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엔딩의 일격, 영화 ‘해피엔드’

신정선 기자 2025. 5. 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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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29번째 레터지난달 30일 개봉 이후 하루도 놓치지 않고 독립·예술영화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 ‘해피엔드’입니다. 한국 관객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긴 했는데 예상보다도 반응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관객 6만명을 곧 넘어서겠네요. 전 연말에 영화 결산할 때 ‘올해의 엔딩’ 중 하나로 꼽게 될 듯 해요. ‘그 장면’에서 진심의 일격을 당한 것 같았거든요. 어떤 장면인지는 영화 보시면 바로 아실 수 있어요.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의 감성을 10대 우정의 햇살 아래로 옮겨오면 그 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개봉 앞두고 한국 관객 만나러 왔던 소라 네오(空音央) 감독 인터뷰 뒷얘기 살짝이랑 말씀드려볼게요.

영화사진진

영화 ‘해피엔드’는 일본의 30대 청년 소라 네오 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입니다. 작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작이에요. 요즘 일본 젊은 감독들이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번주 개막하는 칸 영화제도 그렇고요. 우리는 올해 경쟁 부문에 한 편도 못 갔는데 일본은 들어갔고, 우리가 작년에 ‘베테랑2’로 차지했던 미드나잇 상영 부문도 일본 영화가 가져갔고요. ‘해피엔드’에서도 요즘 일본 젊은 영화의 힘이랄까, 에너지, 문제의식, 감성을 엿보실 수 있습니다.

소라 네오 감독은 성(姓)은 소라, 이름은 네오인데, 아버지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그 류이치 사카모토, 맞습니다. 어른의 사정 때문에 성은 다르지만요. 전 소라 감독을 재작년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개봉할 때 서면으로 인터뷰했고, 이번 방한 땐 만나서 인터뷰했는데요, 인터뷰 하다가 잠시 쉬어가듯 넘어가는 대목에서 “이름이 네오라서 ‘매트릭스’ 네오로 가명을 만든 줄 알았다”고 했더니 “제가 먼저 태어났는걸요”(소라 감독 1991년생, ‘매트릭스’ 개봉 1999년)라며 “본명이에요, 어머니가 아버지와 정식으로 결혼을 안 한 사이라 어머니 성을 따랐어요”라고 답해서 약간 놀랐습니다. 무척이나 담담하고 차분하게요.

소라 감독은 참 진지하고 생각이 깊어보이는, 그러면서 잘 웃는 청년이더군요. ‘매트릭스’ 얘기도 그 앞에 쓸데없이 농담 같은 거 하다가 편안하게 나온 거였든요. 연예인 혹은 유명인과 인터뷰 하다보면 자기 방어선이 아주 높게 설정돼 있어서 이야기가 좀체 진전이 안 되는 사람도 있고, 소라 감독처럼 본인이 자연스럽게 소화해 버려서 쭉쭉 나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라 감독은 진중하면서 긍정적인 힘이 느껴졌는데, 그의 작품인 ‘해피엔드’도 비슷해요. 주인공 두 명 중 한 명이 재일 한국인 4세인데 배경을 이렇게 설정한 게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평소의 고민이 담긴 거라서요. 소라 감독이 재일 한국인을 많이 알거나 자주 만나서는 아니고, 그가 일본인을 봤을 때 핵심적으로 자리하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의식에 대한 반영, 거울 같은 대상으로 설정한 거니까요. 소라 네오 감독의 인터뷰 기사는 며칠 전 저희 지면 기사로 나갔는데 링크는 👉여기 있습니다.

교장의 노란 차를 직각으로 세운 유타와 코우의 장난 탓에 교내에 AI 감시 시스템이 도입된다. /영화사진진

‘해피엔드’는 무엇보다 우정에 대한 영화입니다. 근미래 도쿄가 배경이고 졸업을 앞둔 두 고등학생이 주인공이에요. 유치원 때부터 절친이었던 두 사람은 같은 음악 동아리를 하고 있고 어디서든 어울리지만 어느새 정치적 사회적 시각을 달리 갖게 되면서 멀어지게 됩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한테 말해요. “머리 빈 새끼야, 생각을 하고 좀 살아. 사람은 변해. 너도 변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다른 친구가 말해요. “너랑 나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아”라고요. 어쩌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이죠. 그래서 반박합니다. “아니 똑같아. 유치원 때부터 우린 친구였잖아. 처음으로 바다를 볼 때도 그랬고, 처음으로 딸딸이 칠 때도 그랬고. 너 그런 친구 또 있어?”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도 사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거죠. 우린 근본적으로 다른 게 아닐까, 하고요. 두려워서 말하지 못하고 있었을뿐. 그 심정이 제가 레터 제일 앞에서 말씀 드린 ‘그 엔딩’에서 그렇게 드러나는 거겠고요. 웃고 있지만 사실은 우는 듯한 그 심정.

영화에 AI 감시 체제가 등장하는데 보다보면 미래 느낌보단 오히려 과거의 어디쯤으로 보여요. 등장 인물들이 휴대폰조차 거의 쓰지 않거든요. 감독 말이 “일부러 그랬다”더군요. 테크놀로지 발전이 핵심이 아니라는거죠. 미래에 우리가 어떤 기술을 쓰고 있고 아니고, 그런 얘길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있을까, 그래도 되는 걸까,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라고요. 일본인은 미래에도 여전히 ‘일본인’이 누구인가 누구여야 하는가에 대해 벽을 높이 세우고, 타인을 구분하고 배제하고 있을까, 그게 맞는 걸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는 거죠. 일본에 오래 살고, 일본어를 아무리 잘하고, 일본 문화를 아무리 잘 알아도 그들이 정한 벽 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는 ‘일본인’들. 과거 제국주의가 뿌리 깊게 심어둔 높고 공고한 의식의 벽.

근미래 도쿄가 배경인 영화 ‘해피엔드’는 고교생 유타(사진 왼쪽)와 코우(사진 오른쪽)의 흔들리는 우정을 보여준다. /영화사진진

영화에 재일 한국인 주인공 외에도 대만계와 미국계 그것도 흑인인 학생이 등장하는데요, 의미심장한 장면이 있습니다. 자위대원이 교실에 특강을 하러 왔는데, 교사가 “일본을 지키는 얘기니까 중요하니 들으라”고 해요. 그래놓구선 “귀화 안 한 학생은 들을 필요없다”며 외국인 학생들 보고 나가라며 번호를 불러주는데 한두 명이 아니고 엄청 많거든요. 그렇게 많은 학생을 솎아내고선 일본을 지키긴 뭘 지킨단 말이냐, 그렇게 지키고 싶은 일본은 도대체 뭘 말하는 거냐는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장면이죠. 인터뷰 할 때 소라 감독이 본인은 유머를 중시한다, 영화에 유머를 많이 넣었다고 주장했는데 이 장면도 그가 말한 유머 장면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근데 전 머리론 유머로 이해했는데 볼 때 너무 심각하게 봐서인지 웃을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안 웃겼다고 하니 소라 감독이 약간 억울해했는데 여러분은 하하 웃으실지도요.

엔딩에 보이는 육교는 오사카에 있다고 합니다. 원래는 지금의 엔딩 뒤에 다른 장면을 넣으려고 촬영했다는데, 현재 엔딩으로 결정한 것이 저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 것 같아요. 어찌보면 환하고, 달리 보면 서글프면서, 한편으론 현실적이지만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해석의 여지가 좋았네요. 무심히 지나갈 법한 육교에서도 이런 엔딩이. 감독이 분명한 자기 시각을 가졌으니 가능했겠지 싶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보시고 예전 친구, 혹은 지금의 친구와 함께 나눈 예전 기억을 오랜만에 떠올려보시길.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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