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퍼를 위한 사이렌 '홀딱 벗고'

방민준 2025. 5. 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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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진입니다. 2025년 5월 초 진행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 바이런 넬슨 대회가 열린 미국 텍사스주 맥키니의 TPC 크레이그 랜치 코스의 모습입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다시 5월이다. 골퍼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던 눈부신 신록의 5월이 펼쳐졌다. 



골퍼라면 누구나 잔디가 푸릇푸릇 솟아나는 봄을 기다리지만 4월까지는 잔디가 채 자라지 않은 데다 너무 큰 기대와 욕심을 갖고 덤벼드는 바람에 실망감과 좌절감을 맛보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음을 추스르고 적당한 적응 기간을 거친 뒤 맞는 5월은 골퍼들에겐 황금같은 기간이다.



 



찬란한 신록의 5월에 어김없이 '홀딱 벗고 새'의 울음이 골프 코스에 울려 퍼지는 것은 신비롭다. 도시 주변의 야산이나 산책로에서도 이 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골프 코스에서는 유난히 또렷하게 귀에 담긴다.



 



4음절이 반복되는 이 새의 울음소리가 '홀딱 벗고 홀딱 벗고'와 비슷하게 들려 이런 별칭이 붙었다. 사람에 따라 다른 음으로도 들린다. 그러나 앞 3음절은 높이가 같고 마지막은 낮다는 공통점이 있다. 음계로 옮기면 '미 미 미 도'라고 한다.



 



두견이과의 여름 철새인 이 새의 정식 이름은 검은등뻐꾸기다. 몸길이가 30cm를 조금 넘고 배에 검은색의 굵은 가로줄이 있고 머리와 가슴은 회색, 등과 꼬리는 어두운 회갈색이다. 뻐꾸기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눈 테두리가 다르다.



 



'홀딱 벗고 새'란 별명이 붙은 사연은 여러 버전이 있다. 공부를 게을리 한 스님이 환생한 새라는 설과 여름에 스님이 개울에서 목욕하는 것을 보고 놀리느라 '홀딱 벗고 홀딱 벗고'라고 울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전자의 경우 수도하던 스님이 남편을 저세상에 보내고 명복을 빌기 위해 절을 찾아 탑돌이를 하는 여인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공부에 소홀했는데 그 스님이 죽은 뒤 새로 환생해서 전생의 게으름을 후회하며 우는 울음이라는 것이다.



 



승려화가로 유명한 원성스님이란 분이 '홀딱 벗고새의 전설'이란 시를 지어 이 새가 더욱 유명해졌다.



 홀딱 벗고 마음을 가다듬어라.
 홀딱 벗고 아상도 던져 버리고
 홀딱 벗고 망상도 지워 버리고
 홀딱 벗고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홀딱 벗고 정신 차려라.
  (중략)



 



'홀딱 벗고'란 흔히 상상되는 다소 외설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아상(我相) 망상 욕심 어리석음 유혹 등 공부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벗어던지고 공부에 몰두하라는 회한 가득한 다짐의 울음이다.



 



이런 유래를 알고 나면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이 5월의 골퍼들에게 유난히 절실히 다가온다. 골퍼야말로 철저하게 마음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골프장을 찾을 때는 좋은 스코어를 내겠다는 기대도 생기고 동반자 간의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욕심도 솟아오르고 내기에서 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라운드에 들어가면 결코 이런 마음가짐이나 자세로는 만족한 플레이를 펼칠 수 없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희로애락의 감정, 욕심과 기대, 승리에 대한 강한 집착 등이 오히려 본래 갖고 있는 기량마저 발휘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대신 빈 하늘과 같은 마음으로 어깨를 짓누르던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자신을 골프 코스에 내던지면 18홀을 끝내고 장갑을 벗을 때 뜻밖의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신록의 골프 코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검은등뻐꾸기의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하는 울음소리는 욕심과 기대와 망상에 사로잡힌 골퍼들에게 홀딱 벗고 라운드하라는 충고의 사이렌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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