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강박 반복행동, '뇌 염증'과 연관성 있다

박정연 기자 2025. 5. 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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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IST 연구팀 "기존 약물로 증상 억제 효과 검증"
자폐·강박 반복행동과 뇌 염증 연관성을 규명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연구진. 왼쪽부터 엄지원 뇌과학과 교수, 정혜지 박사. DGIST 제공

국내 연구진이 뇌 염증이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간 연결인 시냅스에 미치는 영향과 반복행동의 유발 원인을 밝혔다. 자폐스펙트럼장애 등 뇌질환 치료 연구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엄지원 뇌과학과 교수 연구팀이 만성 뇌 염증이 반복행동장애를 유발하는 원인과 분자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연구에선 뇌 속 면역세포의 염증 반응이 특정 수용체의 과활성을 유도하고 자폐스펙트럼장애(ASD)나 강박장애(OCD) 환자에게 나타나는 의미 없는 반복행동이 유발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반복해서 확인하는 등의 반복행동은 증상이 심해지면 자폐스펙트럼장애나 강박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신경회로 이상이나 유전적 요인이 원인으로 추정됐지만 뇌 염증이 이러한 행동을 유발한다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 유전자인 ‘NLRP3’ 유전자 돌연변이를 보유한 생쥐를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이 유전자는 뇌 내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를 자극해 만성 염증 반응이 지속되도록 한다. 염증이 계속되면 흥분성 신경전달에 중요한 ‘NMDA(N-methyl-D-aspartate) 글루타메이트 수용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이렇게 되면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거나 불안해하는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연구팀은 과도하게 활성화된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가 반복행동의 원인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기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중 하나인 ‘메만틴’이란 약물을 NLRP3 유전자 돌연변이 생쥐에게 투여했다. 그 결과 무의미한 행동을 계속 반복하던 증상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NMDA 글루타메이트 활성도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의 과활성이 반복행동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임을 입증한 것이다.

이어 연구팀은 뇌 염증이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를 어떻게 자극하는지에 관해서도 실마리를 찾았다. 염증 상태의 미세아교세포가 ‘인터루킨-1베타(IL-1β)’라는 염증 유발 물질(사이토카인)을 분비하며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터루킨-1 수용체의 작용을 차단하는 치료제(인터루킨-1RA)를 생쥐에 주입하자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의 과활성이 억제되고 반복행동도 사라졌다.

특히 이번 연구에 사용된 메만틴과 인터루킨-1RA(상품명 아나킨라)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치료제로 현재 알츠하이머병과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신약을 개발하지 않고도 이미 안정성과 효능이 검증된 약물을 자폐증이나 강박장애 치료에 재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이와 같은 ‘약물 재창출’ 전략은 개발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실제 치료제 상용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이번 연구는 만성 뇌염증이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의 과활성화를 유도하고 반복행동장애가 유발됨을 입증한 사례”라며 “반복행동을 주로 동반하는 자폐스펙트럼장애나 강박장애 치료에 새로운 치료 접근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에 7일 온라인 게재됐다.

<참고 자료>
- doi.org/10.1016/j.celrep.2025.115656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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