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 속 인셀 테러, 국가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평범한 이웃, 유럽]

취리히·김진경 통신원 2025. 5. 1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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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소년의 시간〉은 ‘인셀’ 현상을 핍진하게 그려냈다. 드라마를 넘어 이제 각국에서 인셀 현상은 정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의 4부작 시리즈 〈소년의 시간(Adolescence)〉은 13세 소년이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을 지목해 ‘인셀’이라고 놀린 같은 반 여학생을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을 다룬다. 픽션이지만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낸 이 드라마를 본 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십 대인 딸과 곧 십 대가 될 아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들이 이런 일에 엮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소년의 시간〉은 출시 약 3주 만에 전 세계 조회수 1억 회를 넘겼고, 공개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넷플릭스 역대 톱 5 시리즈에 들어갔다. 작품의 배경이 된 영국의 총리 키어 스타머는 자신도 이 드라마를 봤다며, “어린 소년들의 급진화라는 급부상하는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드라마의 뜨거운 인기는 스마트폰·소셜미디어·인플루언서, 그리고 인셀 같은 온갖 자극에 노출된 아이들과 부모가 그 자극의 실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의 방증이다.

대체 인셀이란 무엇인가. 이 드라마를 통해 ‘인셀(incel)’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북미나 유럽에서는 이미 꽤 알려진 현상이다. 이제는 온라인 트렌드를 넘어 정부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2021년에 내놓은 인셀 현상 분석 보고서로, 유럽연합(EU) 내에서 관련 내용으로 나온 최초의 공식 연구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셀은 ‘매노스피어(manosphere)’라 불리는 더 큰 집단의 한 갈래에 속한다. 매노스피어란 ‘다양한 수준의 여성혐오 및 폭력에 관여하는, 주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반여성 커뮤니티’다. 여기에는 네 가지 하위 영역이 있다. 첫째, 남성인권활동가(MRA:Men’s Rights Activists)는 인터넷 등장 전부터 존재해왔으며 법적·정치적 분야에서 남성의 권리에 관심을 갖는다. 이혼이나 양육비 등의 안건에서 남성이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둘째, 자기 길을 가는 남성(믹타우 MGTOW:Men Going Their Own Way)은 여성과의 상호작용 자체를 회피한다. 이들은 미투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을 꽃뱀으로 본다. 또 ‘아내가 아닌 여성과는 절대 단둘이서 식사하지 않는다’고 했던 미국 전직 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이름을 딴 ‘펜스룰’을 신봉한다. 셋째, 픽업 아티스트(Pickup Artist)는 게임처럼 여성을 조종해 원하는 대로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넷째, 인셀은 ‘비자발적 독신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로, 자신이 매력이 없어서 여성과 성관계를 맺지 못한다고 믿는 남성을 뜻한다.

여자 앞에서 자신감 없는 게 인셀의 전부는 아니다. 이들이 공유하는 신념 체계를 자세히 살펴보자. 인셀은 대부분의 여성이 신체적으로 매력적인 소수의 남성과만 관계를 맺어(80대 20 법칙) 자신들이 기회를 ‘빼앗겼다고’ 본다. 그것은 여성이 자신보다 나은 남성을 찾는 상위 결합(hypergamy)을 하도록 진화했고, 그러한 상위 결합 행태를 사회가 통제하지 않고 여성에게 성적 자유와 권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라는 게 인셀의 생각이다. 남성에게 불리한 이 같은 현실 구조에 눈을 뜨면 ‘레드필(red pill)’이 되는데, 레드필 중 소수는 운동이나 성형수술 등으로 외모를 개선하는 ‘룩스맥싱(looksmaxxing)’을 통해 인셀 상태에서 벗어나는 ‘상승(ascend)’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유전적·환경적 한계로 인해 현실을 바꿀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블랙필(black pill)’이라는 ‘진정한 인셀’이 된다. 이들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누워서 죽을(썩을) 때만 기다리는(LDAR:Lay Down And Rot) 자포자기 상태에 머문다. ‘필(pill)’이라는 비유는 영화 〈매트릭스〉(1999)에서 주인공 네오가 ‘블루필’을 먹고 가상현실에 안주하며 살지, 아니면 ‘레드필’을 먹고 진실을 발견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장면에서 가져온 것이다(인셀 커뮤니티에서 ‘필’은 약 자체보다는 약을 먹은 사람의 상태를 뜻한다).

인셀 용어

■ 80대 20 법칙 : 여성의 80%가 상위 20%의 남성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이론

■ 알파(ALPHA) : 신체적으로 매력적이며 사회적 지위의 최상위에 있는 남자

■ 상승(ASCEND) : 인셀 신분에서 벗어나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 것

■ 블랙필(BLACK PILL) : 개인의 신체적 매력이 출생 시 이미 결정되었고, 스스로가 실패한 독신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 패배주의적 관점을 지닌 인셀

■ 블루필(BLUE PILL) : 남성에게 불리한 사회구조를 깨닫지 못하고 행복한 무지 상태에 머물러 있는 남성

■ 레드필(RED PILL) : 남성보다 여성에게 유리한 현실 세계에 눈을 뜬 개인

■ 채드(CHAD) : 여성에게 인기 있는 알파 남성으로, 전형적인 ‘아리아인’의 외모, 유전자, 뼈 구조, 머리카락, 키 등을 가진 사람

■ 페모이드(FEMOID/FOID) : 여자 휴머노이드(FEMALE HUMANOID)의 약칭. ‘여성’이라는 단어가 너무 인간적이라며 인셀들이 여성 대신 사용하는 용어

■ 고잉 이알(GOING ER)  : 인셀들의 영웅인 엘리엇 로저(ER)를 뒤따른다는 의미로, 대량 살인이나 자살 행위를 부추기는 의미로 쓰임

위 결합(HYPERGAMY) : 여성이 가장 매력적인 알파 남성을 찾아 ‘상위층과 결혼’하도록 진화적으로 미리 정해져 있다는 믿음

■ LDAR : LAY DOWN AND ROT. 자기계발이나 ‘룩스맥싱’이 무의미하며 개인의 타고난 상황은 개선될 수 없으니 누워서 썩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

■ 룩스맥싱(LOOKSMAXXING)  : 인셀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외모를 개선시키는 행위

■ 매노스피어(MANOSPHERE) : 온라인에서 반페미니스트, 여성혐오, 친남성 등을 지향하는 느슨한 집단. 남성인권활동가(MRA), 자기 길을 가는 남성(MGTOW), 픽업 아티스트, 인셀의 네 가지 영역으로 나뉨

■ 믹타우(MGTOW) : 남성이 여성과의 낭만적인 관계를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집단. 대리모를 통한 경우 외에는 자녀를 갖지 않을 것과 엄격한 성별 위계를 주장.

■ 남성인권활동가(MRA) : 법적·정치적 분야에서 남성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며 이혼이나 양육비 등의 안건에서 남성이 불리하다고 주장하는 집단

유럽위원회는 위 보고서에서 인셀 현상이 “공공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적시했다. 인셀의 세계관에는 여성혐오가 기본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응당 누려야 할 성관계라는 권리를 여성이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혐오의 바탕이 됐다. 인셀은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는 여성을 구멍·화장실·페모이드(femoid:female humanoid) 같은 멸칭으로 부르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간도 정당화한다. 잘못은 자신을 거부한 여성에게 있다. 〈소년의 시간〉에서 제이미는 왜 아버지에게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했을까. 제이미는 살해당한 케이티가 피해자가 아니라, 거부당한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밖으로 나가보자. 2009년 8월4일, 48세 조지 소디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한 피트니스센터의 여성 에어로빅 수업에 들어가 조명을 끈 뒤 총 두 자루를 꺼내들었다. 그의 총격으로 여성 3명이 죽고 9명이 다쳤다. 조사 결과 소디니는 인셀 및 픽업 아티스트 커뮤니티 회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2014년 5월23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에서 22세 엘리엇 로저는 룸메이트들을 칼로 살해한 다음 여학생 클럽하우스로 가서 지나가는 여학생들에게 총을 쏘았다. 로저는 모두 6명을 죽이고 14명에게 상해를 입힌 뒤 자살했다. 사건 당일 아침 그는 아버지를 포함한 여러 사람에게 이메일로 10만7000단어짜리 선언문 ‘나의 뒤틀린 세상(My Twisted World)’을 보냈고, 총격 직전에는 유튜브에 ‘응징(Retribution)’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날 거부했으니 내가 피해자?

로저는 자신이 22세임에도 여전히 성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며, 곧 행할 공격은 자신을 거절한 이들에 대한 복수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외로움·거절, 그리고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고, ‘인간 암컷들이 내 안에 있는 가치를 보지 못’한 탓에 불행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인셀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수많은 기록도 나중에 확인됐다. 로저의 범행은 여러 인셀 커뮤니티에서 ‘베타 업라이징(beta uprising)’, 즉 ‘성적으로 실패한 남성(베타)이 채드(Chad:인기 많은 남성)와 스테이시(Stacy:인기 많은 여성)를 무장 반란으로 공격하는 행위’로 칭송 받았다. 인셀 사이에서 쓰이는 ‘고 이알(go ER)’이라는 표현은 엘리엇 로저(ER)의 범행을 따라 하자는 뜻이다. 2018년 4월23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빌린 밴을 몰고 보행자를 향해 돌진해 여성 8명 등 총 10명을 살해한 25세 알렉 미나시안은 공격 직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엘리엇 로저를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인셀의 반란이 시작됐다. 우리는 모든 채드와 스테이시들을 타도할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사 당국은 이런 유의 범행들을 예측 불가능하고 맥락 없는 일회성 사건으로 취급했다. 가해자들이 여성 일반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표출해도, 인셀이라는 용어로 자신을 규정해도, 기껏해야 ‘정신질환자’의 범죄로 분류되고 말았다. 미나시안 사건 당시 랠프 구달 캐나다 공공안전 장관은 “이 사건은 동기가 불분명하고 계획된 테러라 볼 수 없다”라고 했다. 당국의 접근법에 변화가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2020년 2월24일, 캐나다 토론토의 한 마사지 업소에서 17세 오구잔 세르트가 일면식도 없었던 여성 직원 한 명을 40㎝ 길이의 칼로 42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세르트의 주머니에서 여성혐오 메모가 발견됐고, 그가 사용한 칼에는 “THOT 살인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THOT’란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이라는 뜻의 인셀 용어다. 2023년 마무리된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세르트에게 적용된 혐의는 테러였다. 캐나다에서 여성 살인사건이 테러 행위로 기소된 최초의 사례다. 캐나다에서는 ‘공격자가 정치적·종교적, 또는 사회적 동기를 가지고 있어야’ 테러로 규정하는데, 법원은 “세르트가 (범죄행위를 통해) 여성혐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으므로” 테러 행위로 간주된다고 밝혔다.

2024년 7월, 영국 어린이 댄스 교실에서 10대 남성의 흉기 난동으로 사망한 소녀들을 추모하고 있다. ⓒEPA

‘남성성’ 등급 정하는 문화권

실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인셀 범죄는 그간 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유럽에서 온라인 인셀 커뮤니티가 급성장하는 추세가 확인되자 각국은 ‘인셀 테러’ 예방을 위해 고심 중이다. 스위스 정부는 2023년 1월 ‘급진화와 폭력적 극단주의 예방을 위한 액션플랜’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스위스 연방 경찰은 인셀의 급진화 움직임을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인셀 현상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인셀이 스위스 경찰의 주요 감시 대상에 처음으로 포함된 것이다. 액션플랜에서 주목할 부분은 급진화나 극단주의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각 성별이 어떤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지, 문화권마다 각 성별이 부여받는 규범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뿐 아니라 그 사람이 자란 배경도 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외모나 학력, 재산에 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남성성’의 등급을 정하는 문화권에서는 스스로를 인셀로 구분 짓는 남성이 늘어날 수 있다.

영국 작가 로라 베이츠는 인셀 현상을 분석한 저서 〈인셀 테러〉(2023)에서 이렇게 썼다.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남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우리 가정에 있는 소년과 남성들을 압박하여 비현실적이고 건강하지 못하며 지속 가능하지 않은 관념에 순응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을 설명하는 것이다. 억압적인 성별 고정관념은 남성들이 사는 사회뿐 아니라 각각의 남성들에게도 해롭다. 이 억압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늘날 소년들에게는 생사가 걸려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직면하기를 거부하고 피해 다닌다면 이 아이들은 우리가 내버려둔 틈새로 우르르 추락할 것이다.”

이 밖에도 짚어볼 요소들이 많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여성혐오가 넘쳐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내버려둘 것인가(인셀의 초기 배양지였던 레딧(reddit)은 인셀 커뮤니티를 여러 차례 금지했고 이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학교 교육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영국은 2021년부터 학교에서 교사들이 인셀 현상을 다루도록 권장하고 있다), 급격히 발달하는 AI 기술(AI 애인)은 인간 사이의 관계 맺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등. 〈소년의 시간〉 속 제이미의 부모처럼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후회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취리히·김진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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