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올게”…나도 모르게 낯선 도시에게 말했다 [.txt]

한겨레 2025. 5. 1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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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한의 공간이 전하는 말
햇빛이 무엇인지 알려준 공동 정원
다시 가본 시애틀의 3층 모서리 집
낯선 도시에서 보낸 익숙한 하루
낯선 도시에 마음을 열게 해준, 시애틀 가스공장 공원. 이른 봄 이 공원은 철새 캐나다기러기들의 집이자 놀이터다. 사진 배정한

서둘러 학회 일정을 마치고 그 도시로 떠나는 저녁 기차에 몸을 실었다. 잠시 살았지만, 늘 내 안에 거주하는 도시, 시애틀. 차창을 때려대는 봄비에 캄캄한 밤 풍경이 역동했다. 절묘한 비율로 혼합된 설렘과 걱정. 이제는 조금 낯설겠지. 내 기억 속의 도시와 다르지는 않을까. 도시가 그때처럼 나를 반길까. 나의 그림자 같은 파편이 거기 있을까.

바다를 끼고 호수를 품고 있는 도시. 10월부터 4월까지 매일 비가 내리지만, 그런 만큼 하늘이 깨끗하고 구름은 아름답다. 커피가 매력적이고, 맥주는 환상적이다. 그러나 시애틀이 내 마음에 깊이 스며든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곳에서의 일년,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나의 공간을 자세히 살피고 나의 시간을 느릿하게 가꾸며 일상을 돌봤다.

내 거처는 좁고 낡은 아파트였지만, 천장이 아주 높았다. 벽과 천장의 접선을 따라 가로로 긴 창이 있었다. 계절마다, 아니 매일 매시간,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다른 형태의 도형을 빚어냈다. 소박한 공동 정원이 딸려 있었다. 볕의 양에 따라 나무와 풀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처음 알았다. 나무들의 이름이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한강의 새 책 ‘빛과 실’(문학과지성사, 2025)에 실린 ‘북향 정원’의 한 구절이 꼭 그때 내 마음 같다. “햇빛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 정원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딱 하루가 주어졌다. 그 시절의 일주일치 일상을 하루에 다 살아보자. 학교에서 시작했다. 그때보다 반들반들 닳은 길을 걷는 나에게 반응하며 공간은 계속 장소를 만들어냈다. 멀리 만년설 덮인 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곧게 낸 경관 축은 여전히 장쾌했다. 하늘을 낮게 덮은 구름과 설산이 뒤섞여 산맥처럼, 파도처럼 풍경을 덮쳐 왔다. 마침 캠퍼스 중정에 벚꽃이 만개한 날이라 이 도시에 보기 힘든 밀도의 군중이 봄의 귀환을 자축하고 있었다.

도시의 주름과 흐름이 원형 공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퍼져나간다. 벨뷰 다운타운 공원. 벨뷰 시청 제공

271번 버스를 타고 내가 살던 동네로 향했다. 바다만큼 넓은 호수를 건너 그때 그 정류장에 내렸다. 반사적으로 마트에 들어가 벽면 가득한 맥주 라인업을 구경했다. 걱정 없이 마음껏 길을 잃으며 도시의 주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단골 피자집이 등장했다. 토핑을 뺀 치즈피자를 시키고 느끼함을 핑계로 맥주 한 병을 보탰다. 그물처럼 얽힌 골목에서 몇 차례 방향을 꺾으니 가성비 좋은 멕시코 식당. 부리토를 싸 들고 동네 공원에 갔다. 극도로 미니멀한 형태의 공원이다. 넓은 잔디밭에 정확하게 원을 그리는 산책로, 그 길을 따라가는 수로, 그리고 물길에 거주하는 오리들이 전부다. 도시의 흐름이 공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퍼져나간다. 공원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눈에 보인다. 그들도 나를 볼 수 있다. 반원만큼만 산책로를 돌고 작은 벤치에 앉았다. 서로 노출되어 묘한 유대감이 생기는 공원, 혼자 앉아 점심을 먹어도 고독하지 않다.

두 아이가 즐겨 가던 아이스크림 가게는 문을 닫았지만, 오래된 빵집 앞 대기 줄은 여전히 길었다. 갓 나온 크루아상과 진한 커피를 양손에 나눠 들고 큰길가로 나섰다. 쇼핑몰 한구석에 의외로 내밀한 공간이 있다. 푹신한 소파 세트와 넓은 테이블이 있는 이곳을 내 집 거실처럼 쓰곤 했다. 닳아서 더 매끈해진 소파에 파묻혀 그 시절 사진들을 뒤지다 단잠에 빠졌다. 다시 대로변을 걷다 시립미술관에 들어갔다. 검박한 건물이지만 ‘빛의 시인’이라 불리는 스티븐 홀 작품이다. 지그재그 모양 천창으로 자연광이 예민하게 스며들어 내부를 밝힌다. 약한 햇빛조차 소중히 나눠 쓰는 중정에 앉아 오래된 기억에 빛을 채웠다.

내가 오기를 기다린, 그리고 내가 떠나도 나를 기다릴, 친구 같은 집. “금방 올게.” 사진 배정한

오후의 마지막 햇살이 도시를 감싸기 시작했다. 종일 미뤄둔 기억 속의 집에 가야 할 시간. 매일 들르던 가게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매운맛 과자와 내가 좋아하는 땅콩버터 초콜릿을 봉지에 담았다. 다리가 허락하는 가장 느린 속도로 걸음을 옮겨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모퉁이를 돌자 그 집과 그 정원이 등장했다. 히샴 마타르의 문장을 빌린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가 오기를 내내 기다린, 그리고 우리가 떠나도 계속 우리를 기다릴, 우리의 공간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시에나에서의 한 달’, 열화당, 2024)

훌쩍 자란 나무들 사이로 내가 오기를 기다린 3층 모서리 집을 한참 바라봤다. 그때의 나만큼 젊은 한 남자가 베란다로 나왔다. 내가 정원을 내려다보던 집에서 그가 정원을 내려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나의 긴 시선에 그가 뭔가 말했다. 나는 오래전에 내가 그 집에 살았다고 답했고, 우리는 어색한 미소로 인사했다. “또 올게.” 낮게 혼잣말을 뱉으며 떠났다. 서울로 돌아와 한강의 ‘빛과 실’ 속 ‘정원 일기’에서 비슷한 독백을 발견하고서야 마음이 가라앉았다. “집을 나서면서 나도 모르게 ‘금방 올게’라고 말했다. 집이 친구 같다.”

마음이 급해졌다. 일주일치 일상을 완성하려면 아직 도서관과 공원 한 곳이 남았다. 걸어서 15분 걸리는 공립도서관으로 뛰었다. 큰길을 건너는 보행교가 없어졌다. 다리 위에서 조감하는 도시 풍경을 볼 수 없었다. 이 도서관은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아이들의 공부방이며 노숙인들이 긴 하루를 보내는 곳. 문 닫기 10분 전, 짐을 꾸려 저녁 거처로 떠나는 이들로 분주했다. 나의 그림자가 남아 있을 것 같은 자리를 멀리서 확인하고, 공원행 버스에 올랐다.

배정한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

호숫가 옛 공장 터의 그 공원은 낯선 도시에 마음을 열게 해주었던, 친구 같은 장소다. 공원 언덕에서 일몰에 취해 하루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이미 어둠이 짙어지고 빗줄기가 거세졌다. 결국 공원은 다음날로 미뤘다. 느린 걸음으로 아침 언덕에 올라 도시의 힘찬 스카이라인을 마주하자 비구름 덮인 하늘이 거짓말처럼 열렸다. 아침부터 문을 연 근처 양조장에서 노을 대신 맥주 한잔을 들이켜고 도시를 떠났다. 금방 올게.

배정한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공원의 위로’ 저자

* 환경미학자이자 조경비평가인 배정한이 일상의 도시, 공간, 장소, 풍경에 얽힌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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