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큼털털한 인생에 우정 한 스푼 [비장의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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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사고였어." 엄마가 말했다.
"어떻게 사람이 사고일 수 있지?" 메리는 늘 궁금했다.
〈메리와 맥스〉(2009)를 처음 본 날, 난 정말 한참을 울었다.
실제로 감독이 20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은 펜팔 친구 덕분에 〈메리와 맥스〉를 생각해냈듯이, 매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도 멋진 어른으로 성장한 또 다른 친구를 생각하면서 〈달팽이의 회고록〉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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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애덤 엘리엇
출연: 세라 스눅, 에릭 바나

“넌 사고였어.” 엄마가 말했다. “어떻게 사람이 사고일 수 있지?” 메리는 늘 궁금했다. 우체국에서 미국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던 날, 문득 알고 싶어졌다. 그 나라에서는 아이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그래서 아무나 한 명 골라 편지를 썼다. “호로비츠 씨에게. 제 이름은 메리 데이지 딘클이에요. 나이는 여덟 살인데 석 달 그리고 9일 더 됐어요. 미국의 아기는 어디서 나오나요? 답장이 와서 저와 친구가 된다면 좋겠어요. 추신. 제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함께 보내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보낸 편지가 미국 뉴욕에 혼자 사는 마흔네 살 아저씨 맥스 제리 호로비츠에게 도착했다. 그는 편지를 네 번이나 읽었다. 창밖을 18시간이나 바라본 후에 마침내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편지 고맙구나. 질문에 답을 해주지. 내가 네 살 때 어머니께 물어봤을 땐 랍비가 알을 낳고 그 알에서 아기가 나온다고 했어. 유대인이 아니라면 수녀가 알을 낳겠지. 종교가 없다면 외로운 창녀가 낳을 거고. 미국에서는 그렇게 아기가 나온단다.”
이어서 메리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난 이야기, 여섯 살이 되었을 땐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아스퍼거 증후군 때문에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한 이야기까지.
“답장을 받아서 기뻐요. 아저씨는 친구가 없다고 했는데 사실 저도 그래요. 아저씨도 놀림받은 적 있으세요?” 그렇게 시작된 펜팔이 20년 넘게 이어지는 이야기. 편지로 맺은 둘의 우정이 “메리가 쓰는 풀보다 더 끈끈해”진 그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조물조물 점토로 빚어낸 애니메이션. 〈메리와 맥스〉(2009)를 처음 본 날, 난 정말 한참을 울었다. 말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울었다. 이 영화의 가슴 벅찬 엔딩을 보고도 눈물이 차오르지 않는 인간하고는 조금 거리를 둬야겠다고 다짐하며 계속 울었다.
애덤 엘리엇 감독의 다음 작품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좀처럼 소식이 없었다. 하루에 고작 몇 초씩만 완성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 오래 걸리는 게 당연하지만, 두 번째 장편영화가 나오기까지 15년이 걸릴 줄은 몰랐다. 내가 이 영화를 〈메리와 맥스〉만큼이나 좋아하게 되리라는 건, 물론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메리처럼 친구가 없는 주인공 그레이스가 자신의 달팽이 실비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다른 곳으로 입양된 쌍둥이 오빠 길버트를 향한 그리움의 나날과 괴짜 할머니 핑키 덕분에 잠시 잊고 지낸 외로움의 시간이 담겨 있다. 실제로 감독이 20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은 펜팔 친구 덕분에 〈메리와 맥스〉를 생각해냈듯이, 매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도 멋진 어른으로 성장한 또 다른 친구를 생각하면서 〈달팽이의 회고록〉을 완성했다. “신맛 가득한 삶의 레몬을 톡 쏘는 청량감의 다디단 레모네이드로 바꾸는 법을 터득”한 그 친구가 곧 그레이스인 셈이다.
CG나 AI의 도움 없이 100% 수작업으로 완성한 이 영화의 엔딩크레디트에 이런 문장이 새겨졌다. “This film was made by human beings(이 영화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어디 영화뿐이겠는가.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아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유전적 수전증을 갖고 태어난 애덤 엘리엇 감독의 떨리는 손끝에서 삐뚤빼뚤 이상하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탄생하듯, 나도 누군가에게 부디 삐뚤빼뚤 이상할지언정 너무 밉지 않은 존재였으면.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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