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카멜리아 레이디’ 亞 첫 전막 공연 드라마 발레 컷 없는 시대극 촬영현장 방불 안무가 노이마이어 이름값 톡톡
국립발레단이 ‘카멜리아 레이디’로 드라마 발레의 정수를 객석에 선사하며 노이마이어가 왜 당대 최고 안무가인지를 보여줬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가 원작이라지만 철부지 귀공자와 화류계 여성의 사랑이라는 너무나 통속적인 서사가 한없이 슬픈 드라마로 무대 위에서 다시 태어났다.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카멜리아 레이디’는 1978년 세계 초연 후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첫 전막 무대였다. 국립발레단이 오랫동안 안무가를 설득해 어렵게 선보인 이번 무대에서 가장 돋보인 건 역시 노이마이어의 연출이었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시간과 공간이 겹치고, 인물들의 기억과 감정이 교차하며 무대를 가득 채웠다. 클래식발레의 형식과 틀을 벗어난 무대에서 무용수들은 다양한 연기와 춤으로 사랑의 열정과 질투, 회한이 소용돌이치는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현존 최고 안무가로 손꼽히는 노이마이어의 대표작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주역 마르그리트를 맡은 조연재(왼쪽)와 국립발레단원들이 열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극 중 발레 ‘마농 레스코’를 관람하는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첫 만남부터 그들의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이 펼쳐진 1막은 왜 노이마이어가 그토록 자신의 작품을 올릴 발레단을 까다롭게 선별했는지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단선적인 줄거리를 따라 무대에 등·퇴장하며 자신이 맡은 춤만 추면 되는 고전발레와 달리 카멜리아 레이디 무대는 마치 컷없이 진행되는 시대극 촬영장을 방불케 했다. 주·조역이 각자 맡은 연기와 춤이 일제히 펼쳐졌다. 특히 프뤼당스로 오랜만에 무대에 선 국립발레단 간판스타 박슬기의 춤과 연기는 무대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고른 기량을 갖춘 발레단이 수많은 연습을 반복해야만 펼칠 수 있는 장관이었다. 역량이 검증된 곳에만 작품을 허락하겠다는 원로 안무가의 고집이 절로 이해됐다.
노이마이어 춤의 독보적 아름다움이 본격적으로 빛난건 2막부터다. 7일 개막공연에선 조연재와 변성완이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으로서 화이트 파드되를 펼쳤다. 쇼팽 음악을 배경삼아 두 주역은 숨이 멎을 만큼 어려운 2인무로 객석을 매료시켰다. 이재우가 열연한 아르망의 아버지와 마르그리트의 2인무도 인상적이었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헤어질 것을 요구하는 아버지와 절절한 사랑을 호소하는 마르그리트의 춤을 통한 대화는 관객을 깊이 몰입시켰다. 자비를 구하는 마르그리트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위로하다 결국 뒤돌아서는 아르망 부친의 뒷모습은 이날 여러 장면 중에서도 오랜 동안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3막에 이르러선 파리에서 두 연인의 재회와 결별, 마르그리트의 슬픈 운명에 이르기까지 무르익은 서사가 한순간도 헛됨 없이 펼쳐졌다. 마르그리트와 마농 커플이 마지막으로 추는 비통한 3인무에 이어 사랑을 잃은 아르망이 부친을 껴안는 결말에 이르러선 관객도 회한을 함께 느끼게 된다. 드라마 발레란 이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