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도 괜찮죠. 마음은 남으니까"...초로기 치매 노인들의 기억보다 귀한 '커피 한 잔'

김민순 2025. 5.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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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치매안심센터 기억 품은 팜 카페'
지난해 9월 장위석관보건지소에 문 열어
치매환자도 사회의 일원으로 씩씩하게 근무
"뿌듯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생겨"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구 장위석관보건지소 내 '기억 품은 팜 카페'에서 근무하는 초로기 치매환자 오귀영(왼쪽)씨와 김영숙씨가 환한 미소로 일하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는 여느 카페들과 조금 다른 특별한 카페가 있다. 이곳에서 커피를 내리고 주스를 만드는 바리스타들은 모두 초로기 치매(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 진단을 받은 이들이다. 카페 이름도 바리스타들의 이런 사정을 반영한 '성북구 치매안심센터 기억 품은 팜 카페'.

지난달 23일 찾아간 장위석관보건지소 3층에 기억 품은 팜 카페가 있었다. 손님들이 주문을 하면 카페 한편에서 직접 키운 채소를 수확해 믹서로 갈아 주스를 만들고, 기계에서 커피를 뽑아냈다. 재료가 남다른 만큼 주스는 다른 카페보다 월등하고 커피 맛도 뒤지지 않았다.

기억 품은 팜 카페는 성북구 치매안심센터와 연계된 '초로기 치매 지원형 사회 참여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상대적으로 일찍 치매를 겪게 된 환자들에게 일자리와 함께 타인과 상호작용을 통한 인지훈련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다. 초로기 치매 진단을 받은 어르신 9명이 2명씩 교대로 일주일에 두 차례 출근한다. 메뉴는 아메리카노, 다방커피, 야채주스, 캐모마일티, 쌍화차 5개로 단출하지만 근무자들에게는 매번 새로운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구 장위석관보건지소 내 '기억 품은 팜 카페'에서 초로기 치매 진단을 받은 오귀영씨가 매장에서 직접 채소를 키우는 스마트팜에 물을 주고 있다. 하상윤 기자

전아영 성북구 치매안심센터 팀장은 "어르신들이 커피를 추출할 때 기계 작동법이나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는 법을 헷갈릴 때가 있고, 그때마다 다시 습득을 해야 한다"며 "학습이 느리고 주문이 몰릴 때는 혼란스러워하시지만 '내 직장'이라는 주인의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커피를 내리는 손길은 서툴러도 주문을 받고 인사를 건네는 표정은 늘 밝다. 뜨거운 물 대신 찬물을 넣거나 쟁반에 커피를 쏟는 날도 있지만 실수를 고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 자체가 이들에게는 즐거움이다. 2019년 초로기 치매 진단을 받은 오귀영(62)씨는 "띄엄띄엄 잊어버릴 때가 있는데 선생님들이 도와주시고, 조금씩 나아지니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어떨 때는 실수를 해도 '아파서 그런 거니까 괜찮다'고 스스로 뻔뻔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하며 미소를 머금었다.

카페는 단순한 근무 공간이 아닌 '사회적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주문을 받고, 커피를 타고, 야채주스를 건네면서 타인과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2년 전부터 치매가 진행된 김영숙(64)씨는 "우리가 치매니까 마땅히 일할 곳이 없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으니 자꾸 혼자 있게 된다"며 "여기 와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니까 뿌듯하다. 씩씩하게 출근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구 장위석관보건지소 기억 품은 팜 카페에 새로운 일터로 출근하는 초로기 치매환자들을 응원하는 가족들의 편지가 붙어 있다. 하상윤 기자

성북구 치매안심센터는 팜 카페에서 근무하는 어르신들에게 법정 최저임금(시간당 1만30원)을 지급한다. 이들의 노동력을 인정하고 소중한 인력으로 여기겠다는 뜻이고, 당사자들은 더 큰 의미로 받아들인다. 누구에게는 적은 급여겠지만 한창 사회생활을 해야 할 시기에 맞닥뜨린 치매에 좌절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해서다. 기억 품은 팜 카페는 치매환자가 그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공간인 셈이다. 서울시가 이달 초 약자동행지수 성과 평가에서 의료·건강 부문 우수 사례로 이 카페를 선정한 이유가 있었다.

누구도 느리다고 다그치지 않는 일터에서 어르신들은 절망 대신 작은 성취와 따뜻한 환대를 마음에 새기고 있다. "그래도 직장인데 출근하기 싫은 날도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오씨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여기에 오면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잘못해도 웃고, 잘해도 웃는다. 귀여운 아기 손님이 반갑고 일 끝나고 선생님과 공부하는 시간도 재밌다. 이 정도면 땡잡은 인생 아닌가."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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