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신약 허가 4년 뒤 건보 적용... 한국만 오래된 약으로 치료" [혁신신약 정책 포럼]

이재명 2025. 5. 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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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만에 난소암 없애는 혁신신약
미국선 쓰지만 국내엔 '도입 추진'
표준치료 변화 주기 빨라지는데
근본 해법 도출 더는 미룰 수 없어
12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한국일보 주최로 열린 '혁신신약 시대, 치료 기회 확대를 위한 정책 방향 포럼'에 참석한 김병기 성균관대 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과거엔 불가능했던 치료를 가능케 하는 혁신신약이 제약 산업과 의료 현장을 이끌고 있다. 문제는 신약 제도가 개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신약의 가치를 평가해 값을 매기고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과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환자들은 물론, 의료계와 제약업계도 근본 해법 도출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일보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책적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혁신신약 시대, 치료 기회 확대를 위한 정책 방향'을 주제로 개최된 이날 포럼에선 환자단체와 국내외 제약업계, 보건당국 관계자들이 함께 열띤 토론을 벌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현장에 참석해 혁신신약 접근성을 높이는 데 힘을 보탤 것을 약속했다.

축사에 나선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혁신신약은 기술 발전이 가져온 성과이자 환자들에게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실제 사용되기까지 복잡하고 까다롭다"며 "기존 약가 제도는 비용 대비 효과라는 수치에 중심을 두고 있어 사회적 가치, 임상 현장과 환자의 요구 등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한국일보 주최로 열린 '혁신신약 시대, 치료 기회 확대를 위한 정책 방향 포럼'에 참석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이어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환자 입장에서 다른 대안이 없는 혁신신약은 약이라기보다 생명줄"이라며 "새로운 성격을 가진 혁신신약은 새로운 약가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과 환자 치료 접근성 확대라는 두 가지 목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처럼 느려서는 안 된다"며 "(국회에서) 반드시 제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암·희소질환 환자를 지원하는 별도 기금 신설을 위한 법안을 발의한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 역시 "환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공감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한국일보 주최로 열린 '혁신신약 시대, 치료 기회 확대를 위한 정책 방향 포럼'에 참석한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12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한국일보 주최로 열린 '혁신신약 시대, 치료 기회 확대를 위한 정책 방향 포럼'에 참석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의료 현장에선 혁신신약의 도입이나 건강보험 적용이 늦어지면서 아직도 많은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김병기 성균관대 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교수는 부인암 치료 현장의 어려움을 전했다. 그가 소개한 사례는 51세 백금 저항성 난소암 환자다. 이 병은 그간 적절한 약이 없어 치료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이 환자는 최근 개발된 혁신신약 '엘라히어'의 임상시험에 참여한 결과 두 달 만에 암의 흔적이 거의 없어지고 상당 기간 무병 상태를 유지했다. 엘라히어는 미국에선 2022년부터 신속승인 제도로 도입돼 쓰여왔고, 지난해 3월엔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도 받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도입 추진 중'이다. 김 교수는 "국내 도입 속도가 앞당겨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김 교수는 의료와 제약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만큼 혁신신약 도입을 가속할 수 있도록 제도적 구조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초고가 신약의 등장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응할 약가 책정 제도를 빨리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의학계에선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원화 현상'이 벌어지는 나라라고도 그는 지적했다. "난소암,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 같은 부인암은 국제 표준치료 지침이 있는데, 한국에선 건강보험 환자냐, 실비보험 환자냐에 따라 단계별로 가능한 지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자들이 처음엔 더 좋은 약을 비싸더라도 투여받지만, 보험이 안 되면 몇 차례 치료를 거치면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나 치료를 포기하곤 한다"며 그는 안타까워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 혁신신약은 허가 후 평균 약 4년이 지나야 건보 적용이 된다. 과거엔 표준치료법이 10년마다 달라졌지만, 앞으론 3, 4년으로 짧아질 전망이다. 이대로라면 "한국 환자들만 치료 효과가 적은 오래된 약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고 김 교수는 우려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는 신약 도입을 위해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는 경제성 평가를 더 유연하게 하거나, 평가 생략 대상을 확대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 확대와 민간보험 적극 활용 방안도 논의하자고 했다. "혁신적인 신약은 일단 도입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재평가하는 식으로 제도 혁신이 필요하다"며 "임상 현장의 전문가들 의견을 적극 반영해주길 바란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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