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의료개혁의 고역은 피할 수 없다

양홍주 2025. 5. 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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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 필수의료 확대 등 공약
의사사회 의대증원 이유 비우호적
다음 대통령 의료개혁 마침표는 숙명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교육부와 각 의대가 제시한 미복귀 의대생에 대한 유급·제적 처분 확정일인 7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이동하고 있다. 수업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의대생들의 유급이 확정될 시 내년 학기에는 24·25·26학번이 동시에 1학년 수업을 듣는 '트리플링'(tripling) 사태가 벌어지고 의대 1학년 학생만 1만 명이 넘어 의대 교육에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뉴시스

바야흐로 약속의 시간이다. 대통령 선거 레이스에 나선 후보들 면면이 어느 정도 정해지면서, 이들이 제시하는 공약도 하나둘 형체를 갖추고 언론과 전문가들의 입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대선 후보자들의 공약은 대체로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담고 있다. IMF 위기가 엄습한 1997년 대선에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공약의 화두로 떠올랐고, 코로나가 휩쓸고 간 20대 대선에선 소상공인 지원책이 후보자들의 약속 리스트 앞쪽에 배치됐다. 대선 주자들의 공약을 보면 시대정신까지는 아니라도, 당시 민심이 어디로 기울었는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이전과 달리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은 후보 단일화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대법원 선고 전후 어수선한 사정으로 공약 구체화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두 진영 모두 의료 개혁과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 해소에 대해선 적잖이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국민 관심이 높을 뿐 아니라, 1년 넘게 이어진 의사와 정부 간 공방의 생채기가 심각해서다. 현장에서 보는 의정갈등의 골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깊다. 대학병원을 지키는 전공의는 1,600여 명에 불과하고, 의대생들의 수업 결손 장기화로 새로운 인턴 공급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대를 늦게 입학한 장수생 출신 인턴 선생들이 다수를 이룬다”라며 “일부 병원 전공의 대다수는 헝가리 등 외국 의대 출신이란 말도 있다”고 사정을 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준비 중인 의료 개혁 관련 공약의 골자는 공공의대 설립을 통한 공공의료 확대다. 민주당은 필수의료 시설과 인력을 지역으로 분산해 보편적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로 공공의대를 짓고 국립중앙의료원 등 공공의료원을 수련 병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보수 후보들의 의료 개혁 공약은 민주당 공공의료 확대만큼 무르익지 못했지만, 지방 의료 혁신을 강조하고 대통령 직속 미래의료위원회를 만들어 6개월 내 의료시스템 완전 복구를 천명(김문수)하거나 윤석열 정부의 의료 개혁을 계승(한덕수)한다는 식으로 큰 방향은 설정됐다.

이들 의료 관련 공약이 겉보기엔 각양각색이지만 핵심 메시지는 ‘합리적인 방법을 통한 의사 증원과 필수의료 서비스 확대’로 모아진다. 막무가내와 다름없는 의사들 반발로 의대 정원 증원이 원점으로 돌아갔으나, 대선을 기점으로 이를 되살리자는 민심의 반영이기도 하다. 예상대로 의사 사회의 분위기는 이들 공약에 우호적이지 않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전공의들이 파업으로 맞섰던 공공의대 설립 공약은 의정 갈등 수위를 더 높일 기폭제가 될 우려가 크다. 공공의료 확대로 의료복지 강화 등 효능감은 높을 수 있지만, 중증외상센터 한 곳의 연간 유지 비용이 500억 원에 달하는 만큼 막대한 신규 투자 없는 공공의료 시설은 불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계획 이상의 인력 충원이 요구된다는 것도 의사 사회 반발의 이유다.

대선 승자가 누가 되든 의정갈등의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하는 고역은 피할 수 없다. 수업을 거부해 온 전국 의대생 8,000여 명이 최종 유급 제적 처리된 것으로 9일 집계됐다. 이들이 불러올 미증유의 3개 학년 동시 교육, 들쑥날쑥한 의대 정원으로 인한 대입 혼란까지. 다음 대통령은 이 모든 고난을 감수하고라도 의료 개혁의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8일 경남에선 골절 입원 합병증 60대 환자가 최근 5개 병원의 전원 거부 후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더 이상 길 위에서 죽어가는 환자도, 또 이들을 살리지 못해 좌절하는 의사도, 지켜볼 여력이 우리에겐 남아 있지 않다.

양홍주 논설위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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