternal Spring, 온새미로: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는 작가와 나무 사이에서 오고 간 무언(無言)의 대화를 들려준다. 평면 13점과 영상 1점으로 구성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전시지만, 나무를 통해 세상의 본질과 영원에 가닿고자 하는 작가의 여정에서 마주친 작은 오두막처럼 아늑하고 비밀스럽게 다가온다.

그림자 같은 실루엣과 색면으로 표현된 나무의 정령들은 작가가 교감했을 나무의 실체를 즉각적으로 마주하게 한다. 여전히 나무의 옷을 입고 있지만, 덜어낼 것들을 덜어내서인지 어딘지 더 유연하고 자유로운 모습이다. 구겨진 장지로 표현된 나무의 피부는 지나온 생의 흔적과 무수한 상처와 덧남, 치유를 겪으며 단단해진 나무의 시간을 눈으로 더듬어가도록 돕는다.
◆이름 없는 나무들의 초상
![‘생[生]으로 차오른 록[綠]’ (130.3x193.9cm)](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13/segye/20250513060258488dzzf.jpg)
나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호크마 김은 적막으로 가득한 겨울 풍경에서도 생의 온기를 느낀다. 겨울의 끝자락, 무채색의 공기 속에 홀로 서 있는 앙상한 나무도 사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숨 쉬고 있던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맨몸’). 마침내 새싹이 움트고 잎이 돋기 시작하면, 나무는 빛의 방향으로 고개를 들고 찬란한 생의 리듬 속에서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겨울과 봄 사이의 왈츠’).
◆나무의 가르침
호크마 김의 나무들을 보고 가로수들이 줄지은 찬란한 5월의 거리를 걷는다. 그의 그림 앞에 머문 시간만큼, 이름 모를 나무에 온 마음을 열고 눈을 맞춘다. 바라볼수록 그 흔들림과 색채가, 뿜어내는 향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나무와의 만남은 내면의 대화로 번져간다.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나무들은 어떠한 계몽적 가르침을 주입하지 않는다. 대신, 내 안의 나를 마주하도록 부드럽게 이끌어준다. 어쩌면 호크마 김이 나무와 나눈 대화는 나무라는 거울을 통해 가능해진 자신과의 조용한 마주침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자라고 있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한 그루의 나무일 수도 있다. 나무의 가르침. 그것은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던 씨앗이 다시 대지 위로 솟아나게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생의 힘보다 강한 것은 없다.
신리사·미술사, 학고재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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