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 긋고 긁고 마침내 ‘먹지’… 지우고싶던 자아는 더 선명해졌다

박동미 기자 2025. 5. 9. 09:0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최병소, 우손갤러리 ‘무제’展
1970년대부터 수행하듯 작업
6m 설치작품 등 30여점 선봬
최병소 작가의 작업 모습. 신문지 위에 긋기와 긁기를 반복한다. 우손갤러리 제공

세상을 잊고 싶었던 걸까, 자아를 지우고 싶었던 걸까. 신문지가 너덜너덜해지도록 긋고 또 그었다. 검정 볼펜 수십 자루가 다 닳으면, 눈앞엔 까만 먹지만 남았다. 종이와 펜, 그리고 선을 벗 삼은 구도자의 수행. 1970년대에 시작했으니, 벌써 반세기다. 그는 이제 자유로워졌을까.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신문지를 새까맣게 칠해 활자를 지우는 작업으로 유명한 최병소(81) 작가가 서울 성북동 우손갤러리에서 개인전 ‘무제’를 선보이고 있다. 일정하게 선을 반복하던 작가는 어느 날 이를 긁기 시작했고, 때로 연필로 그 위를 덧칠했다. 조금씩 변주하며 더욱 다채로워진 최병소의 세계는 이렇게 답하는 듯하다. 아직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고.

6m에 달하는 볼펜 그림 설치 전경.

대구 출신인 최 작가는 ‘대구현대미술제’의 창립멤버로 일찌감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업했다. 특히, 회화의 조형성과 의미 구조를 해체하는 일에 집중했는데, 주로 사용된 재료가 신문, 잡지, 인쇄물과 같은 대중매체였다. 신문에 몰두하게 된 데에는 여러 배경이 있다. 우선, 삼엄한 유신 시절엔 신문을 읽는 일이 갑갑했고, 저항적 예술활동으로서 지우기와 긋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점차 신문은 작가에게 가장 친숙하고 편안한 소재가 된다. 여기엔 6·25전쟁 때 보급품이 모자라 학교에서 교과서 대신 신문으로 공부한 기억이 작동했다. 최근 우손갤러리에서 만난 작가의 둘째 딸 최윤정 씨는 “과거와 같은 특별한 이유는 없으신 것 같다. 특정 매체를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신문, 손에 닿는 신문으로 작업을 하신다”고 설명했다. “늘 일기 쓰듯 작업하는 아버지께 여쭈면 ‘무얼 표현하기 위해 작업하지 않는다’고 답하실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조용히 성실하게 늘 선을 긋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최 씨는 “검은 먹지만 보이니 어릴 땐 아버지가 화가라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며 웃었다.

최 작가의 작품들은 구겨진 먹지 혹은 김이나 미역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맨 위에 유일하게 남은 ‘LIFE(라이프)’ 등 제호를 보고서야 신문인걸 알아차릴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6m짜리 대형 설치작품을 비롯해 드로잉, 콜라주, 사진 등 30여 점이 출품됐다. 외국 신문을 지우다가 하단의 만화 부분만을 남겨둬 유머가 느껴지는 작품, 영어로 ‘NOW’ ‘HERE’를 긁어낸 회화, 그리고 특유의 볼펜 그림과 푸른 사진을 반반씩 붙여 대조적인 질감을 의도한 작품 등 넓고 깊어진 최 작가의 ‘지금’을 만날 수 있다. 제작 과정을 충실하게 담은 영상도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최 작가의 작품은 최근 몇 년 새 미술 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방탄소년단 RM 등이 소장한 것이 알려져 더욱 유명해졌다. 지난해 미국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 소개돼 ‘수행의 그림’으로 관심을 모았으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이스턴 미시간 대학교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내달 21일까지.

박동미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