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36)별미국수기행(下)-모리국수


◆구룡포 모리국수를 찾아서
한국 국수로드의 종착지는 어딜까? 왠지 모르게 구룡포의 명물인 '모리국수'일 것 같다. 내륙의 육국수가 강촌을 만나 어탕국수가 되고 그게 바다를 만나면서 해물탕에 칼국수를 혼합한 것 같은 모리국수 스타일로 진화되었을 것 같다. 국수는 수제 칼국수와 공장 국수가 만나면서 수많은 변용을 잉태한다. 냉면, 쫄면, 밀면, 막국수, 더 넓게는 중국집 우동, 파스타와도 중첩돼있다. 멸치 다시를 이용하거나 면수를 그대로 담백한 육수로 활용한 본연의 국수도 있지만 매운탕을 만나 어탕국수, 그리고 해물탕과 만나면서 비로소 '모리국수'를 그려내기에 이르렀다.
◆ 모리국수 포구 구룡포
발길은 '모리국수'의 포구, 구룡포로 향한다. 한때 고래고기, 나중에는 과메기로 유명해진 구룡포. 그런데 200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모리국수가 인기몰이를 한다. 일본인가옥거리가 입소문 난 것도 한몫한다. 어느 날부터 '국수촌으로 불리기 시작한 구룡포시장. 국수족들이 누들로드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찾는데, 모리국수 관련 업소가 10여 개 흩어져 있다. 모정, 까꾸네, 순이네, 성은, 아지매, 진미, 장모손, 시장, 초원, 혜원…. 그 옆에 소문난 할매잔치국수, 여기에 '선창식 해장국'으로 불리는 꽁치다대기 전문 진아네와 화진식당, 그리고 전통시락국수 등이 시너지효과를 올리고 있다. 그 국수 덕분에 찐빵, 꽈배기, 팥빙수, 김밥, 떡볶이 등 분식점들도 덩달아 특수를 누린다.

◆제일국수공장
구룡포수협 앞 도로 1㎞ 구간은 영덕 강구항 대게 상가를 빼닮았다. 이 선창에는 다양한 국수군이 집결돼 있다. 모리국수~잔치국수~시락국수~꽁치다대기해장국~짬홍(홍게짬뽕)과 대게칼국수, 그 뒤를 찐빵과 꽈배기가 지원사격한다. 그 상권 심장부에 구룡포시장이 버티고 앉아 있다. 그 센터에 55년 역사의 '제일국수공장'이 배꼽처럼 박혀 있다. 부산 구포국수, 대구 풍국면, 성주 대양제면, 전북 임실군에 있는 백양국수 등과 함께 국내에서 알아주는 노포형 국수공장이다. 물량 때문에 시장에 있는 현재 점포는 근처 공장에서 만든 국수를 판매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한창때 구룡포는 국수공장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읍내에만 무려 7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게 제일국수이다. 타일로 마감된 70년대식 277.2㎡(84평) 크기의 건물이다. 외관이 꽤 그럴듯하고 빈티지 스러운 분위기도 풍겨 관광객에게는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1대 사장 이순화 할매의 남편 친구가 구룡포우체국장이었는데 그 국장이 예전 사용하지 않는 우체국 현판을 잘 다듬어 간판으로 선물해줬다. 거기에 적힌 전화번호의 변천사가 꽤 흥미롭다. 처음에는 432번, 이어 2432번, 다시 76국 2432, 마지막엔 '276-2432'가 되었다.
초창기에는 곰표, 해바라기표, 백설표, 지금은 큐원중력분 밀가루를 사용한다. 한 번에 밀가루 15~20포가량을 쓴다. 국수 품질을 좌우하는 건 뭘까? 건조에 가장 공을 들여야만 한다. 반죽하고 재래식 기계에서 면을 뽑기까지 한나절, 야외 건조장에서 해풍으로 반건조 상태가 되면 창고에 넣어 숙성시키는 데 15시간가량, 이를 새벽에 꺼내 다시 널어 완전 건조 과정을 거친 후 알맞은 크기로 자르기까지 또 한나절.
아무튼 여기가 갑자기 유명해진 건 2009년 초 포항 출신 가수 함중아가 한 TV프로그램에서 이 공장을 소개하면서부터. 제일국수는 일명 '해풍국수'로 통한다. 여기 국수는 바닷바람이 스며 들어가야 제맛이 형성된다. 과메기와 비슷한 습성이랄까. 관건은 바람인데 겨울이 되어야 원하는 바람이 불어온다. 겨울철 북동풍인 하늬바람이 불 때 국수 맛이 최고로 좋단다. 바람이 강하고 습도가 높으면 물을 많이 넣어 반죽을 질게 하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면 물을 적게 부어서 반죽한다. 날이 궂을 때는 소금을 적게 넣고 바람이 약하거나 추울 때는 소금을 많이 넣는다. 이런 감각은 누구에게 배워 줄 수도 배울 수도 없다. 아들이 가업을 잇고 나자 2014년 '향토뿌리기업'에 선정된다.

◆모리국수 해부
모리국수에는 유달리 고춧가루가 많이 투입된다. 유달리 센 간을 원하는 뱃사람 음식인 탓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면은 칼국수보다 공장에서 나오는 건면이 더 선호된다. 매운탕과 해물탕, 그리고 강촌에서 유행하는 어탕국수의 기운이 한데 엉켜있는 대구 육개장처럼 화끈하고 얼큰한 '구룡포식 생선국수'랄 수 있다. 간이 정말 세다. 슴슴한 맛에 익숙해진 서울권 관광객들은 청양고추 씹은 표정으로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닦아가면서 먹는 곤욕을 치러야 하지만 중독성이 강해 뒤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게 만든다.
모리국수? 그 명칭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몇 가지 설이 있다. 모리는 강원도 막국수의 '막'과 비슷한 의미인데 그날 잡힌 생선과 해물류를 대충 '모디(모아의 사투리)'넣고 여럿이 냄비째로 먹는다고 해서 처음에는 '모디국수'로 불리다가 나중에 모리국수로 굳어졌다는 설, 음식 이름을 묻는 사람들에게 포항 사투리로 '나도 모린다'고 표현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 '많다'는 뜻을 가진 일본어 '모리(森)'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 등이 뒤섞여 있다.
가장 유명한 업소는 선모텔 뒷골목에 있는 '까꾸네'. 바로 이 집 때문에 구룡포가 모리국수촌으로 변모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집은 풍국면 국수를 사용한다. 고춧가루를 정말 미련없이 푸짐하게 투하하는 게 특징이다. 어느 날부터 소문 탓에 관광객으로 들끓는다. 그래서 토박이들은 슬그머니 이웃 식당에 더 애정을 준다. 바로 '모정식당'이다. 마치 진주비빔밥도 관광객은 '천황식당', 토박이는 중앙시장 내 '제일식당'을 선호하는 것처럼.

◆미역초의 비밀
모리국수를 이야기하려면 토박이들만 아는 '미역초'의 내막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상당수 관광객은 미역초를 해초로 착각한다. 헤엄칠 때 그놈의 몸통이 꼭 미역의 율동을 닮아 그런 별칭을 갖게 된다. 모리국수에 없어서 안 될 주재료가 바로 미역초다. 일명 '물메기', 일부에선 '무점등가시치', 남해에선 '고랑치'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부산, 통영 등 남해안권에서 잘 잡힌다. 동해안 삼척·강릉·동해 등에서는 물메기와 닮았지만 전혀 다른 어종인 물곰이 잘 잡힌다.
미역초는 매년 4~7월이 제철. 모리국수의 맛도 하절기에 절정을 맞는다. 그런데 물량이 갈수록 줄고 가격도 만만찮아 미역초를 빼고 그 자리에 아귀, 대게 등을 넣는 업소도 늘고 있다.

후발주자인 '성은식당'은 특이하게 홍게를 넣어준다. 김영수 사장이 최근 기존 업소를 이어받았다. 구룡포초등 앞에 가면 '순이네모리국수'가 있는데 여긴 오징어, 홍합, 게, 골뱅이, 겨울에는 오징어 내장도 넣어준다. 지척에 있는 '구룡포전통시락국수'는 40년 역사의 중국집 정호반점을 접고 '구룡포 시락국할매'로 불렸던 모친(백피리)의 손맛을 내외가 전수했다. 사용하는 시래기는 무청이 아니고 배추 우거지를 사용한다. 고명으로 '꽁치완자'가 올라간다.
그리고 후발주자로 중국집 짬흥의 '홍게짬뽕'도 모리국수의 사촌격으로 고정팬을 불려나가고 있다.
국수를 먹기 위해서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려야 된다. 구룡포항의 구불거리는 파도와 뱃머리, 이게 모두 모리국수와 같은 사이클로 선순환하고 있는 것 같았다.
wind30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