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수조 투자보다 시급한 규제 해소

황정일 2025. 5. 1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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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 경제선임기자
일은 없는데 꼬박꼬박 월급날은 돌아오고, 납품일 때문에 야근이라도 하려고 하면 주 52시간제가 발목을 잡는다. 공장에서 사고 나면 교도소행이고, 이를 막으려면 안전관리자를 둬야 한다.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자영업자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차기 정부에 가장 바라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규제 해소’다.

특정 분야에 집중된 이야기가 아니다. 치킨집 사장부터 대기업 오너까지, 기계와 같은 전통산업에서부터 인공지능(AI)을 위시한 첨단산업까지 규제 해소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어제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다. 대선·총선과 같은 정치 이벤트 때마다 늘 정치권의 주요 의제였지만, 그때뿐이었다. 정부의 의지가 없거나, 있어도 국회에 가로막히기 일쑤였다.

「 정치 이벤트 때마다 ‘말로만’
위기의식 갖고 적극 나서야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진보·보수할 것 없이 후보마다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규제 해소를 외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8일 기업과 만나 “불필요한 규제를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업 하다 감옥 갈까 한국을 탈출한다”며 “과한 노동법을 대폭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현행 샌드박스 규제 수준을 대폭 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투자 확대’ ‘신산업 육성’ ‘고용 창출’이라는 익숙한 수식어가 이들의 규제 해소 프레임에 얹혀 있다. 특히 AI와 같은 미래 먹거리와 관련해서는 정부 주도로 100조원, 2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한다.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미국발 관세전쟁, 4차 산업혁명으로 미래 먹거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은 규제의 틀을 바꾸는 것부터 해야 한다.

우리의 산업·기업 규제의 틀은 기본적으로 법·제도·정책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다. 여기에 반(反)기업 정서가 더해져 기업을 옥죄기 일쑤다. 좋은규제시민포럼에 따르면 22대 국회는 지난해 5월 개원한 이후 5개월간 4503건의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 중 약 30%인 1345건이 규제 법안이었다. 이런 겹겹의 규제에 기존 산업은 갈수록 위축되고, 원격진료와 같은 신산업은 한국을 떠나고 있다. 〈중앙SUNDAY 4월 12일자 1면 ‘K스타트업, 줄잇는 한국 엑소더스’〉

신산업 특성상 국가 간 장벽이 낮은 만큼 겹겹의 규제에 갇힌 한국에서 굳이 사업을 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경제계가 ‘네거티브 규제’(법·제도·정책으로 금지한 게 아니면 원칙적 허용)만 도입해도 도전적인 사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경제계의 주장처럼 규제의 틀을 큰 틀에서 바꾸는 것을 전폭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의 확대 개편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의 규제 샌드박스는 ‘규제 임시 면제’에 그치고 있다. 규제를 유예받은 사업이라도 ‘유예’ 기간이 끝나면 원래 규제로 돌아가는 예가 많다. 샌드박스를 규제의 전면적인 개선보다는 일시적인 해결책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규제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질서를 유지해 공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어쩌면 더 촘촘해져야 한다. 그러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기존의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면 오히려 발전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경제계가 요구하는 규제 해소의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국 경제는 갈림길에 서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중장기적으로 0%대로 추락하고, 2040년대에는 마이너스(-)로 추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은 자본과 노동력·자원 등 모든 생산 요소를 ‘영끌’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이 같은 전망을 비껴가려면 새 정부는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고, 기존 산업을 부흥해야 한다. 그러려면 재정 투입에 앞서 어떤 규제를 어떻게 해소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황정일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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