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근 국물 맛 좋은 게”…제주 조천 어버이날 국수잔치 가보니

“작년까지는 자주 와봐신디 요샌 속 아팡 못 와봔. 경해도(그래도) 국물 들이키난 맛 좋은 게.”
어버이날인 8일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조천면장국수에서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김경화(86) 할머니는 사장 김재찬씨의 손을 토닥이며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요즘 부쩍 식사량이 줄어들었다는 할머니의 고기국수 그릇에는 면이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배지근’(묵직하고 감칠맛 난다는 뜻의 제주어)한 국물은 거의 비어 있었다.
김 할머니가 남편 손을 꼬옥 잡고 오랜만에 국숫집을 찾은 이유가 있다. 조천면장국수 사장 부부의 특별한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면장’ 김재찬씨와 배우자 이현정씨는 조천리에 국숫집을 연 4년 전부터 매년 어버이날을 ‘조천면장국수 잔칫날’로 정해 동네 어르신들에게 고기국수와 멸치국수를 대접해왔다. 지난해에는 70살 이상 어르신을, 올해는 65살 이상 어르신을 초청했다. 조천리 말고도 인근 함덕리·신촌리 등에서도 어르신이 찾아온다.

“딱 만들 수 있는 만큼만 팔자”는 생각에 부부는 매일 99그릇만 한정 판매해왔지만 이날 만큼은 넉넉히 200그릇을 준비했다. 어르신과 그 가족이 마음 편하게 식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올해는 아예 한 달 전부터 ‘어버이날 식사권’을 108장 만들어 여기저기 뿌리기도 했다. 김재찬씨는 “제주 어머니, 아버지들은 국수 드시러 오시라고 해도 ‘미안해서 어떻게 가느냐’며 잘 안 오시려고 한다”며 “미리 VIP 쿠폰을 드려 초대하면 덜 미안해하며 많이 오실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날은 재가노인지원서비스(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집에서 제공받는 사회복지서비스)를 받는 어르신도 스무명 넘게 방문했다. 요양보호사와 함께 국숫집을 찾은 김옥희(84) 할머니는 “오랜만에 멸치국수를 맛있게 먹었다”고 말했다. 혼자 버스를 타고 온 박화자(84) 할머니도 “보통은 점심에 혼자 있으면 대충 먹거나 안 먹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맛있게 먹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어버이날에 기분 좋게 식사한 어르신들은 “국수를 공짜로 줘서 감사하다”, “자주 오겠다”고 인사하며 돌아갔다. “좋은 일 하시는 데 보태라”며 10만원을 기부한 부부도 있었다. 김재찬씨는 “(고향) 경북 안동에 계신 저희 부모님도 90살이신데, (오늘) 제가 못 뵈러 가서 죄송하다”면서도 “맛있게 드시고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 아버지들을 보면 마음이 참 좋다”고 말했다.
글·사진 서보미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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