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석 못 가리는 ‘기술 특례 상장’… 기업 76% 공모가 밑돌아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만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할 수 있도록 만든 ‘기술 특례 상장’ 제도가 부실 우려 기업 상장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레인보우로보틱스처럼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의 20배를 넘는 ‘대박’ 사례도 있지만, 2023년 ‘뻥튀기 상장’ 논란을 빚은 파두를 비롯해 공모가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종목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코스닥 시장 상장을 위해서는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등 재무 성과가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걸 입증해야 하고, 외부 감사인의 감사 의견이 적정일 것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기술 특례 상장은 기술력과 성장성을 다른 방법으로 입증하면 이 같은 요건이 완화된다. 기술력은 있으나 아직 실적이 부족한 기업들에 주식시장 진입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마련됐다.
2005년 도입 이후 초기 10년간은 단 15개 기업만이 이 제도를 활용했을 만큼 문턱이 높았지만, 2017년부터 기술성 평가 없이도 증권사가 성장성을 기준으로 추천하는 ‘성장성 특례’ 등이 추가되면서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이에 따라 2018년 21곳을 시작으로 기술 특례 상장이 꾸준히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42곳이 이 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기술 특례 상장 76% 공모가 하회
하지만 이렇게 특례 상장을 해서 자금을 조달해 놓고는 많은 기업이 이후 실적 개선에는 소홀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사례가 속출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술 특례로 상장한 기업 중 스팩 합병 및 상장 폐지 종목 등을 제외한 152개 기업 가운데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웃도는 곳은 36곳(23.7%)에 불과하다. 나머지 116개(76.3%)는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더바이오메드(-96.1%), 에스씨엠생명과학(-92.7%), 젠큐릭스(-91.0%) 등은 주가가 공모가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술 특례 상장 기업들의 공모가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는 것이 문제”라며 “공모가를 낮추면 투자자 보호에는 도움이 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조달 자금이 줄어들어 제도 취지가 훼손되는 딜레마가 생긴다”고 했다.
◇매출 요건 채우려 전자상거래 진출도
기술 특례 상장 기업들의 주가 부진 배경에는 상장 이후에도 재무 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있다. 최근 5년간 기술 특례로 상장한 기업 중 작년에 신규 상장되거나 사업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13사를 제외한 139사 중 108곳(77.7%)이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닥 전체 기업의 적자 비율(40.97%)보다 36%포인트 넘게 높은 수준이다. 평균 부채 비율도 75.22%로, 코스닥 평균(57.11%)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높다.
이로 인해 상장 폐지 위기에 내몰리기도 한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매출액이 30억원 미만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2년 연속 기준 미달이면 상장 폐지 사유가 된다. 기술 특례 상장 기업의 경우 상장 후 5년간 매출 요건이 유예되는데, 2019년 10월~2020년 9월 사이 상장한 기업들은 올해부터 매출액 30억원을 넘겨야 한다. 그러나 이 기간 상장한 기업 22곳 중 10곳이 작년 매출액 30억원을 채우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본업 대신 생존을 위한 매출 확보에 나선 기업들도 등장했다. 면역 항암 물질을 개발하는 메드팩토는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전자상거래업과 통신판매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는 정관 변경을 의결했다. 업계에선 메드팩토가 신약 개발로는 단기간에 매출을 내기 어려운 만큼,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려는 방편으로 다른 사업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메드팩토는 2019년 12월 상장 이후 현재까지 매출이 ‘0원’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진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상장할 수 있도록 기술 평가 기관이나 상장 주관사가 더 엄격하게 심사해 상장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고르고 고른 기업들이 일단 상장했다고 하더라도 기준에 못 미치는 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키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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