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의 유령-미국 관세 정책의 뿌리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S&P글로벌 수석 애널리스트 2025. 5. 10.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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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Tech Powers]'배터리 전쟁' 저자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고정 칼럼
<20>해밀턴의 유령: 미국 관세 정책의 뿌리


최근 많은 언론과 분석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의 맥락에서 해석한다. 그러나 이번 칼럼에서는 이러한 접근과는 다른 시각을 제안하고자 한다. 지금 벌어지는 현상 자체를 해석하려 하기보다, 미국 내 시장 보호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살펴봄으로써 현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정책에 대해 가지는 인식과 그 정서의 역사적 배경을 조명하는 방식이다.

해밀턴의 보호무역정책 vs 제퍼슨의 자유무역주의

미국의 작가이자 학자인 마이클 린드는 그의 저서들에서 미국의 역사를 두 개의 거대한 상반된 경제 사상이 충돌하고 긴장해 온 역사로 설명한다. 한쪽에는 보호무역, 산업 정책, 농업보다 산업에 중점을 두며 국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을 지지했던 알렉산더 해밀턴이 있다. 반대편에는 국가 개입 없이 자유시장 질서를 중시했던 토머스 제퍼슨이 자리한다.

오늘날 해밀턴의 사상은 제퍼슨의 사상을 대신해 미국 무역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점은 관세 정책이 역사적으로 대통령이 아닌 의회의 특권이었다는 점이다. 미국 헌법을 보면, 세금과 관세를 결정하는 것은 의회로 명시돼 있다. 이는 결코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의회가 관세 관리에 비효율적이라 판단하고, 이를 근거로 직접적인 통제권을 행사하려 했다.

해밀턴은 어릴 때부터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재능을 갖춘 비범한 인물이었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이 태어난 카리브해 지역에서 지역 상인들을 설득해 뉴욕 유학 자금을 지원받았고, 졸업 후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졸업 대신 군에 입대했고, 빠르게 진급하며 워싱턴 장군의 보좌관이 됐다. 그는 영향력 있는 뉴욕 상인의 딸과 결혼하면서 상류층 사회에 진입했다. 이후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자, 워싱턴은 그의 공로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해밀턴을 초대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다.

해밀턴은 영국과의 독립전쟁 후 비어 버린 정부의 재정 상태를 새로운 국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로 봤다. 해밀턴 이전에는 각 주 (州)가 주별로 부채를 지고 책임졌다. 해밀턴은 국가 차원으로 부채를 통합하고 즉시 이를 상환하려고 노력했으며, 곧바로 새로운 채권을 발행했다. 해밀턴은 국가의 부채가 지나치게 크지만 않다면, 이 신생 국가와 그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그의 두 번째 주요 관심사는 산업 정책이었다. 해밀턴은 미국과 영국 간의 다음 전쟁이 임박했다고 보았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미국이 잘 발달된 국내 산업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세는 해밀턴의 산업 정책에서 핵심적인 요소였다. 농업 중심의 미국, 산업 중심의 영국이라는 경제 모델로는 미국이 다음 전쟁에서 승리할 만큼의 충분한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고 해밀턴은 봤다. 따라서 그는 미국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며, 전체 경제를 더 높은 부가가치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해 관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유무역은 영국 같은 산업 강국들과 미국의 발전 수준이 동등할 때야 가능한 다음 단계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해밀턴은 또한 산업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보조금, 세금 감면, 강력한 지식재산권 보호 등도 찬성했다. 실제로 그의 접근법은 옳았던 것으로 증명됐다.19세기 말 미국은 농업 중심 국가에서 해밀턴의 사상적 영향 아래 산업 강국으로 탈바꿈했다.

제퍼슨의 견해는 달랐다. 그는 자유 시장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농업, 가족 사업에 기반한 경제도 신뢰했다. 당시 미국의 정착민들은 영국과의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경제는 단지 농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수출 지향적이기도 했다. 제퍼슨은 이 모델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다른 수출 시장을 찾는 일이었다. 미국인들은 이를 시도했지만, 영국은 항로법(Navigation Act)을 발효해 미국 식민지에서 상품을 실은 모든 선박이 먼저 영국 항구에 도착하도록 강제했다. 영국은 미국과의 무역 독점권을 유지하고, 미국 상품을 다른 유럽 국가로 재수출해 이익을 얻을 기회를 유지하고자 했다. 제퍼슨은 영국을 중개자로 배제할 경우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 기반의 경제를 지지했다.

미국 건국 초기 핵심 재정정책 수단 '관세'
해밀턴이 제안한 관세는 미국 재정정책의 초기 수단 중 하나였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에서 재정적인 이유로 쉽게 패배할 뻔했다. 미국인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재정을 보충하고 부족해지지 않도록 하려면 더 많은 세금이 필요했다. 관세, 즉 수입세는 그 단순성 덕분에 그들의 관점에서 완벽한 세금이었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은 각 주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크고 복잡해 소득세와 같은 방식으로 효과적인 재정정책을 도입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세금은 세율과 과세기준을 두고 주들 간의 갈등을 불러 일으켜, 새로 결성된 연방을 빠르게 분열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반면 관세는 그렇게 강한 반감을 일으키지 않았다.

관세는 새로 탄생한 국가가 징수하기에도 쉬웠다. 방대한 행정 조직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입 물품에 대해 각 항구에서 간단히 징수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국과 역사적으로 연관된 제퍼슨의 자유무역 사상이 해밀턴의 보호무역주의적 접근에 밀렸다. 그러나 제퍼슨의 자유무역 사상을 지지했던 남부 주들은 새로운 관세 정책에 불만을 가졌다. 남부 주들의 입장에서는 산업화를 급히 추진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경제는 대부분 노예제와 대농장에 기반하고 있었다. 따라서 남부 주들은 비용이나 규모로 하는 경쟁이라면, 심지어 전세계적인 수준에서의 경쟁일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유무역도 꺼릴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부와 북부가 관세를 바라보는 상반된 태도는 결국 남북전쟁으로 이어진 갈등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됐다. 해밀턴은 아마 남부의 경제적 주장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초점은 달랐다. 그는 영국과 또다시 전쟁이 벌어질 경우, 전쟁의 승패를 선박과 총이 결정할 거라 봤다. 그래서 그는 관세, 보호무역, 그리고 미국 산업 기반의 육성을 위해 싸웠다. 해밀턴은 영국과의 또 다른 전쟁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 봤다. 그는 영국이 미국이라는 옛 식민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미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결국 패권국과 신흥 강국 간의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해밀턴이 옳았다. 1812년, 미국은 다시 한 번 영국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이 '제2차 독립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승리했지만, 과정에서 손실도 있었다. 이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는 워싱턴 D.C.가 불에 탄 사실이다. 해밀턴의 관세 정책은 제2차 독립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노예 제도의 폐지에도 기여했다. 만약 그 당시 미국이 자유무역 정책을 고수했다면, 경제 성장을 이끄는 모델로서 면화와 담배 농업에 기반을 둔 경제 모델이 좋은 대안으로 여겨졌을 것이며, 이는 아마도 노예 제도의 폐지를 더 오래 지연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 미국 엘리트들 사이에서 관세에 대한 감정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현재의 글로벌 안보 상황과 미중 경쟁과의 유사점이 그려질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미국인 마크 트웨인이 말했듯이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자주 운율을 따른다." 즉, 역사적 패턴이 현재의 사건과 비슷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는 경고다. 직접적인 유사성을 가정하고 고유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는 게 대개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칼럼에서 표현된 견해와 의견은 전적으로 필자 개인의 것이며 소속회사의 것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필자와는 Twitter에서 @LithiumResearch를 팔로우하거나 hitechcolumn@gmail.com으로 연락할 수 있습니다.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S&P글로벌 수석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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