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와 미국립보건원을 주목하는 이유 [신기욱의 글로벌 인사이트]

2025. 5. 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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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재미학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사회, 정치, 경제, 외교.안보등에 관한 주요 이슈를 다루고자 한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모습과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글로벌 시각에서 제시하려 한다.
스탠퍼드 동료였던 두 학자의 다른 행보
정치외풍에 흔들리는 美 과학계와 대학
한국엔 '교육을 침범한 정치'의 반면교사
12일 미국 하버드대가 있는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트럼프는) 하버드에서 손을 떼라”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요즘 하버드 대학과 국립보건원(NIH), 그리고 이들 조직을 이끄는 알란 가버 총장과 제이 바타차리아 원장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두 명 모두 스탠퍼드대 교수 출신으로 한때는 필자의 동료로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명은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고, 다른 한 명은 트럼프의 정책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들의 결과에 따라 미국의 대학과 첨단 연구환경에 지각변동이 생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에 대해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관련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이를 반영한 입학 및 채용 정책 개선안 마련을 요구했다. 또 반유대주의, 친팔레스타인 학생 단체를 해산할 것도 요구했다. 가버 총장은 헌법상 보장된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적 자유를 침해한다고 거부하며 "정부가 사립대학의 교육 내용, 입학 및 채용 결정, 연구 분야를 지시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버드의 반발에 트럼프 행정부는 22억 달러 이상의 연방 연구 자금을 동결하고, 비영리 면세 지위를 박탈하며, 유학생들의 비자 발급을 제한하겠다고 압박 강도를 높였다. 하버드대는 행정부의 조치들이 위헌적이라며 법적 소송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150명 이상의 대학 및 단과대학 총장들은 하버드를 지지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유례없는 정부 개입과 정치적 간섭" 중단을 촉구했다.

바타차리아 원장은 스탠퍼드대 교수로 재직하며 보건정책 등의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했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팬데믹 대응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2020년에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집중 보호' 전략을 주장한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Great Barrington Declaration)'의 공동 저자로서 트럼프의 정책을 옹호했다.

바타차리아는 미국 연방의 최대 연구기금인 국립보건원 예산 470억 달러의 44%를 삭감하고 대대적 인원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암, 알츠하이머병, 당뇨병 등 주요 질병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대학의 연구 시설 운영에 필요한 간접비용 지원도 절반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발해 전국적으로 "과학을 지키자”(Stand Up for Science)는 시위가 벌어졌고, 유럽과 중국 등에선 미국 과학자들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하버드 대학과 국립보건원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에 대한 압박에 정치적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하버드를 비롯한 엘리트 대학들이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의 가치를 침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PC)에 경도된 교육 환경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국립보건원을 비롯한 연방기금의 경우도 DEI와 관련된 연구를 "좌파적 의제"로 간주하고, 해당 분야의 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하버드와 국립보건원이 처한 전례 없는 상황은 민주적 규범과 가치를 마구 훼손하고 있는 트럼피즘과 무관하지 않다. 재정적 지원을 무기로 대학과 연구자들을 길들이려고 하고 있다. 미국이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를 수호할 수 있을지, 더 나아가 글로벌 과학·기술의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을지 험로에 서 있다. 정치가 교육과 연구의 영역을 침범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며, 한국도 중요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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