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밤을 밝힌 ‘구루’의 지혜 [.txt]

12·3 내란의 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우린 대체로 세 가지 감정의 변화를 겪었다. 처음엔 이게 정말 사실일까 의심했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라며 화가 났다가, 마지막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25분 만에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서 등불 같은 글을 발견한다. 제목은 ‘대통령의 헌법 파괴’. “(2) 비상계엄 요건(전시·사변에 준하는) 도저히 성립 안 됨 (3) 국회가 과반수로 계엄 해제 요구하면 대통령은 반드시 따라야 함….” 모두 7가지 항목으로 이뤄진 간략한 요점 정리는 그날 밤 계엄을 막아선 시민들의 행동 지침이 되었다.
글을 쓴 사람은 한인섭 서울대 법학과 명예교수였다. 형사법 전공자로서의 전문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글이었다. 다음날인 4일에는 ‘탄핵소추해야’라는 글에서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규정한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가 내란죄 구성 요건에 해당한다고 밝히는 등 주요 국면마다 윤석열 탄핵의 길잡이 구실을 했다.
‘계엄과 내란을 넘어’는 지난해 12월3일 이후 한 교수가 썼던 글과 강연, 토론 등에서 했던 말을 모은 책이다. 어느덧 다섯 달이나 지난 계엄과 탄핵 과정을 돌아보면서 헌법의 가치와 시민 주권의 의미를 되새긴다. “국민은 국회를 지켰고, 국회는 국민을 지켰다.” 이 한 문장에 핵심이 담겨 있다. 급한 마음에 슬리퍼 차림으로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 찢어지고 다치면서도 담장을 넘어 계엄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이 서로를 지켜내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감동의 엑기스다.
윤석열의 구속 취소를 지켜보면서 한 교수는 “굳이 애써 찾아낸 핑곗거리”라는 뜻의 ‘gefundener Vorwand’라는 독일어를 소개한다. “특정인에게만 적용되는 법 또는 판결”이라는 뜻의 영어 ‘Ad Personam law’ 역시 ‘오로지 특정인을 위한 궤변과 암수의 달인들’을 수식하는 용어로 기억할 만하다. 급기야 대법원이 ‘Ad Personam law’를 적용해 대선에 개입했다가 국민적 저항에 놀라 일단 물러섰다.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재성 논설위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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