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업들, 프라이드 행사 등 돌린다...포용성 관련 정치적 부담 커진 탓

유진우 기자 2025. 5. 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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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였던 ‘성소수자의 달(Pride Month)’이 올해 사뭇 다른 풍경을 맞이할 전망이다.

다양성과 포용을 앞세워 LGBTQ+(성소수자)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던 대기업들은 올해 관련 마케팅과 후원에서 줄줄이 발을 뺐다. 정치적 부담감과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거세진 탓이다.

7일(현지시각) USA투데이에 따르면 마스터카드, 펩시코, 닛산 등 글로벌 기업들은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주요 대도시에서 열리는 프라이드 행사 후원 규모를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철회했다.

마스터카드는 10년 이상 유지해 온 뉴욕 프라이드 퍼레이드 플래티넘 스폰서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한때 기업 이미지 제고 ‘효자손’으로 여겨졌던 프라이드 마케팅이 이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전락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6월 미국 뉴욕 워싱턴스퀘어파크에서 열린 프라이드 행사에서 결혼을 선포한 타니아와 카밀라가 참가자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로이터뉴스1

프라이드 마케팅은 2010년대 초반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다양성 존중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면서 본격적으로 퍼졌다. 미국에서는 2015년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 이후,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후원이 기본 ESG 활동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뉴욕 프라이드 행사는 약 100만명이 참석하는 세계 최대 규모 성소수자 관련 행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미국 내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와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DEI 정책에 대한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기업 컨설팅 업체 그래비티 리서치가 최근 포춘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가운데 39%가 올해 프라이드 관련 활동을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 중 61%는 ‘정치적 압박 및 DEI 정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정치적 양극화 심화와 과거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DEI 정책에 대한 반감이 기업들을 극도로 신중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불거진 ‘버드라이트 사태’는 기업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한 결정적 이유로 꼽힌다. 세계 최대 맥주 제조사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는 지난해 맥주 브랜드 버드라이트 홍보에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베이니를 기용했다.

2023년 4월 버드라이트와 함께 홍보 게시물을 제작한 미국의 트랜스젠더 출신 임플루언서 딜런 멀베이니(가운데 하단). /로이터뉴스1

그러나 곧 보수 성향 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거센 불매 운동에 직면했다. 이 여파로 AB인베브 주가는 한때 급락했다. 버드라이트는 미국 내 맥주 판매량 1위 자리를 경쟁사에 내줬다. 심각한 브랜드 이미지 손상도 따라왔다.

CNN은 “버드라이트 사례는 기업에 DEI 마케팅이 얼마나 큰 위험성을 동반하는지 보여준 반면교사”라며 “특히 소비재 기업일수록 특정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 표명이 매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큰손이던 대기업들이 후원 목록에서 이탈하면서 프라이드 행사 주최 측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올해 6월 뉴욕 프라이드 축제에는 마스터카드, 펩시코, 닛산 외에도 씨티그룹, PwC 등 주요 금융 및 컨설팅 기업들이 스폰서 명단에서 빠졌다. 행사 시작을 고작 한 달 앞두고 사라진 후원금이 약 20만달러(약 2억7000만원)에 달한다.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 축제 역시 AB인베브, 닛산, 컴캐스트 등이 후원을 중단하면서 약 30만달러(약 4억원) 재정 적자에 직면했다.

NBC는 전문가를 인용해 “기업 후원은 프라이드 행사에서 가장 큰 재원”이라며 “후원금 급감은 행사 규모 축소와 LGBTQ+ 커뮤니티 지원 프로그램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국적인 ‘탈(脫)프라이드’ 흐름 속에서도 로스앤젤레스(LA) 프라이드 축제는 주요 스폰서 대부분을 유지했다.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벌어진 LGBTQ 페스티벌에서 참가자가 춤을 추고 있다. /로이터뉴스1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올해 LA 프라이드 축제 주최 측은 지난해와 비슷한 예산을 확보했다.작년 주요 후원사였던 델타항공, 코카콜라, NFL(미국프로풋볼), 혼다, 구글, 아마존 스튜디오 등 굵직한 기업들은 올해도 후원을 이어가기로 했다.

할리우드를 위시한 LA 일대는 미국에서도 가장 강력한 LGBTQ+ 권리 보호 정책을 시행한다. LA 타임즈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계는 오래 전부터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삼고, 기업·지역사회와 오랜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를 인용해 “지역별 정치 성향 차이, 뉴욕이 갖는 프라이드 마케팅 상징성과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는 높은 가시성, 그리고 LA의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LGBTQ+ 친화적인 정치·문화 환경이 기업들의 전략적 계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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