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망들의 그림책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면 차마 한꺼번에 다 먹지 못하고, 야금야금 간보듯이 깔짝거리기 마련이다. 어디 먹는 것만 그러한가?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읽기는 읽는데 밀려오는 느낌이 너무 강해 자꾸만 책을 내려놓는다. 무언가에 홀린 듯 한 번에 독파하는 것과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동류同類다. 이번 책이 그러했다. 글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내용이 많은 것도 아닌데다 그림이 섞여 있는지라 막힐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읽다가 그치기를 여러 번. 책을 얻어 며칠이 지난 후에야 손을 대고, 읽다가 잠시 쉬었다가 그리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무엇 때문인지 알 것 같긴 한데, 굳이 말하자면 길다.
오늘 소개할 책은 미술가, 예술감독, 그리고 그림 선생인 최소연의 '할머니의 그림 수업'이다. 「그림 선생과 제주 할망의 해방일지」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2021년 선흘로 이사 온 작가가 홍태옥 할머니를 시작으로 강희선, 고순자, 김인자, 부희순, 오가자, 윤춘자, 조수용 할머니까지 '할망' 여덟 분의 그림과 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한 책이다. 표지 그림은 옅은 황토색 뿌리에 푸른 잎이 펼쳐져 있는 '열무'. 그 옆에 이렇게 적혀 있다.
"할망은 열무를 사랑합니다. 땅에서 나온 것은 다 사랑합니다."
- 강희선(2022. 6. 20.)
"땅에서 나온 거로 삽니다. 한 인생을 그거로 사는 거주. 그런데 그림을 그려보니 팔십육 세까지 생각도 못한 일이 생겼주. 나 강희선이 무수(무) 그림을 그려주."
- 강희선(2022. 6. 26.)
해방일기
책의 부제에서 말하는 '해방일지'라는 말을 자꾸 곁눈질한다. 표지 안으로 들어가면 두 명의 여성이 나온다. 한 명은 저자 최소연, 다른 한 명은 정지아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를 불러들인 것도 아마 '해방일지' 때문인 듯하다.
해방의 사전적 정의는 '속박하거나 가두어 두었던 것을 풀어서 자유롭게 함'이다. 사실 우린 일상적으로 '해방'이란 말을 사용한다. 방학은 공부로부터, 개학은 삼시세끼의 주부일로부터, 나처럼 연금생활자는 직장으로부터 벗어남이 해방이다.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나 당사자에겐 매우 중요한 삶의 모멘트다. 그럼 제주 할망들에게 해방은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가?
"'답답한' 생활하다가 누가 기쁜 말 전해주면 이것이 해방이 되어 기쁜 것이 해방이주."
- 186쪽
강희선 할머니의 일기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해방의 의미를 잘 말해준다. '답답한 생활'은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는 아닌 듯하다. 그것은 세월이 만들어놓은 시간적 답답함이기도 하다. 노인의 시간이 주는 답답함이란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고독孤獨이라고 말한다.
할머니들은 중산간의 외진 마을인 선흘에서 태어나거나 시집을 와서 오랜 세월 땅에 의지하여 먹을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아온 이들이다. 제주 4.3으로 인해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어 여덟 분 할머니들 가운데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가 딱 한 명이다. 누군가는 난리로 친족을 잃기도 했고, 지금은 대부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아간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나냥대로(나대로)" 산다고 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실은 오래된 고독이다." 고독의 다른 말은 외로움, 그리움, 허전함, 그리고 답답함이다.
"너무 외로워서 무수를 보면서 어떨 때는 슬픈 생각도 나고, 기뻘 생갓도(기쁜 생각도) 나고 외로와도 이런 인생이 사는 거지."
- 강희선(2022, 3. 25.)
"엄마 보고 싶다. 엄마는 나 보고 싶지 않아. 엄마 나 머 하고 있는지 알아. 어제 저녁에 보리콩, 울 안에 시월딸에(시월달에) 심은 거 따서 삶아 먹었습니다. 껍질 속에 알맹이 다섯 개 까 먹었습니다. 여러 개 까 먹고 나는 엄마 생각하면서 눈물이 납니다."
- 오가자(2022. 5. 20. / 127쪽)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답답함'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사람과 그림
그림을 그려보지 않은 이들이 있는가? 학교를 다닌 이들에게 첫 번째 일기는 그림일기였다. 그러니 그림은 생애의 첫 번째 기록인 셈이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조금 다르다. 할머니들은 "볶은 깨, 금방 뽑은 무, 배추, 고추, 삶은 달걀, 오이, 수박, 참외, 도토리묵, 호박"은 있지만 "문구용품이라는 건 아예 아무 것도 안 갖고 계시다."(25쪽) 그림 재료가 있을 리 없고, 그릴 종이 또한 없다. 그래서 그림 선생은 "제가 드립니다. 여분의 종이도 가져다드리고요. 빈 종이가 많이 있으면 그림 그릴 마음이 쉽게 나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종이가 경 있으니 호끔 기렸지."라는 핑계를 대고 나무판을 놓고 가면 겸손하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무사 나무판을 줭 기렸지." 이게 그림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다고 어찌 그 '답답함'이 없어지겠는가?
"밥상에서 물감 펴놓코 붓 들고, 그림도 그려보고 한다. 혼자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허전하다. 친구 한 명이라도 와서 그림 같이 그렸으면 조을(좋을) 건데, 아무도 오지 안았다(않았다)."
- 홍태옥(2022. 8. 2.)
그날은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홍 할머니에겐 친구가 꽤 있다. "15년 너문(넘은) 밥상입니다."(195쪽) "그러니 흉보지 마세요"라고 했던 그 밥상과 그 위에 펼쳐진 물감과 붓 그림 「밥상」을 같이 보며 깔깔 웃어줄 친구들, 그 그림을 보고 멋지다고 말해주었을 그림 선생, 그리고 어느 날 창고 미술관에 들러 자신의 그림을 봐주는 이들. 허전해야, 외로워야 비로소 알게 된다.
"할망 친구들이 같이 그림을 그리니까 재미있어. 놈 그린 것도 보고, 나 그림 그린 것도 보면 더 재미가 있어."
- 고순자(무수 둘이 좋아해, 2022. 6. 13. / 96쪽)
"어느 날은 할머니(홍태옥) 집에서 한바탕 함께 그림을 그리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저를 배웅하면서 슬쩍 한마디 하셨어요. '사랑해.' 너무 놀라서 '삼춘 지금 사랑해라고 했어?'하고 되물었습니다. '어, 사랑해' 그렇게 다시 말씀하시는데 가슴이 콩닥거렸어요."
- 35~36쪽
우정이 점점 더 커져서 그림 선생에게 전하는 사랑고백으로 이어지고, "너미(너무) 고마운 소"(강희선 79쪽) 예쁜 벽구(백구인가? 그런데 그림에는 누렁이다. 그렇다면 벽구는 이름이다)(164쪽)까지 넓어지며, 급기야 보리콩, 참외, 무수, 임신된 대죽부래기(옥수수), 홀쭉한 남자 대죽부래기, 콜라비, 톨나비(콜라비), 부로코리(브르콜리), 닭, 파랑새, 민들레까지 예쁜 그림으로 변화한다. 우정이, 사랑이 정말 그러하려면 넓어져야 함을 배운다.
"혼자는 외롭고, 둘이는 안 외롭고, 참외 둘이 좋아해."
- 고순자(참외 둘이 좋아해, 2022. 7. 29. / 115쪽)
어릴 적부터 다정한 이들이 팔십 넘어 오순도순 선흘에 살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그림도 그리면서 절로 체화된 것이리라.
"나 고순자 팔십네 살 윗동네 산다 혼자 산다. 아침 혼자 차려 먹고 버스 타고 외방 강 고기 사온다. 점심에 고기로 반찬 지정(지져) 혼자 먹는다. 호끔 섭섭한 기운이 난다. 동네 할망 친구들 여기 모여 빙도 지져 먹고, 웃으며 논다. 친구 중에 고진순은 팔십세 살 길 건너편에 산다. 홍태옥이는 팔십여섯 살 감나무골 산다. 우리 사춘 아즈망이다. 친구 중에 김부자는 팔십 네 살 나랑 동갑이다. 세 살 때부터 친구다. 어릴 적부터 다정해."
- 139~140쪽
"당근받애 당근 소꾸러 갈거주게. 당근 세 개 중에 가운데 당근 하나. 뽀방주어야 상품 댄다. 선흘 할망들 열 명이 한 밭에 안장(앉아) 일하여도 혼 손이라(한 손 같다)."
- 김인자(2022, 107쪽)
이렇게 같이, 함께 일하고, 먹고 놀며, 그림을 그리면 소소한 재미와 웃음이 많아지고, 감상과 철리哲理가 버무려지면서 비로소 '답답함'에서 풀어지는 것 아닐까?
답답한 예술
루쉰 노신魯迅은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후반에는 소설보다는 전투적 잡문雜文 집필에 몰두했고, 목판화에도 탁월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그는 1928년 조화사朝花社를 설립하여 서구의 판화를 소개하기 시작했으며('근대목각선집' 등), 193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목각판화운동을 선도하면서 1934년 8명의 젊은 목각판화가의 작품 24점을 모아 '목각기정木刻紀程'이란 목판화집을 편집했다. 판화에 대한 애정과 운동은 1936년 향년 55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에게 판화는 예술의 대중화에 적격인 예술 장르였으며, '답답한' 예술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이기도 했다. 그가 말했다.
"대체로 중국 예술가는 유럽 19세기 말의 괴상한 그림을 소개하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괴상한데다 제멋대로인지라 기형적이고 괴이한 형태들이 예술계에 가득 차게 되었다."
-- 1934년 6월 2일 정전퉈鄭振鐸에게 보낸 편지
이는 당시 국민당이 지배하고 있던 상해의 예술계를 비판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예술이 일반인들과 만나는 거리가 점점 좁아지는 오늘날 과연 공감의 거리도 그만큼 가까워졌는지는 의문이다. 예컨대 미술이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가 점점 심해져 도무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생경한 시처럼 의도적인 거리두기로 독자의 눈높이 너머 지고의 경지로 올라서고자 한다면, 작가의 감정 배설과 지적 욕구를 만족시킬지 모르나 보는 이들은 점차 무심해지지 않을까? 작가가 생각하기에 예술적 지평을 넓히고 그 경지를 높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지 모르나 보는 이들은 그냥 '답답한' 느낌만 들뿐이라는 뜻이다.
루쉰은 「악마파 시의 힘에 대해서(마라시력설摩羅詩力說)」에서 이렇게 말했다.
"순문예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모든 미술(예술)의 본질은 보고 듣는 이들이 그것으로 흥이 나고 즐거운 것에 있다."
- 악마파 시의 힘에 대해서(마라시력설摩羅詩力說) 가운데
진선미(眞善美)
참됨과 거짓, 착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은 상대적이다. 관점에 따라, 입장에 따라, 심지어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 참됨이나 착함, 아름다움은 없는 건가? 가짜나 나쁨, 추함은 허상인가? 장자의 말대로, 무엇이든 도에서는 하나로 통하는 것(道通爲一)이니, 옳고 그름을 조화시키고, 절로 그러한 자연의 균형(천균天鈞)에서 쉬면서 사람이나 사물이나 그저 나름대로 갈 뿐이라고 '양행兩行'을 되뇌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그것이 상정想定한 것이든 이상일 뿐이든 진선미眞善美는 존재한다. 다만 참이 참인지, 착함이 정말 착함인지, 아름다움이 진정 아름다움인지 서로 교차하면서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진선미를 서로 떼어놓지 않고 붙여놓은 까닭이다. 일종의 피차검증, 교차승인, 상호견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견제하고 검증하여 승인이 되면 비로소 '풀어진다'. 입 주변의 근육이 풀어져 헤헤거리고, 눈가의 근육도 마저 풀어져 착해지고, 마지막엔 뇌와 심장의 근육마저 말랑거려 행복해진다. '답답함'에서 해방됨이다.
선흘에 갔다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번에는 선흘그림작업장에서 전시되고 있는 「폭삭 속았수다」를 보러갔다. 창고를 개조한 작업장에 들어가자 제일 먼저 나에게 요구한 것은 흰 장갑을 끼라는 것이었다. 작품을 만져야 하니까? 싫다고 하자 이곳의 규칙이라고 한다. 물론 우스개이다. 그래서 꼈다. 마침 주인공인 몇 분 할머니들이 앉아 계셨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포즈를 취하신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사진도 찍고 만져도 보고 이리저리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을 아주 넓게 돌아다녔다. 어수선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별꼴학교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