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언론'의 두 얼굴, 자회사·채널에선 '연예 렉카' 같았다

정민경, 노지민, 김예리, 윤유경 2025. 5. 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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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뉴스, 저널리즘의 종말 ③]11개 주요 신문·방송사 연예 전담 조직 현황 살펴보니
모회사 브랜드 업고 자극적 뉴스 '이중 구조'…"시장 논리와 분리된 윤리적 층위" 당부

[미디어오늘 정민경, 노지민, 김예리, 윤유경]

▲이미지 제작= 안혜나 편집기자.

유명인의 부고 뒤에 '언론이 죽였다'고 따라 붙는 지적이 더는 낯설지 않다. '사이버 렉카'를 엄중히 꾸짖는 보도 이면에 그 확성기로 역할해온 언론이 있다. 개인의 존엄을 지운 채 사생활 조각을 가십으로 짜맞춘 콘텐츠는 '기사'라는 외피를 쓰고 확산해왔다. 매체 환경이 급변하는 동안 '엇나간 연예뉴스'라는 사후 비판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선정적 연예뉴스가 생산되는 구조를 짚어보며 '답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본다. -편집자 주-

<김수현 “김새론 안고 잠들고파”>
<설리, SNS 방송 중 노브라 노출 사고로 이틀째 구설…네티즌 반응은>
<'섹션TV' 구하라, “소란 일으켜 죄송” 극단적 선택한 속사정은?>

유명 연예인 관련 논란이나 사생활 의혹을 자극적 제목을 붙여 다룬 위 사례들은 모두 MBC 자회사인 iMBC에서 생산한 기사들이다. 지난해 iMBC 연예부의 한 기자가 아이돌그룹 뉴진스 멤버 민지에 대한 저격성 기사를 반복적으로 게재해 논란이 되자, iMBC가 이례적으로 회사 명의 보도자료를 내어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뉴스데스크' 등 보도·시사 프로그램에서 강조해 온 정론 매체로서 MBC의 공익성에 비춰보면 포털에 유통되는 MBC연예 기사들이 주는 괴리가 적지 않다.

[관련 기사: 비방 시달리는 뉴진스 멤버에 '조롱성 제목' 논란…iMBC 기사 삭제]

MBC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3월31일 고 김새론 배우와 관련해 배우 김수현씨의 일방적 입장이 발표된 기자회견은 지상파 3사(KBS·MBC·SBS)와 보도전문채널(YTN·연합뉴스TV), 종합편성채널(JTBC·TV조선·채널A·MBN), 지역방송(OBS·KNN)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엠빅뉴스, iMBC연예, YTN star 등 언론사 자회사나 디지털 전용 채널을 포함한 경우도 19개에 이른다. 이를 두고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한국 언론의 연예 보도는 금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이를 견제할 공영방송 유튜브 채널까지 무비판적으로 가세하고 있으니 한탄할 노릇”이라 비판한 바 있다.

주요 방송사와 신문사 다수는 별도 채널이나 연예 뉴스 카테고리, 나아가 연예 콘텐츠를 집중생산하는 자회사를 두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5월 현재 지상파 3사와 보도전문채널 YTN, 주요 일간지 11개(경향신문·국민일보·동아일보·세계일보·서울신문·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한국일보·한국경제·매일경제)가 운영하는 연예 전담 조직을 조사했다.

▲주요 방송사와 일간지가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방식의 연예 전담 조직. 이미지 제작= 안혜나 편집기자.

MBC의 인터넷 서비스 자회사인 iMBC처럼 SBS는 자회사 SBSi에서 연예매체를 운영하고, 자회사 채널 SBS funE에서 연예 뉴스를 생산한다. KBS는 KBS스타연예라는 별도의 뉴스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YTN은 YTN star에서 연예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특수 관계사인 자매지 스포츠조선, 동아일보는 자회사인 스포츠동아, 세계일보는 자회사 스포츠월드를 두고 있다. 서울신문은 연예 사진이나 기사를 올리는 뉴스 브랜드 서울En외에, 자회사 TWIG24(트윅)를 통해서도 자극적인 기사를 생산한다. 주로 해외의 '엽기적' 토픽을 다루는 트윅의 경우 포털에 검색되지 않지만 구글 뉴스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경향신문은 스포츠경향을 통해 연예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스포츠경향 기사 끌어 경향신문 플랫폼에…“진보 이슈는 조회수 늘 갇혀있다”

자회사나 연예 전담 매체·부서들은 모회사 논조와 무관하게 클릭 수 확보에 집중하는 한편, 본사의 신뢰도와 영향력을 배경 삼아 포털에서 콘텐츠 유통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중앙일간지와 연예 스포츠 분야에 특화한 자매지가 있는 경우 두드러진다.

▲스포츠조선의 고 김새론 배우 관련 기사들 제목. 상위 2건의 기사는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다.

조선일보 자매지인 스포츠조선의 경우 고 김새론 배우의 생전 논란부터 그가 사망한 뒤에 이르기까지 선정적 제목을 붙인 기사를 생산해 왔다. 2023년 3월 고인이 생전 생계를 위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한 사진이 공개되자 보도한 <'음주운전' 김새론, 알바 인증했다가 역풍…동정론 바랐나> 기사가 대표적이다. 지난 1월 고인의 결혼설이 불거진 시기에는 개인 SNS를 기사 소재로 삼으면서 <“하다 하다 '결혼' 어그로까지”…김새론, 자중할 수 없는 '관종' 폭주는 언제쯤 멈출까> 제목을 달았다. 고인이 사망한 뒤인 지난 3월, 김수현 배우가 과거 미성년자였던 고인과 교제했다는 유족 측 기자회견이 있던 날 스포츠조선에선 <“뽀뽀♥안고 잘래” 김수현, 17살 김새론에 보낸 카톡 공개> 제목의 기사가 나갔다.

경향신문과 스포츠경향 관계도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경향신문은 '온라인 린치' '여성혐오' 등 보도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등 저널리즘 윤리를 중시하는 매체이지만, 스포츠경향에선 이런 지적에 반하는 행태가 반복됐다. 일례로 2022년 인플루언서 프리지아 관련 보도에서 스포츠경향은 '가짜 명품', '화장발', '아버지 직업' 등 자극적 소재를 거듭 단독 보도해 사이버 렉카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관련 기사: 경향신문과 스포츠경향, 같은 편집국 다른 보도]

▲2024년 12월 경향신문 독립언론실천위원회와 국장단 간담회에서 언급된 기사 사례

이 문제는 사내에서도 지적됐다. 지난해 12월 경향신문 독립언론실천위원회(독실위)와 국장단 간담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한 독실위원은 <미스코리아 출신 로드걸 사망> 같은 기사가 경향신문 네이버 메인뉴스에 오랜 시간 걸려있고, <변희재 “방시혁 뉴진스 죽이기, 하이브 가치 박살...주주 손배 청구해야”> 류의 기사가 경향신문 플랫폼을 통해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덕균 경향신문 편집콘텐츠 유통부문장은 “조회수를 신경 써야 하는 편집 입장에서 걸만한 기사라 생각하고 '스포츠경향'에서 끌어와 쓴 것”이라 밝힌 뒤 “전체적으로 정치 등 무거운 주제 뉴스 소비 트렌드가 약화되고 연예 기사, 읽을거리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가 주요하게 다루는 진보 이슈는 늘 박스권에 조회수가 갇혀 있다”고 답했다. 진보적 정론을 표방하는 매체도 자극적 콘텐츠를 배제하지 못하는 딜레마를 보여준 장면이다.

MBC 관계자 “연예 이슈 기사 가치가 낮다는 인식에는 동의하기 어려워”

이런 비판에도 왜 현실은 바뀌지 않을까. 업계에선 연예 기사가 사회적 이슈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고, 모회사와 자회사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유튜브 iMBC연예 채널 영상들

MBC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iMBC는 상장된 자회사로 다양한 성격의 채널이 있고, 본사 뉴스 제작의 기준으로 자회사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건 맞지 않다. 디지털뉴스룸에서 연예 관련 기사는 전체 생산 기사 가운데 극히 일부”라며 “디지털뉴스룸에서 생산하는 연예 관련 기사는 전체 생산량의 1~2%도 안 되는 수준으로, 연예 이슈는 저널리즘이 다룰 영역이 아니라거나, 기사 가치가 낮다는 인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불가피한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다는 인식도 있다. 한 종합편성채널 기자는 “핵심은 더 이상 메인뉴스로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없고, 새로운 광고도 발굴하기 어려우며, 수익화나 조회수로 실적을 내는 건 유튜브 영역밖에 없기 때문”이라면서도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청률이나 조회수를 담보하는 부서나 프로그램이 따로 있기 때문에, 오히려 메인뉴스를 제작하는 기자들에게는 조회수 등 실적 부담이 덜어지는 경향성도 있다”고 털어놨다.

▲유튜브 YTN star 영상들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제작하거나 편성하는 프로그램과 뉴스의 간극도 존재한다. 최근 성폭력 피해자의 동의 없이 그의 녹취를 공개해 비판받은 JTBC '사건반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지난달 29일 143엔터 이용학 대표 강제추행 혐의 고소 기자회견에 나선 피해자 어머니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JTBC '사건반장'이 동의 없는 피해자 녹취 공개에 더해, 강제추행 사건의 계기를 피해자가 제공한 것처럼 보도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아이돌 꿈꿨던 아이...이제는 지키고 싶다” 어머니가 나섰다]

'사건반장'의 선정적 보도는 이미 오랜 기간 지적됐다. 지난 2월 JTBC 시청자위원회에선 '사건반장'이 또 다른 미성년자 폭행 사건 보도에서 폭행 장면을 반복적으로 노출해 피해자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김필규 JTBC 취재담당 부국장이 “방심위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있고 보도국 내에서 CCTV 활용에 대한 내부 기준안을 마련하려고 한다. 특히 사건 보도에 있어 시청자들에게 너무 자극적이지 않도록, 당사자나 유가족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한다”고 답한 바 있다.

JTBC '사건반장'의 양원보 기자는 본 보도 이후 “성추행 관련 보도에 있어 미흡한 점이 있다는 지적은 이해할 수 있지만 '연예 렉카'같은 보도는 평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양 기자는 “관련 보도를 하겠다는 내용 자체는 피해 당사자의 동의를 받았다. 다만 보도 전날부터 당사자와 연락이 끊겨 녹취와 관련한 부분은 다른 멤버에게 전달해달라고 했다”며 “다른 멤버들 역시 피해자라고 생각해서 사건이 묻히지 않게 하기 위해 방송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2024년 11월22일 JTBC '사건반장' 일부 갈무리

“자회사라 해도 로고가 붙는 이상, 모회사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뉴스는 점잖게, 유튜브나 온라인은 자극적으로'라는 내부 분업 논리가 통용되는 현실에 전문가들은 더욱 엄격한 책임 규명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재상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지상파 방송사는 메인뉴스에선 심의를 엄격하게 적용하면서도, 유튜브나 자회사 콘텐츠에는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는 공적 책임을 외주화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지상파 브랜드를 활용한 신뢰 전가 구조”라며 “디지털 채널은 편집 기준이나 책임 주체가 모호해 자극적인 콘텐츠가 반복 생산되기 쉬운 구조다. 자회사나 유튜브 채널에도 동일하거나 그에 준하는 책임 기준을 적용하고, 편집 책임의 투명성을 확보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조회수 중심의 보도 구조는 결국 방송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했다.

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는 근본적인 윤리 감각의 붕괴를 지적했다. 그는 “예전엔 메이저 언론이 연예성 유튜브를 운영하면 부끄러워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한다. 자회사라 해도 로고가 붙는 이상, 모회사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보도 활동과 수익 활동 사이엔 금도가 필요하다. 언론은 시장 논리와 분리된 윤리적 층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는 “자회사냐 아니냐를 시청자들은 구분하지 않는다. 브랜드가 책임의 범위를 규정한다. MBC든 KBS든, 로고가 붙었다면 그 책임은 결국 모회사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콘텐츠가 어떤 채널에서 유통되든 언론사 로고가 닿는 이상, 책임을 외주화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 ① 유튜브, 연예뉴스 핵심 취재원이 되다]
[관련기사 ② 쯔양 “온라인 공간 안전해질 수 있도록 언론 역할 기대”]
[관련기사 ③ '정론 언론'의 두 얼굴, 자회사·채널에선 '연예 렉카' 같았다]
[관련기사 ④ “매일 조회수 순위” 한 달에 기사 수백 건, 취재 윤리는 사치]

[관련기사 ⑤ 연예뉴스 보도 가이드라인부터 기사 건수 제한까지… 대안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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