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대학·도시 함께 살려야 [왜냐면]


최재원 | 부산대 총장
국가균형발전 시대에 지역에서 대학의 존재는 교육기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식과 기술 개발과 연구를 통해 지역 발전을 위한 혁신 역량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특성에 맞는 가치를 발굴하고 지역의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등 경제·사회·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학은 곧 그 도시의 매력이며, 과장하자면 대학이 지역을 살리거나 거꾸로 쇠퇴시킬 수도 있다.
대학의 성장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 대표적 사례로 영국 길퍼드시와 서리대가 있다. 서리대는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대학도 성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린벨트 일부를 풀어 혁신연구단지인 ‘리서치 파크’를 조성하자고 길퍼드시에 제안했다. 젊은 층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런던으로 속속 빠져나가면서 점차 왜소해져 가는 길퍼드시는 파격적인 이 제안을 과감히 수용했다. 이곳은 첨단산업 특화 과학단지로 크게 발전하면서 대학과 지역경제가 함께 동반 성장했다. 이 성공 배경에는 과감한 규제 혁신과 꼼꼼한 지원 시스템, 대학의 자율성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대학뿐만 아니라 지역 행정의 중요한 규제는 대부분 중앙부처가 권한을 갖고 있다. 수도권 쏠림과 국가 불균형이 거의 망국적 정점에 이르고 있지만, 우리의 정치적 시선과 각종 법률·제도는 여전히 서울과 수도권으로만 향하고 있다.
대학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1946년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국립대로 설립된 부산대는 초창기 서울 최상위권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부산시민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 서울’이라는 블랙홀 같은 수도권 중심주의 광풍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양질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학생과 청년들은 모두 서울로 떠난다. 부산대 양산캠퍼스 부지 자체 활용을 통한 대학 발전은 관련 규제에 가로막혀 난항에 부닥친 게 한두번이 아니다. 대학과 지자체는 사활을 걸고 새로운 일자리와 먹거리를 발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정치권과 수도권의 무관심과 행정 편의주의적 규제에 번번이 가로막혀 좌절하기 일쑤다.
지난해 이러한 현실과 벽을 타개하기 위한 부산시의 노력 하나가 눈길을 끈다. 바로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다. 이 법안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을 물류와 금융, 디지털·첨단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과 특례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법이 통과된다면 부산대와 같은 지역 대학이 글로벌허브도시 특성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고 교육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특례와 행·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될 예정이다. 그럴 경우 지역 대학들이 지역 혁신과 경제 활성화의 첨병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역 대학과 지자체가 마음을 모아 지역 발전을 이루고 지역 청년들이 졸업 후에도 좋은 일자리를 누리며 부산에 그대로 남아 지역 발전을 이끌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은 지난해 9월 행정안전위원회 법안 소위원회에 회부된 이후 공청회조차 열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이 법안은 지역 발전을 위한 매우 시급한 과제임에도 중앙 정치권의 관심 부족과 인식 부재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은 부산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지역 불균형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에서, 남부권의 새로운 혁신 거점을 마련하여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고자 마련한 법안이다.
부산과 같은 대도시의 위기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수도권 집중과 일극화로 인해 지역의 고유성과 잠재력이 활용되지 못하고, 국가 자원의 비효율적 운용으로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결국 지역 소멸이라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수도권의 초과밀, 초경쟁, 초스트레스 사회는 국민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초저출산과 성장 잠재력 저하라는 악순환과 국가적 재난을 불러온다.
수도권 중심의 사고를 깨고, 대한민국 전체를 지역별 특성에 맞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파괴적 사고, 혁신적 전환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시대, 정보화 사회에서는 내 역량에 따라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 또한 세계의 표준과 중심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점점 더 무기력감에 빠져들고 있는 지역 청년과 학생들에게 희망의 돌파구가 필요하다. 지역이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균형 잡힌 국가 발전을 통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의 필요성에 지역과 수도권 모두가 공감하고 힘을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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