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50만원 드립니다” 기본소득 실험 나선 전남도, 출발부터 ‘시끌’
재정자립도 ‘전국 꼴찌’ 전남도, 당초 “재원 마련 어렵다”고 난색 보이다가 선회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전남은 전국 최초 '농어민 수당'과 '1000원 여객선' '100원 택시' 도입 등 혁신 정책의 발신지로 꼽힌다. 그러나 전남도가 추진 중인 '전남형 기본소득'을 두고는 시작부터 잡음이 일고 있다. 올 초 전남도는 곡성군과 영광군을 기본소득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했다. 시범사업은 올해부터 2년간 진행되며, 전남도가 자체 재원 158억원을 투입해 두 지역 주민들에게 1인당 연 50만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시범사업에 드는 비용은 도(道)와 두 군(郡)이 4대 6 비율로 부담하며, 2년에 걸쳐 총 79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이를 뒷받침할 '전남형 기본소득 기본 조례안'도 3월19일 전남도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원안 가결됐다. 전남도는 1차 추경에서 시범사업비를 확보해 기본소득을 지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영광군과 곡성군만 콕 집어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했는지를 두고 지역사회에서 강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실시된 영광군수와 곡성군수의 재보궐선거(재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기본소득 공약을 내걸었던 점과 이번 선정 결과가 맞물려 논란이 불거지는 양상이다. 논란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시범사업지의 선정 과정에서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끼워 맞추기식' 연구 용역을 추진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난해 곡성과 영광 군수 재선거 당시 민주당과 지역 후보들이 내건 공약을 '전남형 기본소득'으로 정치적인 보상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민주당 공약, '전남형 기본소득'으로 현실화
전남도는 조례안 작성에 앞서 지난해 말, 전남연구원에 전남형 기본소득 시범 도입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도에 따르면 시범사업지 선정은 인구 감소가 심각한 16개 시군 가운데 시범사업을 통해 성과가 나올 수 있는지와 재정 감당 여부 등 9개 지표로 나눠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연구용역에 대한 타당성과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적지 않다. 전남도가 공모 절차를 밟지 않고 산하 연구기관을 통해 사업 대상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진보당 박형대 전남도의원은 "조례가 제정되기도 전에 연구용역을 통해 시범사업 지역을 결정한 것은 정치적 목적으로 영광군과 곡성군에 지급하기 위한 '답정너식 선정'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더욱 커진 것은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와 지난해 재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이 공약했던 기본소득이 '전남형 기본소득'으로 현실화되면서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9월24일 군수 재선거가 열린 곡성과 영광에서 지방정부 예산을 활용한 '주민기본소득' 시범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당 차원에서 공동 공약으로 기본소득제 도입을 약속했다. 두 지역 민주당 군수 후보들도 기본소득 도입을 공동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몇 개월 후 전남 22개 일선 시군 중 재선거가 실시됐던 영광군과 곡성군만 선정된 것이다. 이쯤 되면 그 배경에 다분히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지역에서 힘을 얻고 있는 지점이다.
전남도가 갑작스럽게 이 사업을 도입한 배경을 두고도 많은 말이 나온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만 해도 자당 소속 민주당 의원들의 기본소득 정책 도입 요구를 받고 "재원 대책이 없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김 지사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남도 국감에서 "기본소득의 취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뜻을 같이한다"며 "다만 지역자원 시설세, 지방소멸 대응기금, 신안의 사례처럼 햇빛과 바람 연금 등 현재 있는 예산을 최대한 활용해 재원 대책을 먼저 마련한 뒤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고 거리를 뒀다.
그러다 지난 연말, 돌연 기본소득 제도 도입을 위한 용역을 발주하더니 올해 2월 도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했다. 조례안 심사 과정에서 도의회에선 "전남 22개 시군 중 2개 시군만 추진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 "3개월짜리 용역을 거쳐 졸속으로 추진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도의회는 조례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이처럼 전남도가 돌연 입장을 바꿔 올해 시범사업 추진에 나서자 지역 정치권에선 '정치적 의도가 담긴 사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진보당 전남도당은 3월27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영록 도지사 3선 욕심용 도민 기만 사업"이라고 맹비난했다. 결이 많이 다른 시각도 있다. 전남도가 중앙정치권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정치권에서 내지른 공약에 대한 '뒷감당'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이다. 이와 관련해 전남도는 시범사업 지역 선정에 따른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22개 시군 전체에 지급하지 않는 이상 형평성 논란과 반발은 피할 수 없다"며 "장기적으로는 시범사업을 거쳐 기본소득이 국가 정책으로 도입되는 것을 확대하기 위한 실험 단계로 봐달라"고 말했다.
진보-보수 입장차…'국가사업' 추진 불투명
그렇다면 전남도가 시범사업 추진의 명분으로 내건 '전남형 기본소득'이 국가사업으로 확대될 수 있을까. 전남도는 2년간 시범사업을 한 뒤 성과를 평가하고, 경기와 전북의 사례를 반영해 국가사업으로의 전환을 건의할 방침이다. 전남에 앞서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이 2022년부터 4000명에게 매월 15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전북도 8개 면을 대상으로 2만 명에게 월 10만원씩 시범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조례를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예산 마련이 필수이니만큼, 재원 확보가 사업 추진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남 전체 도민에게 지원금을 10만원씩만 지원해도 1년에 1800억원이라는 예산이 소요돼 열악한 지방재정으로는 추진할 수 없는 형편이다. 도민 180만여 명에게 1년간 기본소득 50만원씩을 지급하려면 무려 9000억원이 소요된다. 전남도의 재정자립도는 26.9%(2024년 기준)로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꼴찌다. 반면 현재는 도가 30%, 일선 지자체가 70%를 부담하는 이 사업이 국가사업이 되면 지자체의 부담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기본소득이 실제로 국가 사업화되려면 무엇보다 정치권의 합의가 중요한데, 진보와 보수가 입장을 달리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기본소득은 이른바 '이재명 공약'으로 불린다. 이 전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부터 주창해온 대표 공약으로, 이번 조기 대선에서도 민주당 등 진보진영은 주요 공약으로 다루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 등 보수진영에서는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부자 증세와 보편 복지에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6월3일 대선 등 향후 정치 지형의 변화가 기본소득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전남도 관계자는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재원 확보와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시범사업의 성과를 면밀하게 평가해 정부가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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