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누가 유심 오픈런을 만들었나

박상준 2025. 5. 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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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뜻밖의 '오픈런'이 벌어졌다.

보통 도심의 백화점, 면세점에 '에루샤(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데 이번엔 전국의 SK텔레콤 대리점에 유심(USIM)을 바꾸려는 고객들이 달려들었다.

유영상 SKT 대표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흘 뒤 유심을 무료 교체해주겠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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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1위 SKT 민낯 보여준 해킹 사고
경쟁사 유사 사고에도 안이하게  대처
통신 보안·고객 관리 다시 강화해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SK텔레콤 T타워 SUPEX홀에서 SK텔레콤의 해킹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뉴스1

올봄 뜻밖의 '오픈런'이 벌어졌다. 보통 도심의 백화점, 면세점에 '에루샤(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데 이번엔 전국의 SK텔레콤 대리점에 유심(USIM)을 바꾸려는 고객들이 달려들었다. 이들은 대기 번호표를 쥐고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도 "물량이 모자란다"는 말에 발길을 돌리며 불만을 터뜨렸다. "해킹은 회사가 당했는데 고생은 왜 우리가 해야 하나."

범용 가입자 식별 모듈(Universal Subscriber Identity Module). 가입자가 누구인지 아는데 쓰이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납작한 물건이 모두를 애타게 했다. 당연히 해킹한 이들이 문제 원인이지만 국내 통신업계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사고에 대한 업계 1위 회사의 대응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됐다.

사고가 터지고 엿새 뒤인 4월 25일. 유영상 SKT 대표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흘 뒤 유심을 무료 교체해주겠다고 알렸다. 그리고 27일까지 유심을 바꾼 경우 통신비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가입자를 안심시키려 한 건데 도리어 대혼란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당시 회사가 가진 유심은 100만 개. 5월 말까지 500만 개를 더 마련한다 했지만 알뜰폰을 포함해 2,500만 명에 가까운 가입자를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랐다. 불만이 폭발하자 교체 예약을 받겠다고 했고, 이번엔 '온라인 오픈런'이 펼쳐졌다. 여기에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이 임원들에게 유심을 바꾸라고 권하면서 망설이던 일반 가입자들까지 뛰어들었다.

왜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오자 회사 측은 "유심 교체는 고객들의 불안감을 줄이려 한 것이고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만 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 어르신이나 서비스 가입을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서비스를 한꺼번에 처리해달라는 요청에 "유심 한 개로 2개의 스마트폰을 쓰는 게 불가능해지니 일괄 적용은 어렵다"고 했다가 뒤늦게 자동 가입으로 입장을 바꿨다.

2023년 LG유플러스, 2014년 KT 등 경쟁사들이 해킹 사고로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는데, 우왕좌왕하는 SKT를 보면 그동안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당시 전문가들은 취약한 보안 시스템, 내부 관리 소홀 문제를 지적했다. 그동안 해킹 피해가 없었던 SKT는 보안에 소홀했고 그 결과 인재가 터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SKT가 2024년 정보보호에 쓴 비용은 약 600억 원으로 2022년(627억 원) 대비 4% 정도 줄었다. 이는 KT(1,218억 원)의 절반도 안 되고 심지어 LG유플러스(632억 원)보다 적다.

SKT는 최근 자나 깨나 인공지능(AI) 얘기를 하면서 미래를 강조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연구개발(R&D)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사이 뿌리는 흔들리고 있었던 셈이다. 오랫동안 SKT를 믿고 지지해 준 통신 이용자들이 있었기에 SKT도 다른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충성스러운 가입자들을 '잡은 물고기' 취급하고 보안 등 서비스에 소홀한다면 제 아무리 멋지게 지은 집도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미 26만 명(7일 기준) 넘는 이용자들이 SKT 둥지를 떠난 사실을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

박상준 산업부장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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