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을 만드는 데 많은 재료가 필요치 않다…무관심이면 된다[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5. 5. 11.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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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54] 영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때로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보다 더 참혹한 현실을 다룬다. 이 코너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그렇다. 길을 잘못 든 아이에게서 부모를 빼앗고 이름마저 앗아간 채 아동노동을 강요하는 사회는 끔찍하다. 다만 관객이 이 영화를 끝까지 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건 따뜻한 화풍의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져 있어서다. 주인공뿐 아니라 악당도 친근한 이미지로 표현돼 있다. 실제 사람을 등장시킨 실사영화였다면 감상이 좀 더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놀이터에 모인 아이들이 입을 벌린 채 하늘에서 내리는 음식을 받아먹는 모습. 먹을 것이라곤 정어리밖에 없어 미식에 주린 아이들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IMDb]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2009)은 제목 그대로 하늘에서 음식이 비처럼 내리는 엉뚱한 상상을 유쾌하게 담았지만, 이걸 우리가 재밌게 볼 수 있는 건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고속으로 떨어지는 음식이 ‘폭신한’ 질감으로 땅과 부딪히게 하는 표현력 덕분에 심각한 문제를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사실성을 극대화한 실사영화였다면 하늘에서 추락하는 음식 때문에 사람들이 피 흘리며 죽어 나가는 모습을 봐야 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속에서 스파게티 허리케인이 도시를 휩쓰는 장면. 사람이 크게 다칠 만한 대재앙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선 받아들일 만하게 표현된다.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은 검붉은 피를 토하지 않는다. [IMDb]
그렇게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일종의 ‘캔디 코팅’하는 부분을 벗겨내고 나면 진짜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환경 오염과 현대사회의 과소비, 기술의 오용 등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오늘은 이 질문을 다뤄보고자 한다. 바로 ‘괴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무엇인가’란 물음이다.
가난한 내 고장, 자랑할 건 정어리뿐
이야기는 자랑할 건 정어리뿐인 가난한 고장 ‘꿀꺽퐁당섬’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섬의 주요 생산물인 정어리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잃어가면서 주민들은 매일 정어리 재고를 처리하느라 고통받는다. 풍족하지 않은 공동체였던 것이다.

비린 정어리에서 주민들을 구원해 보겠다고 등장한 게 주인공 플린트. 발명가인 그는 원숭이 생각 번역기, 다리 달린 TV 등을 만들어냈지만, 그 어떤 것도 성공적이지 않았다. 마을에선 그를 패배자 취급했고, 아버지 역시 성과를 못 만들어내는 아들에게 슬슬 지쳐가는 시점이었다.

플린트의 아버지(오른쪽)는 아들이 발명을 그만두고 자기 낚시용품점을 물려받길 바란다. [IMDb]
그러나 개중 가장 황당한 발상이었던 음식 복제기가 성공하면서 플린트 인생에 반전이 생긴다. 처음엔 치즈버거 복제에 성공해서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게 하더니, 치킨, 베이컨, 디저트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과연 이 음식의 안전성을 누가 입증할 수 있을지의 문제가 있었지만 주민들은 플린트를 대스타로 받들었다. 비린내 나는 정어리에 지쳤기 때문이다.
별 볼 일 없었던 플린트의 인생은 스타의 삶으로 바뀐다. [IMDb]
다만 아버지는 플린트의 음식 복제기를 마뜩잖게 여긴다. 매일 성실한 노동으로 하루하루 벌어 먹고살던 아버지에게 플린트의 발명품은 신기루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 아버지는 지금이라도 플린트가 다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길 원하고, 그 바람은 아들의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

꿀꺽퐁당섬을 부유한 도시로 만들어 자기 성과를 과시하고 싶었던 시장은 플린트의 마음에 있는 결핍을 읽어내고 그에게 접근한다. “나는 너를 내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는 시장의 말은 그가 플린트의 약한 부분을 정확히 파악했음을 보여준다. 권위자에게 인정받아본 경험이 없었던 플린트는 시장의 꼬임에 넘어가 도시 홍보에 기계를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더 높이 올라가는 데만 관심 있는 남자와 인정에 굶주린 청년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궁금하면 OTT에서 확인해보시길.

시장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기가 위해 확실한 치적을 쌓으려 한다. [IMDb]
(*아래 부분엔 영화의 끝부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플린트는 철없고 호기심 많은 발명가로 그려진다. 관객은 플린트가 전대미문의 스파게티 허리케인까지 해결해내며 영웅으로 떠오르길 응원하게 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으로 귀엽게 표현된 얼굴을 걷어내고 나면 그는 사실 이 영화 최대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여러 장면에서 시장이 가진 탐욕이 도시를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을 확인하고도 계속해서 시장과 협업했다. 그래서 도시는 파괴 직전까지 몰린다. 단지 플린트가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말미에 아버지는 아들을 사실 마음속으론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직접 말할 용기가 없어서 ‘원숭이 생각 번역기’의 힘을 빌린다. 그게 처음부터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네가 가진 추진력이 기특하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끈기도 칭찬하고 싶다. 그 한마디를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던 것이 ‘인정 괴물’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괴물을 만들고 싶다면 여러 재료를 섞으며 공들일 필요가 없다. 그저 당신이 마땅히 인정해줘야 할 그 사람의 요구에 무관심한 것으로 충분하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포스터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씨네프레소’는 OTT에서 감상 가능한 영화와 드라마를 리뷰하는 코너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 구독 버튼을 누르면 더 많은 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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