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전란·화마도 비켜간 풍요의 땅… 골목마다 ‘옛 향기’ 물씬
최북단 북방식 가옥 보존 ‘6대 민속마을’
외양간·부엌·마루 연결 선조 지혜 엿보여
국내 최초 전통가옥 보존마을 지정 눈길
전통가옥 50여채 고즈넉한 자태 그대로
마을 초입 향토식당·옛 주점 향수 자극
봄나물·들기름·수제청 등 특산물 판매
직접 재배한 쌀로 전통떡 만들기 체험도
“와,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네. 사극에나 나올 법한 조선시대 저잣거리 주변의 모습에 잠시 시선도 멈춰졌어요.” 완연한 봄을 맞아 어김없이 산벚꽃이 만개한 최북단 청정 고성군의 고즈넉한 외딴 마을. 오봉리(五峰里) 왕곡마을은 흡사 시간이 멈춰 선 듯 조선시대 그 모습 그대로 옛것을 고이 간직하며 현대인의 고단함을 뒤로 한 채 오히려 ‘순수의 시대’로 역행하고 있다.

봄꽃이 만개한 요즘,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는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주민들이 올여름에 수확할 옥수수를 비롯해 다양한 작물을 키우기 위한 밭갈이에 굵은 땀방울 연신 훔쳐낸다.
한국전쟁과 새마을운동 그리고 고성산불까지 지나친 오봉1리 왕곡마을. 이곳은 우리나라 대표 석호인 송지호 바로 근처에 위치해 7번 국도를 따라 대나무 숲을 끼고 들어오면 만날 수 있는 최북단의 북방식 가옥이 잘 보전된 우리나라 6대 민속마을이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민속마을이 양반가 중심의 거주 형태라면, 이곳은 평민들의 진솔한 삶이 그대로 전해지는 곳이어서 더 가까이 느껴진다. 마을 초입을 앞두고는 향토식당과 옛 주점들이 초가 형태로 지어져 한국민속촌에 온 느낌을 준다. 다소 비좁은 도로를 따라 마을로 향하는 고개를 잠깐 넘어가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조선시대 초가집들이 군락을 이룬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왕곡마을은 봄을 맞아 신정열 이장과 함재열 사무국장 등 주민들이 청정 고성의 전통 떡 만들기를 선보이며 분주했다. 이곳에서 직접 재배한 쌀로 인절미, 팥떡, 쑥떡 등 다양한 전통 떡을 만들기 위해 부녀회의 손길은 어느 때보다 바빴다. 주민들은 더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건강한 재료로 ‘왕곡마을표 전통떡’을 만드는 체험은 물론 저렴한 판매를 통해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이날 주민들은 봄철을 맞아 새순을 내민 쑥이며 방풍나물이며 미나리와 머위 등 다양한 봄나물들을 직접 캐와 팔고 있었고, 들기름과 개복숭아 수제청 등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산물을 즐비하게 내놔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 외양간·부엌·마루가 ‘한곳에’
왕곡마을은 우리나라 중요민속자료 235호 지정돼 현재까지도 북방식 가옥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특히, 1988년 우리나라 최초인 ‘전통가옥 보존마을 1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00년 ‘중요민속자료 235호 고성왕곡마을’로 지정된 후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무엇보다 왕곡마을의 전통가옥들은 북방식 ‘ㄱ’ 자형 겹집이 온전히 보존되고 있는 데다, 외양간과 부엌·마루가 한 건물 내에 연결돼 있다. 관동 북부 지방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소를 키우는 외양간과 부엌이 함께 공존한 구조는 에너지 효율을 중시했던 선조들의 지혜와 가축을 가족처럼 여겼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왕곡마을의 특이한 점은 토박이들의 성씨를 이곳 지명을 따 오봉 함씨와 오봉 최씨로 부른다는 것. 양근 함씨가 ‘여말선초’ 이곳에 처음 정착한 후 100년 뒤 강릉 최씨가 오순도순 함께 살면서 이 두 성씨의 집성촌이 됐다고 한다. 이어 조선시대인 1884년 이곳은 금성(錦城), 왕곡(旺谷), 적동(笛洞) 세 마을로 구성됐고, 금성에는 양근 함씨가, 왕곡에는 강릉 최씨가, 적동에는 용궁 김씨가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시간이 흘러 일제강점기에는 세 마을을 합쳐 오봉(五峰)이라 불렀고, 한국전쟁 이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성과 왕곡이 오봉1리로, 적동이 오봉2리로 합병과 분할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배산임수 고즈넉한 자태 그대로
아름다운 석호인 송지호를 정면으로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풍수를 지닌 오봉1리 왕곡마을은 오랜 세월 시간의 간섭은 물론 한국전쟁과 새마을운동의 근대화 물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즈넉한 옛 자태를 그대로 지켜냈다.
더욱이 1997년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불로 기록됐던 ‘고성산불’의 화마도 피해 가면서 온전한 가옥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왕곡마을의 전통가옥은 총 50채로, 현재 32채에서 6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토박이가 아닌 외지인들이 40명에 이를 정도로 시간이 멈춰 선 이곳의 매력에 흠뻑 빠져 민속마을을 함께 가꿔나가고 있다. 함재열 왕곡마을 사무국장은 “올해는 우리 왕곡마을을 많이 찾으셔서 정말 진정한 쉼을 하시고 더 큰 에너지를 받아 가시길 기원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효심 가득한 ‘이타적 노스텔지어’
이곳은 가옥형태만이 아니라, 생활관습도 옛것 그대로 전해진다. 어머니의 제사를 둘째 아들이 모시는 풍습과 음력 1월 14일 오곡밥 아홉 그릇을 먹고 나무 아홉 묶음을 하는 풍습이 말로만 들어도 재미를 더한다.
특히,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단지해 살렸다는 효행이 뛰어난 양근 함씨의 4세 5효자각과 함희석 효자각 등은 효행을 금석으로 알고 섬겼던 왕곡마을 주민들의 효심이 지금도 이어지면서 현대인들에게 작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또 마을 입구에는 동학 교주가 머무른 곳을 기념해 ‘동학의 빛 왕곡마을’ 기념탑이 조성돼 있다.
지금은 소가 밭을 갈지는 않지만, 벚꽃이 만개하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면 마을 주민들은 조상들이 해왔던 순수한 그 모습 그대로 북방식 초가에서 나와 이른 새벽, 구수한 거름 냄새로 가득한 텃밭을 조심스레 거닐면서 옥수수며 콩이며 자신이 먹을 만큼의 씨앗을 뿌리곤 한다.
왕곡마을 지킴이로 활약하는 신정열 이장은 “오랜 세월 원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고, 마을을 잘 찾을 수 있는 안내 시스템을 조금 개선해 줬으면 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함명준 고성군수는 “우리 고성군의 자랑인 왕곡마을이 누구나 갈망하는 ‘순수’를 온전하게 전하도록 앞으로도 물심양면 잘 가꿔나가겠다”고 말했다.
근대 들어서도 수백 번 이엉을 새로 엮어 올렸을 초가를 베개 삼아 송지호 둘레길을 지나 오봉교회를 거쳐 왕곡마을 실개천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자면, 향기로운 봄바람마저 두 뺨에 멈춰 선다. 김주현 기자 joohye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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