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시와 최양락의 찰진 사투리… 마침내 완주한 김금희의 '듣는 소설'

권영은 2025. 5.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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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김금희 장편소설 '첫 여름, 완주'
무제 출판사 '듣는 소설' 첫 권
김금희 작가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으로 먼저 선보인 장편소설 '첫 여름, 완주'의 종이책을 들고 있다. 책의 표지와 케이스는 과거의 비디오 테이프나 카세트 테이프를 떠오르게 한다. 박시몬 기자

'대사가 많은 소설, 어쩌면 반은 희곡에 가까운 소설을 써달라.'

배우면서 출판사 '무제' 대표인 박정민은 2022년 6월 김금희 작가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 제작을 염두에 둔 무제의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그 첫 번째로 김 작가를 낙점한 것이다. 당시 이미 계약한 다른 소설을 쓰고 있었지만 김 작가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타적 목적의 취지도 너무 좋았고요. 한편으론 작가로서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겠다, 재미있겠다 싶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최근 종이책으로 출간된 '첫 여름, 완주'를 들고 한국일보와 만난 김 작가의 말이다. 소설의 오디오북은 지난달 먼저 나왔다.

첫 여름, 완주·김금희 지음·무제 발행·224쪽·1만7,000원

배우 박정민 기획… 첫 번째 '듣는 소설'

'첫 여름, 완주'의 주인공 손열매는 충남 보령의 '창세기 비디오'집 막내딸이다. 어릴 적 한글을 잘 모르던 할아버지에게 짐 캐리 주연의 영화 '마스크' 자막을 읽어주더니 성우가 됐다. 인생이 순탄할 리 없다. 룸메이트 고수미가 1,300여만 원을 갚지 않고 잠적했고, 갑자기 목소리가 떨려 나와 찾은 병원에선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졸지에 돈도, 사람도, 일도 잃은 신세가 됐다. 수미의 고향인 완주 마을 본가로 떼인 돈을 받으러 간 열매는 암 투병 중인 수미 엄마의 매점을 지키게 된다. 궁극에는 완주에 발디딘 저마다가 각자의 생을 완주(完走)하는 이야기.

김 작가가 직접 붙인 제목 '첫 여름, 완주'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과 주제를 모두 품고 있다. 그는 "살아있는 무엇이라면 가을과 겨울을 잘 나기 위해서 이 여름에 에너지를 축적하든 뭔가를 해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소중한 기간인 여름을 택했다"고 했다. 소설 속 완주 마을은 경기 양평을 본뜬 가상의 공간이다.

배우이기도 한 박정민 출판사 무제 대표. 그는 5년 전 시력을 잃은 아버지께 책을 선물하기 위해 '듣는 소설'을 기획하게 됐다. 샘컴퍼니 제공

슬퍼도… 각자 몫의 완주를 해내는 사람들

초고 탈고까지만 2년이 걸렸다. 그의 첫 역사소설인 '대온실 수리 보고서'와 남극을 다녀와 쓴 '나의 폴라 일지'가 앞서 차례로 출간됐다. 김 작가는 "막상 쓰기 시작하자 이야기에 욕심이 생겨 필요한 인물들을 마을로 다 불러와 썼다"고 했다. 시놉시스에는 없던 할아버지 캐릭터가 추가됐다. 당초 중편으로 계획했던 소설 분량이 원고지 580매까지 늘었다. 배우 고민시, 염정아, 김도훈, 최양락, 배성우 등이 각각의 배역을 맡아 목소리 연기를 했다. 덕분에 인물들이 풍성해졌다. "개성 있는 여러 목소리를 들으니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구나 확 느껴지더라고요."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부러 대사를 크게 늘리고, 해설과 지문까지 썼는데도 소설 쓰던 습관을 완전히 버릴 순 없었다고. 무엇보다 작품의 메시지를 놓고 고민이 컸다. "수많은 배우들까지 모두가 합창하듯 한 작업인데 절망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는 것. "비극이나 절망, 허무로 끝날 수는 절대 없다, 그렇다고 가능하지도 않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고요. 결국 인물들이 각자의 완주를 위해 스스로 결정 내릴 일일 테니까요."

김금희 작가가 '첫 여름, 완주'를 쓰기 위해 충청도 사투리를 공부한 흔적이 수첩에 남아 있다. 김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고민시·최양락 등 명연기… "오디오북도 꼭"

김 작가가 사투리 사전을 펴놓고 열심히 공부해서 썼다는 충청도 사투리는 재미를 책임진다.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진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효과는 극대화된다. 술에 취했을 때 튀어나오는 열매의 사투리, "인간이 뭐냐맨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인간이지, XX 인간이 뭔지 증말루 몰르는 겨?" 열매를 연기한 고민시 배우가 이렇게 폭발할 때 김 작가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할 정도다. 대표적 충청 출신 코미디언 최양락이 연기한 할아버지 사투리는 소설의 백미. 동시에 가장 슬픈 장면 역시 할아버지가 열매의 꿈속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날 때다. "'픽픽' 웃음이 나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 슬프지 않은 장면이 하나도 없다."(가수 아이유의 추천사 중에서) 실제로 소설을 읽고 나면 눈이 시리다. 여름날의 찬란함에 눈이 부신 건지 슬퍼선지 잘 모르겠다.

오디오북이 우선이었던 기획의 취지를 존중하자면 오디오북을 듣고 나서 종이책을 읽는 순서를 추천한다. 소설이 먼저 쓰이고, 오디오북이 제작됐으니 반대도 나쁘지 않다. 아무러하든 오디오북으로 꼭 들어봐야 한다는 게 김 작가의 당부다. "어저귀를 맡은 김도훈 배우가 '숲의 여기저기에요'라는 대사를 칠 때, 귀에 소름이 나요. 너무 좋아서요! 오디오북을 세 번째로 들으면서도 차에서 못 내릴 뻔했다고요."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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