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근 국물 맛 좋은 게”…제주 조천 어버이날 국수잔치 가보니

서보미 기자 2025. 5. 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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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어버이날을 맞아 어르신에게 고기국수를 대접하는 조천면장국수에서 식사하는 김경화(86)씨 부부

“작년까지는 자주 와봐신디 요샌 속 아팡 못 와봔. 경해도(그래도) 국물 들이키난 맛 좋은 게.”

어버이날인 8일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조천면장국수에서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김경화(86) 할머니는 사장 김재찬씨의 손을 토닥이며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요즘 부쩍 식사량이 줄어들었다는 할머니의 고기국수 그릇에는 면이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배지근’(묵직하고 감칠맛 난다는 뜻의 제주어)한 국물은 거의 비어 있었다.

김 할머니가 남편 손을 꼬옥 잡고 오랜만에 국숫집을 찾은 이유가 있다. 조천면장국수 사장 부부의 특별한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면장’ 김재찬씨와 배우자 이현정씨는 조천리에 국숫집을 연 4년 전부터 매년 어버이날을 ‘조천면장국수 잔칫날’로 정해 동네 어르신들에게 고기국수와 멸치국수를 대접해왔다. 지난해에는 70살 이상 어르신을, 올해는 65살 이상 어르신을 초청했다. 조천리 말고도 인근 함덕리·신촌리 등에서도 어르신이 찾아온다.

조천면장국수를 운영하는 김재찬·이현정 부부

“딱 만들 수 있는 만큼만 팔자”는 생각에 부부는 매일 99그릇만 한정 판매해왔지만 이날 만큼은 넉넉히 200그릇을 준비했다. 어르신과 그 가족이 마음 편하게 식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올해는 아예 한 달 전부터 ‘어버이날 식사권’을 108장 만들어 여기저기 뿌리기도 했다. 김재찬씨는 “제주 어머니, 아버지들은 국수 드시러 오시라고 해도 ‘미안해서 어떻게 가느냐’며 잘 안 오시려고 한다”며 “미리 VIP 쿠폰을 드려 초대하면 덜 미안해하며 많이 오실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날은 재가노인지원서비스(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집에서 제공받는 사회복지서비스)를 받는 어르신도 스무명 넘게 방문했다. 요양보호사와 함께 국숫집을 찾은 김옥희(84) 할머니는 “오랜만에 멸치국수를 맛있게 먹었다”고 말했다. 혼자 버스를 타고 온 박화자(84) 할머니도 “보통은 점심에 혼자 있으면 대충 먹거나 안 먹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맛있게 먹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어버이날에 기분 좋게 식사한 어르신들은 “국수를 공짜로 줘서 감사하다”, “자주 오겠다”고 인사하며 돌아갔다. “좋은 일 하시는 데 보태라”며 10만원을 기부한 부부도 있었다. 김재찬씨는 “(고향) 경북 안동에 계신 저희 부모님도 90살이신데, (오늘) 제가 못 뵈러 가서 죄송하다”면서도 “맛있게 드시고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 아버지들을 보면 마음이 참 좋다”고 말했다.

글·사진 서보미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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