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만든 12·3의 밤

이성각 2025. 5. 1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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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주] [앵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 계엄을 선포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또 다른 역사를 쓴 12.3 계엄 사태는 다섯 달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계엄 선포 그날 밤의 충격과 공포는 또렷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44년 전 광주를 떠올렸고, 특히 광주와 전남 사람들은 5·18의 비극이 재연되는 건 아닌지 몸서리쳤습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발동된 비상계엄 이후 45년 만에 등장한 계엄은 1980년 5·18 당시의 공포와 저항, 그리고 희생을 소환했습니다.

KBS 광주는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12·3 비상계엄의 위기 속에서 '80년 5월, 광주'가 어떤 역할을 해냈는지 연속 기획으로 보도합니다.

먼저, 오늘은 5·18과 12·3 비상계엄이 어떻게 닮아있는지 비교해봤습니다.

이성각 기자입니다.

[리포트]

비상계엄 선포 20여 분 만에 국회 출입이 통제됩니다.

경찰은 국회 외곽을 둘러싸고, 무장한 계엄군은 건물 유리창을 깨며 내부로 진입합니다.

44년 전 총을 든 군인들이 국회 앞에서 의원들을 밀쳐내는 장면과 닮아있습니다.

형식적인 국무회의와 정치 활동 금지 등 포고령 내용도 판박이입니다.

["비상계엄 확대와 함께 신군부는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시켰으며…."]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를 질주하며 시민들을 위협하던 공수부대의 장갑차와 군용 트럭의 행렬, 12·3 비상계엄의 밤에도 서울 도심에 장갑차가 등장했습니다.

무장한 계엄군을 국회로 실어 나르던 헬기의 굉음은 그 자체로 공포였습니다.

특히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던 광주 시민들은 80년 오월의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쳤습니다.

[정수만/5·18 전 유족회장 : "헬기에 대한 트라우마는 정말로 광주 시민은 거의 다 가지고 있을 거예요. (1980년) 5월 21일날 헬기에서 총을 쏘는 것을 봤잖아요. 그리고 제가 도망을 갔잖아요."]

44년 전 5월 18일과 19일,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을 지켜본 시민들은 총을 든 계엄군을 향해 거칠게 항의하고, 이내 금남로는 분노한 시민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12월3일 밤, 계엄 선포에 분노해 국회로 하나둘 모인 시민들.

장갑차를 가로막고, 국회로 진입하려는 국회의원들을 돕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모아 외쳤습니다.

["비상계엄 철폐하라."]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 이후 여의도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집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44년의 시차를 두고도 판박이처럼 닮았던 12.3 비상계엄과 80년 오월.

철저하게 고립됐던 오월 광주와 달리 시민들은 생중계로 상황을 접했습니다.

5·18 당시 사망자와 부상자는 공식 통계로만 2천 7백여 명.

하지만 오월의 준엄한 교훈으로 12·3 계엄은 유혈 사태라는 비극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촬영기자:안재훈

이성각 기자 (dri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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