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문화·예술] 강원만의 문화생태계 조성을 위한 제언

화천에서 토마토 농사를 지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길종갑 작가. 검게 탄 그의 얼굴은 농부의 건강한 모습 그 자체이면서도 화가로서의 명성이 자자한 지역의 명사이다. 마을회관에 전시장을 손수 꾸미고, 자신의 그림들로 전시를 열어 몇 안 되지만 마을 주민들과 함께 향유하는 문화를 일구고 있다. 전통적 미의식과 화법을 개성적으로 수용하여 오늘의 현실을 화폭에 담아내지만, 제도권 화단에서는 볼 수 없는 에너지가 주목된다.
삼척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최원희 작가는 12월에서 3월까지가 가장 바쁘다. 딸기철이 끝난 5월이라 하여 한가할 수가 없다. 그는 농사 못지않게 여류화가로서 그림 그리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데, 호응에 힘입어 올해 7월에도 전시가 예정돼 있다. 틈틈이 재배한 채소 등을 팔러 시장에 오가면서 마주한 인물들의 순간적인 모습과 인상을 재치있게 표현하고 있는 그의 그림들은 신선하면서도 인간애가 넘친다. 특히 투박하면서도 담백하고, 생기 넘치는 사생 자체가 요즘의 미술판에서는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 외에도 강원도에는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창작에도 투신하고 있는 열혈 아티스트들이 많다. 어찌 보면 강원도만의 독특한 문화생태계의 일면이자 현상이다.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지역문화 정책과 제도의 실험이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 방향성이 인구와 인프라, 시장, 네트워크 등을 잘 갖춘 서울을 롤모델로 하다 보니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곤 했다. 물론 문화환경이 양호한 서울이라 하여 전업작가들이 창작에만 전념하며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도시라는 것이 일상생활과 창작에 효율과 편의를 얻기에 양호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만큼 경쟁은 더 치열한 상태다.
작품을 팔아 생활을 온전히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작가는 서울에서도 그리 많지는 않다. 서울이나 수도권, 대도시 지역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겸업은 필수일지도 모른다. 단지 학교나 아카데미 등의 일터가 비교적 자신의 전공과 연관되고, 수입이나 지위가 안정될 뿐 아니라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효율성 등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지역 특유의 문화생태계 조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창작 생태계만이 아니라, 행정 및 향유면에서도 전향적인 시각이 요구된다. 미술관, 갤러리 등의 화이트큐브라는 고답적 공간과 시스템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할 필요가 대두된다.
필자의 요지는 단순히 겸업을 장려하자는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다양한 겸업 환경에서 어떤 시너지와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하고 발굴해 내기를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농사짓고 그림 그리기에도 바쁜 그들에게 어떤 것을 새롭게 해보라고 권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지역문화정책 면에서 연구과제를 설정, 몇 가지 모델들의 발굴 및 도입을 제안하고 싶다. 현재 도나 시 문화재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작가지원 사업들이 대부분 제도권 전시장 전시에만 지원하는 방향으로만 한정되어 있다.
강원도가 직접 지원하고 있는 ‘강원갤러리’ 같은 경우 서울에서 전시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지원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전향적인 정책들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강원 지역의 도처에서 일과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자원들을 개발, 이를 서울을 넘어 글로벌 네트워크에 소개하고 세계 시장에 진출시키는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폭싹 속았수다’와 같은 토속적인 배경과 서사가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는 일련의 사례를 참고해 본다. 강원만의 독자적인 문화생태계 조성이라는 비전을 공유한 사람들이 도내에 많다. 이들의 비전을 경청하는 자리를 먼저 가져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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