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81] 작품은 없고 사람만 있는 전시회

201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티노 세갈(Tino Sehgal·1976~)의 개인전이 열렸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텅 빈 원형 공간을 중심으로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걸으며 작품을 감상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세갈의 전시 기간 중 미술관은 작품이랄 것이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대신 관객을 맞이한 건 자기소개를 하며 다가와 ‘진보란 무엇인가’를 묻는 어린이였다. 어린이와 대화를 나누며 경사로를 걸어 올라가면 청소년·성인·노인이 차례로 자연스레 나타나 같은 대화를 이어간다. 최상층에 이르면 노인은 ‘여기까지가 이 진보의 마지막’이라는 말과 함께 관객에게서 떠난다. 서로 다른 세대를 순서대로 만난 관객은 성장하고 흔들리고 완성됐다 쇠락하는 인간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진보’가 무엇인지도 와닿았으리라.
세갈의 작품은 이처럼 설정된 상황 안에서 사전에 훈련받은 연기자들이 관객으로 하여금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대화·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 세갈은 이미 온갖 물건이 흘러넘치는 세상에 ‘미술’이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물건을 더하는 것보다는, 낯선 사람과의 일시적인 만남에서 얻을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미술의 의미이자 가치라고 믿는다. 환경 문제에도 진심인 세갈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장거리 여행은 꺼리고, 작품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지 않으며, 종이를 써서 카탈로그를 출판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텅 빈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사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세갈은 물질 없이도 뭔가를 생산하는 실험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마주한 관계와 그 순간에만 존재했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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