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 뉴턴, 잡스, 그리고 세잔의 사과 [김용우의 미술思 ]
김용우의 미술思 9편
폴 세잔 ‘바구니가 있는 정물’
원근법 파괴한 혁신적 작품
관찰자 시점도 다르게 표현
묘사보단 개성적 시각 강조
피카소, 세잔의 혁신 이어가
![폴 세잔, 바구니가 있는 정물, 1880~1890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프랑스. [그림 | 위키미디어]](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11/thescoop1/20250511112701916hilp.jpg)
세상을 바꾼 사과 이야기를 할 때면 흔히 뉴턴의 사과와 스티브 잡스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를 이야기한다. "뉴턴의 만유인력과 애플 창업자의 사과는 알겠는데 세잔은 뭐지"라고 반문할 독자가 적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모두 동의할 정도로 세잔의 사과가 갖고 있는 의미는 크다. 인상주의는 19세기 중엽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라는 작품에서 출발했다. 르누아르와 피사로, 드가, 로트러크와 고흐, 고갱, 세잔 등은 빛과 색채를 새롭게 표현하는 작업으로 고전적 방법으로부터의 변화를 추구했다.
당시 그림의 금지옥엽인 원근법·사실감·입체감을 넘어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순간을 포착하고 각자의 표현을 강조해 밝은 색상의 그림을 선보였다. 모든 변화가 그렇듯 처음엔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드물었지만, 그 지평은 급속하게 넓어졌다.
이처럼 전기 인상주의 작가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변화를 포착하고 빛의 광학적 스펙트럼 이론을 받아들여 점묘화법 등으로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면 후기 인상파로 일컬어지는 고흐와 고갱, 세잔은 그림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중 근대 회화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작품은 폴 세잔의 '사과'다. 세잔은 톡특한 성격과 어두운 색채 등으로 친구 에밀 졸라에게까지 혹평을 받는다. 그러다 자신의 고향 액상 프로방스(라 마르세유 근처)로 내려가 엄청난 작업을 한다. 수없이 많은 사과와 마을에 있는 '세인트 빅트아르 마운틴'을 숱하게 그린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시각적 구도를 찾아낸 세잔은 후대 화가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 '바구니가 있는 정물'을 보자. 선입견 없이 그림을 감상한 후 하나씩 다시 살펴보면 좋겠다. 그러면 여태껏 감상했던 그림들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무엇보다 그림의 뒤편에 있는 바구니가 앞의 정물보다 크다. 원근법에 맞지 않다. 모름지기 뒤쪽의 사물은 앞쪽보다 작고 흐리게 표현하는 것이 투시도법, 이른바 원근법의 기본인데 맞지 않는다.
이번엔 그림 속 주전자와 물병 등 소품을 자세히 살펴보자. 시점視點이 같지 않다. 다시 말해 왼편 큰 항아리(생강단지)와 그 앞의 뚜껑이 있는 백자 항아리의 구도를 보면 관찰자의 시점이 같지 않다. 큰 항아리의 눈높이가 훨씬 높다. 오른쪽 흰 주전자 역시 정면에서 바라보고 그렸다.
![폴 세잔, 세인트 빅트아르 마운틴. [그림 | 위키미디어]](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11/thescoop1/20250511112703307qqzb.jpg)
탁자의 모서리도 눈여겨볼 포인트다. 왼쪽 모서리와 오른쪽 모서리가 맞지 않는다. 왼쪽은 위에서 내려다봤고, 오른쪽은 그보다 낮은 시각에서 보고 있다. 그 때문인지 가운데 흰 천 위의 과일은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서 세잔이 말하려는 요점은 "그림은 그림일 뿐"이란 것이다. 사진처럼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게 아니고, 화가가 보고 느낀 사물을 재구성해 다시 화판에 그려내는 것이 그림이다. 화가는 묘사의 달인이 아니라 작가의 개성적인 시각으로 만들어낸 작품을 그려야 한다는 얘기다.
정말이지 충격이 아닐 수 없는 새로운 이론이다. 이를 받아들인 후배 화가들은 피카소와 브라크가 큐비즘(Cubism)이란 화풍으로 새로운 표현 방법을 개척했다. 사람의 얼굴에 정면과 측면을 한꺼번에 배치해 이중적 이미지를 하나의 조형으로 만들어냈다.
피카소는 1907년 몽마르트르의 세탁소 2층 화실에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했다.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피카소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이제 형태를 넘어 본질로 향한다."
또다른 화가 마티스는 나무의 초록을 붉은색으로 치환해 야수와 같은 강렬한 조형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게 바로 야수파의 시작이었는데, 초록의 시원한 그늘을 연상하는 나무의 고정관념은 불타는 정열이 됐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세잔을 뉴턴·잡스와 나란히 변화의 아이콘으로 삼은 배경이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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