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 평가당하는 아이들의 미래는?


류승연 | ‘아들이 사는 세계’ 작가
고등학교 1학년 딸의 첫 중간고사가 끝났다. 모호하게만 느껴졌던 대학입시에 대해서도 조금씩 감을 잡아가는 중인데 알면 알수록 드는 생각은 한숨 섞인 우려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던 1990년대, 당시 하이틴 영화 속에서 봤던 미국인들은 우리나라처럼 성적순으로 대학을 가지 않았다. SAT(미국 대학입학능력평가 시험) 점수는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각종 동아리 및 클럽 활동이었다. 그 속에서 어떤 활동을 어떻게 했고 그것이 사회와 집단 안에서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를 홍보(PR)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 보였다.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딸이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수시에선 생활기록부가 중요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좋은 생기부’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자마자 내가 한 말은 “어? 미국식이네”라는 것이었다. 30년 전 미국 영화 속 하이틴 고등학생들이 했던 활동들을 2025년의 딸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은 혹독했다. 성적은 거들뿐 사실상 생기부로 대학입시가 판가름 나는 수시입학전형을 위해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등교해서 하교하기까지 모든 순간을 ‘평가’당해야 했다. 근태와 수업 태도는 기본으로 깔고 가고, 일상적인 학급 활동도 ‘눈에 띄게’ 적극적이어야 하고, 동아리 활동에서도 ‘특별함’을 보일 줄 알아야 했다. 그래야 생기부에 적힐 내용이 나온다고 했다. 친구들과의 교우 관계도 평가 대상이고 심지어 놀러 가는 수학여행에서의 활동도 생기부에 기재된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수행평가가 내신의 40%를 차지하다 보니 학교에서의 모든 수업과제가 곧 작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인 셈. 대입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라면 수업 중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수업과제라는 것도 얘길 들어보니 미국식(?)이다. 미국처럼 토론식 수업이나 주제별 수업을 꾸준히 받아왔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고등학생이 됐다고 진로에 맞는 주제를 정해 탐구 영역을 점점 확장해 나가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사교육으로 따로 준비해 왔던 학생이라면 모를까. 초등과 중등 과정을 지나며 한국식 진도 중심, 시수 중심 교육에 충실했던 평범한 학생은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난데없이 등장한 고교학점제까지.
딸을 보면서 내가 30년 전 대학에 들어간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를 생각했다. 요즘 학생들은 그 많은 일들을 다 해내면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한국식 국·영·수·사·과 공부가 중요하면서, 갑자기 진로 중심 고교학점제가 등장하고, 미국식(?) 특별활동과 탐구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대학입시. 이를 위한 생기부 작성을 위해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평가당하는 고등학생 시절. 이런 학창 시기를 보낸 학생들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까. 그 옛날 미국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막 리더십 있고 도전 의식 있는 멋진 주인공으로 자랄까? 교육부가 기대했던 건 그런 것이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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