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혁의 슬기로운 문학생활] [6] “저 여자는 여자입니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활동한 영국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는 무대에 여자가 올라갈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일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권고 사항이 아니라 처벌할 수 있는 엄연한 법이었다. 여성의 무대 출연은 사회적으로 부도덕하거나 불경하다고 여겼고, 이는 당시 종교·도덕적으로 보수적인 영국 사회의 가치관과 극단적 성 역할 인식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연극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 역할은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이나 젊은 남성 배우가 맡았다.
동심 파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은 남자였다. ‘리어왕’의 세 딸도, ‘십이야’의 바이올라도, ‘햄릿’의 오필리아도.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는 이 부분을 코믹하게 재현한다. 셰익스피어와 시를 흠모하는 젊은 여인 바이올라가 사랑하는 극작가의 연극에 오르기 위해 남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련의 우여곡절 끝에 바이올라는 결국 남장 배우의 가면을 벗고 본모습으로 여성을 연기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누군가의 신고로 극장에 출동한 검열관은 무대 위의 바이올라를 지목하며 그의 죄목을 큰 소리로 밝힌다. “저 여자는 여자입니다!”
수백 년이 지나 새로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영화 속 인물과 상황이 보여주는 그 당시 우스꽝스러운 현실에 마음 편히 웃는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있었다니.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참 이상하지. 하지만 다시 수백 년이 지나 우리의 아주 먼 후손이 지금의 우리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여자는 무대에 올라갈 수 없다’와 비슷한 법을 지금 우리도 추상처럼 지키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 다른 나라, 다른 시대를 손가락질하기는 늘 너무 쉽다. 어느 시대에나 가장 어렵고 불편한 것은 우리 자신의 맨얼굴을 비춰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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